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서른아홉

몇 살이세요?

by 유혜빈



“선생님, 선생님~”


나는 색연필 통을 정리하다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선생님 몇 살인데요.
몇 살이에요?”


요즘 나는 미술학원에서

보조교사로 일을 하고 있다.


귀여운 아이들을 만나는 일은

하루 중 내가 가장 말이 많아지는 시간이고,

가장 자주 웃게 되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말부터 쏟아냈다.

의자에 앉기도 전에

내 옆으로 몰려왔다.


“오늘 뭐 그려요?”

“저 어제 그린 거 다 했어요.”

“선생님, 내 만들기 어디 갔어요?”


나는 이리저리 집어던진

아이들의 가방을 정리하며 말했다.


“자리부터 앉자.”


오늘따라 아이들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 얘기가 많은지

유난히 조잘조잘 떠들었다.


한 아이가

내 얼굴을 빤히 올려다봤다.


“그래서요.

선생님 몇 살이에요?”


그 말이 떨어지자

아이들 시선이 한꺼번에

내 얼굴로 몰렸다.


나는 잠깐 뜸을 들였다.


“너네 엄마보다 나이 많아.”


“진짜요?”

“우리 엄마 서른여덟인데요?”

“그래서 몇 살인데요. 말해줘요!”


나는 색연필을 들고 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내가 몇 살이라고 하면

너네 생각에 적당할까.


뭐라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보더니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아이가

갑자기 소리쳤다.


“오십 살 아니에요? 오십 살!”


순간 교실이 터졌다.


“와아아아—”

“진짜요? 오십 살?”

“할머니 아니에요??”


아이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의자에서 굴러 떨어질 것처럼

서로를 치며 웃었다.


“크크크 꺄르륵 꺄르륵 —”


나도 어이없는 웃음이 나와

입을 가렸지만

차마 맞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사실 맞다.

오히려 완전 정답이라

조금 놀랐다.


나는 같이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야. 나 서른아홉이야.

진짜로. 너네 엄마보다 많지?”


아이들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서른아홉이면…”

“우리 큰 이모랑 똑같아요…”


한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와, 우리 이모만큼 많네.”


그 말에 또 한 번

웃음이 터졌다.


아이들은

이제 관심이 풀린 얼굴로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연필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다시 교실에 퍼졌다.


나는 책상 옆에 서서

아이들 모습을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오십 살이라고 놀리던 애들이

이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양이수염을 그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말한 오십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들에게 오십은

‘우리 엄마보다 훨씬 많은 나이’였고,

‘이모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었고,

너무 멀게 느껴져서

아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나이였다.


그리고…. 나에게 오십은

어느 날 갑자기

숫자만 먼저 도착해 버린 것 같은 나이였다.


아직 마음은 그대로인데

나이만 한 발 앞서 가 있는 느낌.


나조차도

믿기지 않는 나이였다.


나는 잠깐 웃었다.


한 아이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

우리 언니는 이제 일곱 살 돼요.

유치원에서 제일 큰 언니예요.”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우와, 대단하다.

유치원 최고 선배님이네.”


그러자 옆에 있던 아이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야! 우리 오빠는 여덟 살이거든.

그래서 초등학생이야.”


그 아이는

유치원은 별거 아니라는 얼굴로

오빠 자랑을 한참 했다.


아이들은 다시

각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겐

한 살은 세상을 가르는 숫자였다.


다섯에서 여섯이 되면

후배가 생기고,

일곱에서 여덟이 되면

유치원에서 초등학생이 됐다.


나에게 한 살은

그냥 지나가는 숫자일 뿐이었는데,


이 아이들에게 한 살은

자랑이 되고,

계급이 되고,

세상이 넓어지는 일이었다.


나는 그 아이들 옆을 지나며

색연필 하나를 다시 깎아

연필통에 넣었다.


교실은 다시 시끄러워졌고

나는 그 소리가

괜히 좋았다.


나는 이곳에선
영원히 서른아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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