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격태격, 무심한 듯 다정한… 사춘기 아들의 소설 한 편
• 너, 어디냐?
• 아직 교실. 이쪽으로 오셈.
• 청소?
• ㅇㅇ.
• 나 먼저 간다 그럼.
• 아아, ㅈㄹ하지 말고 빨리 오셈. 금방 해.
“재훈아, 지금 핸드폰 보는 거야? 핸드폰은 집어넣고. 오늘 종례는 여기까지다. 주번이랑 청소 담당만 남고 어서 집 가.”
오늘 하루의 학교 생활도 그렇게 종료되었다.
1교시 수면, 2교시 간당간당, 3·4교시 수면, 5교시는 자습, 6교시 수업 듣고, 7교시 자습.
한 게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평소와 별다를 것 없는 하루.
수업을 들으러 온 학교에서 나는 어느새 잠만 자고 있었다.
50분이란 시간은 나에게 너무 길고 지루했다.
수업을 들으려 노력해도 10분 만에 하품이 나오고,
바꾸려 애써도 바뀌지 않는 시선 때문에
나도 결국 바꾸지 못한 채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역시 이래서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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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퍼킹 주번. 쉬운 칠판 닦기도 맨날 뺏기고, 냄새나는 쓰레기통 비우기만 하네.
그래도 오늘만 하면 끝이니까…”
너무 귀찮은 주번 활동.
30명 중 절반은 운동부라 주번이 굉장히 빨리 돈다.
게다가 청소 담당은 하루에 3명.
일주일에 한 번은 무조건 청소를 해야 하는 정신이 나갈 것 같은 반.
벌써 3달이 지났다.
찐따 오브 찐따의 삶.
친구라고는 손에 꼽을 만큼 적은 나의 삶은 진짜 애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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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때 같은 반이 된 중학교 친구, 0명.
2학년 때 같은 반이 된 1학년 친구, 0명.
학기 초반엔 늘 ‘천상천하 유아독존.
난 친구 따위 필요 없다. 난 최강이니까.’
같은 한심한 생각을 하며 버티지만…
눈을 깜빡이고 주변을 살펴보면
어느새 나를 제외한 모두가 친구들 사이에 껴 있다.
하지만 이러면 뭐하나.
불러서 만날 수 없는 친구들인데.
친구라고는 해도, 아직은 좀 어색한 관계.
셋이 있을 땐 웃을 수 있지만,
둘이 있을 땐 말도 꺼내기 어려운 친구.
그런 애들이 한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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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하다고 친한 친구에게 말하면
“고딩 친구들 만나서 놀아” 라고 하고,
나는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
“다 멀리 살아서 만나기 힘들어. 그래서… 놀래?”
항상 똑같은 레퍼토리.
그 대답은 보통 20% 긍정, 80% 부정.
그래도 그 20% 안에 들어 있는 친구,
그게 바로 재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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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다 버림. 빨랑 오셈. ㅇㄷ?
• 중앙 정자.
• 기달리셈. 바로 갈 테니까.
책상 서랍에서 아이패드를 꺼내 힘겹게 가방에 넣고,
핸드폰과 에어팟은 양쪽 주머니에 넣는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건물 밖으로 나가니,
그곳엔 키만 멀대처럼 큰 재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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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핫스팟 켜. 롤체?”
“기달리셈.”
재환의 핸드폰을 엿보니,
또. 또. 여자다.
“넌 안 돼. 그만 좀 봐. 네 얼굴 크기를 봐라, 이 대두 새끼야.”
“그래도 난 키라도 크지. 근데 넌? ㅋ”
키.
내가 거의 유일하게 화내는 요소다.
키 작은 게 컴플렉스가 된 건지, 좀 예민하다.
하지만… 이 녀석 때문에 내성이 생긴 듯도 하다.
“알겠으니까 빨리 핫스팟이나 켜지?”
“켰음. 들어오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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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배터리 59%.
집 가면서 롤체 한 판이면 딱 될 배터리 양.
난 여느 때와 같이 롤체에 접속해
재환이 보내는 초대를 받고 티격태격하면서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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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체와 한심한 녀석과 함께하는 하굣길.
그 길다란 하굣길에는 다양한 친구들이 스쳐 지나간다.
나랑 재환이 둘 다 아는 친구,
나만 아는 친구,
재환만 아는 친구,
둘 다 모르는 친구.
하지만 그들은
나의 하굣길에 초대를 받지 못했기에
관심은 딱히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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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좀만 천천히 가.”
“지금 뛰는 거야? 난 그냥 편하게 걷고 있는데. ㅋㅋㅋ”
또 키로 긁는 우리의 착한 친구, 재환이.
너무 착해서 머리에 한 대 콩! 해주고 싶다.
나는 어떻게든 뛰지 않으려 하지만
결국 뛰게 되고,
그걸 알면서도 놀려대는 재환의 책가방을 잡아 속도를 맞춘다.
한 손으로 책가방을 잡고,
한 손에는 핸드폰.
재정비 이후 다시 포탈로 들어간다.
이번 상대는… 어우, 마이 퍼킹 프렌드 재환이다.
“어, 너다. 내가 바로 닦아줄게.”
“응, 아니야. 내가 이겨. 나 7거악이야.”
한순간의 침묵.
그 침묵을 깨는 건 나의 목소리였다.
“야, 너 나한테 안된다니깐?”
“어쩔~ 나 어차피 연패 중이라서 오히려 이득. 개꿀~”
또다시 티격태격.
아마도 주변 사람들이 보는 건 다윗과 골리앗.
하지만 우리 사이엔
살의도 없고 악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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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길목은 어느새 끝에 이르렀고,
우린 매끄럽게 지하철역으로 들어간다.
• 삑.
나는 먼저 개찰구를 통과했고,
계단을 내려가려던 찰나—
화면이 멈췄다.
뒤를 돌아보니… 재환이 없다?
하필이면 멈춘 시간이 증강 타임.
시간이 없다. 서둘러야 한다.
어서 내 핫스팟, 재환을 찾아야 한다.
계단을 올라가서 둘러봤지만
어디에도 없다.
개찰구 너머를 보자,
그곳에는 여유롭게 교통카드 충전 중인 재환이.
“야! 빨리 좀 와.”
• 삑.
재환이 오고,
다시 롤체로 들어가 빠르게 증강을 고르려고 한 순간—
아… 내 증강은 자동 선택.
깊은 빡침.
말도 없이 사라져서 내 게임을 망친 재환.
하지만 별 수 있나.
핫스팟을 쓰고 있는 건 나인데.
걍 뭐라 하진 않고
툴툴거리며 화를 푼다.
⸻
• 끼익.
지하철이 도착하고,
많은 사람들이 바퀴벌레마냥 빠르게 움직여 지하철을 가득 채운다.
우리가 있는 곳과는 좀 거리 있는 상황.
서둘러 낑겨 타면 어떻게든 탈 수 있다.
“야, 빨리!”
난 휴대폰에서 잠시 시선을 떼고,
서둘러 달려간다.
• 문이 닫힙니다.
눈앞에서 닫혀버린 문.
허탈하진 않다. 어차피 곧 오니까.
하지만 조금 아쉽다.
뒤를 돌아보니—
어우, 나의 best ⭐️ friend 재환은
그냥 걷고 있네?
오 마이 퍼킹 쉿.
이럴 수가.
재환은 애초에 뛸 생각이 없었군요?
“걍, 다음 꺼 타~”
하하. 대단합니다.
역시 저의 친구답군요.
우리 재환은 학교, 학원 전부 포기한 시간의 빌게이츠지만,
전 아니죠. 하하하.
“야이씨… 야비쉬?
아, 갑자기 그거 해보고 싶다. 그거. 그거 이름 뭐지?
그… 아, 파피 플레이 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