아빠의 진화

사춘기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

by 유혜빈


우리 집에서 가장 예민한 사람은 누구일까?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어

지금은 당연히 ‘고딩이들’이라 말할 수 있지만,

사실 그전까지는 단연 아빠였다.


우리 집은 늘 3+1 구조였다.

엄마와 두 아들,

그리고 방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는 아빠.


거실에선 우리는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보드게임을 하고, 사진도 찍고, 온갖 대화를 나누며

하루 대부분을 함께 보냈다.

하지만 아빠는 그런 시간에 좀처럼 끼지 않았고

“일이 많다”며 방에 들어가 있었다.


“나 오늘 일정 있어서 먼저 간다.”

“그 영화 지금 말고 다음 주에 보면 안 돼?”


항상 바쁜 일정 속에서, 가족 외출이나 작은 계획도

아빠의 스케줄에 맞춰야 했다.

계획형 인간.

하루를 철저하게 시간표대로 살아가는 사람.

그게 우리 아빠였다.


그렇게 늘 자기 시간을 철저히 지키던 아빠.

그런데 그런 아빠가…

변했다.


사춘기가 본격화되면서,

우리 집은 어느새 감정의 지뢰밭이 되었다.


“야! 너 말버릇이 그게 뭐니,

일부러 엄마 열받으라고 그러는 거지?”

“내가 뭐! 그냥 놔두라고, 좀!!”


문은 ‘탁’ 닫히고,

엄마는 한숨을 쉬고,

아이들은 이어폰을 끼고,

그 사이에서 가장 애매한 위치에 선 사람…

바로 아빠였다.


예전 같았으면

“너네, 회초리 갖고 와.”

하며 단호하게 정리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아빠는 이제, 그 싸움의 한가운데서

생존을 고민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이를 혼내면

“아무것도 모르면서 왜 그래!”

라고 내가 화를 냈고,

가만히 있으면

“당신은 왜 신경을 안 써?”

하며 또 내가 한 마디 했다.


결국 아빠는 선택했다. 변화를.
아니, 살아남기 위한 진화를.


언제부턴가 아빠는 밤늦게 학원을 다녀온

아이들을 위해 야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이들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일 하다가도 자리에서 바로 일어났다.

본인도 피곤할 텐데도, 살금살금 아이들 눈치를 살피며

“라면 먹을래? 계란 넣어줄까?”

하며 먼저 말을 건넸다.

잠시 멈칫하던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고,

부엌에 나란히 선 두 사람은

말없이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


어쩌다 같이 영화 볼 일이 생기면

기꺼이 거실로 나와 앉았다.

가끔은 깜짝 놀랄 정도로

진지한 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물론, 성공률은 아직 낮지만.)


이제는 퇴근길에

“얘들아~ 아빠가 아이스크림 사 왔다!”

하며 현관을 열고 들어온다.


“너네는 무슨 맛 좋아해?”

“이번에 영화 재미있는 거 개봉했던데,

시간 되면 같이 볼래?”


계획형 인간이였던 아빠가,

이제는 아이들 스케줄에 맞추고

아이들의 취향에 귀를 기울인다.


가족이란 참 이상하다.

한 사람이 변하면,

그 변화는 꼭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준다.


사춘기를 견디는 것도,

갱년기를 넘기는 것도,

결국은 혼자보다 함께일 때 가능한 일이라는 걸

요즘 느끼는 중이다.


우리가 이렇게 한참 흔들리고 있을 때,

가장 조용히, 그러나 가장 크게 변화한 사람.

그건 아빠였다.


지금 우리 집에서

가장 크게 자란 사람은 누구일까.

‘사춘기 소년들’일까?


글쎄,

어쩌면 그건…

아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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