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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담는 자(소설)

4장 한반도의 훈민정음

by 한시을

17화: 발음기관의 비밀


납치


"움직이지 마시오."

칼날이 목에 닿았다. 차가웠다.

"저항하면 죽소."


나는 손을 들었다. "원하는 게 무엇이오?"

"조용히."

검은 천이 눈을 가렸다. 손이 뒤로 묶였다. 누군가 나를 끌고 걸었다.


얼마나 갔을까.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였다. 습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앉아라."

의자에 앉혔다. 눈가리개가 벗겨졌다.


횃불 하나가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앞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옷차림으로 알 수 있었다. 양반들이었다.

"신유 학사." 가운데 사람이 말했다. "우리는 자네를 해치려는 게 아니오."


"그럼 왜 이러시오?"

"경고하러 왔소." 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 "언문 작업을 그만두시오."

"불가능하오."


"왜?"

"전하의 명이오."

"전하께서 틀렸소!"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 언문은 나라를 망칠 것이오!"

"어떻게 그렇소?"


오른쪽 사람이 나섰다. "상놈들이 글을 알게 되면 질서가 무너지오. 양반을 무시하고, 법을 어기고, 반란을 일으킬 것이오!"

"그것은 양반들이 백성을 제대로 대하지 않아서요." 내가 반박했다. "백성이 글을 알면 오히려 나라가 강해지오."


"순진한 생각이오!" 왼쪽 사람이 비웃었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소.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가 있어야 하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오."

가운데 사람이 손을 들었다. "논쟁은 그만. 신유 학사, 마지막으로 묻겠소. 언문 작업을 그만둘 것이오?"


"아니오."

침묵이 흘렀다.

"그럼 어쩔 수 없소." 가운데 사람이 칼을 빼들었다. "자네를 없애는 수밖에."


칼이 내려왔다.

그 순간, 문이 박살났다.

"멈춰라!"


병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궁궐 호위무사들이었다.

"누구냐!" 검은 옷의 사람들이 당황했다.

"세종대왕의 명이다!" 호위무사 대장이 소리쳤다. "모두 체포하라!"


싸움이 벌어졌다. 칼이 부딪치는 소리, 비명, 발소리.

나는 묶인 채로 바닥에 쓰러졌다. 누군가 내 옆으로 달려왔다.

"신유!" 익숙한 목소리였다. 소헌이었다. "괜찮아요?"


"마마... 어떻게..."

"전하께서 보내셨어요. 당신을 미행하는 자들이 있다는 첩보를 받으셨대요."

밧줄이 풀렸다.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싸움은 끝났다. 검은 옷의 사람들이 모두 체포되었다. 얼굴을 가린 천이 벗겨졌다.

최만리였다. 그리고 그의 측근 대신들.

"최만리!" 호위무사 대장이 분노했다. "감히 집현전 학사를 해치려 하다니!"

최만리가 비웃었다. "나를 잡아도 소용없소. 대신들 절반이 나와 같은 생각이오."


전하의 결단


다음 날 아침, 세종이 최만리를 불렀다.

"경은 짐을 실망시켰다."

최만리가 무릎을 꿇었지만 고개는 들고 있었다. "신은 전하를 위해 한 일입니다."


"짐을 위해?" 세종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학사를 죽이려 한 것이?"

"그 학사가 전하를 잘못된 길로 이끌고 있습니다!"

"그만!" 세종이 책상을 쳤다. "경은 국문을 받을 것이다. 물러가라."


최만리가 끌려 나갔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갑고 확신에 차 있었다.

세종이 나를 불렀다. "신유, 다치지는 않았느냐?"

"괜찮습니다, 전하."


"미안하다." 세종이 한숨을 쉬었다. "짐 때문에 네가 위험에 처했구나."

"아닙니다. 이것은 제 선택입니다."

세종이 나를 바라봤다. "신유, 너는 특별하구나."


"전하?"

"다른 학사들은 언문을 연구하지만 눈빛이 다르다. 하지만 너는..." 세종이 미소를 지었다. "마치 이 글자를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

내 가슴이 뛰었다. 세종은 알고 있었다. 내가 평범한 학자가 아니라는 것을.


"전하, 저는..."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글자가 세상을 바꿀 거라고 믿습니다."

"짐도 그렇다." 세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 신유, 너에게 부탁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발음기관을 연구해 다오." 세종이 종이를 꺼냈다. "ㄱ, ㄴ, ㄷ... 이 글자들이 정말 발음기관을 정확히 나타내는지 확인해야 한다."

나는 종이를 받았다. 손이 떨렸다.


"어떻게 연구하면 될까요?"

"직접 관찰하라." 세종이 말했다. "사람들의 입, 혀, 목을 보고. 소리 낼 때 어떻게 움직이는지."


연구의 시작


집현전에 작은 방을 만들었다.

거울 여러 개를 놓았다. 촛불을 밝혔다. 종이와 붓을 준비했다.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다른 학사들에게 말했다. "각자 거울 앞에 서서 소리를 내보십시오."


"무슨 소리를요?" 한 학사가 물었다.

"ㄱ."

"ㄱ?"


"네. ㄱ 소리를 내면서 혀의 위치를 관찰하십시오."

학사들이 거울 앞에 섰다. "ㄱ... ㄱ..."

나도 거울을 봤다. 입을 벌리고 ㄱ 소리를 냈다.


"으윽..."

혀뿌리가 목구멍 쪽으로 올라갔다. 목구멍을 막았다. 그리고 갑자기 터지면서 ㄱ 소리가 났다.

"보이십니까?" 내가 물었다.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습니다."


"오..." 학사들이 감탄했다. "정말 그러네요."

"이제 ㄴ을 해보십시오."

"ㄴ... ㄴ..."


이번에는 혀끝이 윗잇몸에 닿았다. 코로 소리가 빠져나갔다.

"혀끝입니다." 내가 설명했다. "ㄴ은 혀끝이 윗잇몸에 닿는 소리입니다."

하나하나 연구했다. ㄷ, ㄹ, ㅁ, ㅂ, ㅅ...


각각의 소리마다 혀의 위치가 달랐다. 입술의 모양이 달랐다. 목구멍의 상태가 달랐다.

"대단합니다!" 한 학사가 외쳤다. "전하께서 정말 발음기관을 정확히 본떠서 만드셨군요!"

나는 소름이 돋았다. 세종은 어떻게 알았을까. 천 년 전 소마와 내가 범어를 만들 때 썼던 바로 그 방법을.


"모음도 연구해야 합니다." 내가 말했다. "ㅏ, ㅓ, ㅗ, ㅜ..."

"ㅏ..." 학사들이 따라 했다.

입이 크게 벌어졌다. 혀가 아래로 내려갔다.


"ㅓ..."

입이 조금 좁아졌다. 혀가 중간쯤.

"ㅗ..."

입이 둥글게 오므라졌다. 혀가 올라갔다.

"완벽합니다!" 나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 "정말 완벽해요!"


소헌의 방문


밤늦게까지 연구하고 있을 때, 소헌이 찾아왔다.

"아직도 하고 계세요?" 그녀가 음식을 들고 왔다. "식사도 거르셨죠?"

"마마..." 나는 급히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그녀가 음식을 내려놓았다. "어떻게 되어가요?"

"놀랍습니다." 나는 연구 결과를 보여줬다. "전하께서 만드신 글자가 발음기관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소헌이 종이들을 봤다.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이걸 보면... 누구나 배울 수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발음 기관만 이해하면 글자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말 대단해요." 소헌이 미소를 지었다. "전하께서 기뻐하실 거예요."

그녀가 자리에 앉았다. "신유 학사, 여쭤봐도 될까요?"


"말씀하십시오."

"왜 이렇게 열심히 하세요?" 소헌이 나를 바라봤다. "목숨까지 위험한데."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했다.


"저는... 이 글자를 위해 태어난 것 같습니다."

"무슨 뜻이죠?"

"설명하기 어렵지만..."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마치 천 년을 기다린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 글자가 완성되는 것을."


소헌이 조용히 듣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천천히 말했다. "제 전생부터 이 일을 해왔는지도 모릅니다."

"전생이요?"


"네. 다른 곳에서, 다른 이름으로. 하지만 같은 일을. 글자를 만드는 일을."

소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요."

"네?"


"저도 느껴요."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신유 학사님은 특별한 분이라는 걸. 그리고..." 그녀가 종이들을 가리켰다. "이 글자들도 특별해요.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무언가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나는 감동받았다. 소헌은 이해하고 있었다. 이 글자가 얼마나 소중한지.


"마마."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하를 도와주십시오. 이 글자를 세상에 알리는 것을."

"물론이죠." 소헌이 단호하게 말했다. "저도 배웠으니까요. 그리고 다른 여인들에게도 가르칠 거예요."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감사하죠." 그녀가 일어났다. "이제 좀 쉬세요. 내일도 바쁠 테니까."

그녀가 나가려다 멈췄다. "참, 신유 학사."

"네?"


"조심하세요." 소헌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최만리가 국문을 받고 있지만... 그의 동조자들이 아직 많아요. 조정 대신의 절반이 언문을 반대하고 있어요."

"알고 있습니다."


"특히..." 그녀가 주위를 살폈다. "영의정 황희도 반대파예요. 겉으로는 중립인 척하지만."

내 가슴이 철렁했다. 황희는 세종의 오른팔이었다. 그가 반대한다면...

"그리고 며칠 후에..." 소헌이 속삭였다. "대신들이 집단 상소를 올릴 거래요. 언문 폐지를 요구하는."


"언제요?"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곧이에요."

그녀가 사라졌다.


나는 혼자 남았다. 촛불이 흔들렸다.

'시간이 없다.'

연구를 빨리 끝내고 전하께 보고해야 했다. 언문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완벽한지 증명해야 했다.


그래야 대신들을 설득할 수 있다.

나는 다시 책상에 앉았다. 붓을 들었다. 종이에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ㄱ, ㄴ, ㄷ, ㄹ, ㅁ, ㅂ, ㅅ...


하나하나 발음기관의 그림과 함께.

밤새 작업했다. 손이 저렸다. 눈이 침침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동이 틀 무렵, 완성되었다.


'발음기관도해'

모든 글자의 발음 원리를 그림과 함께 정리한 문서.

"이제 이것을 전하께..." 나는 중얼거렸다.


그때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불이야! 불이야!"

나는 벌떡 일어났다. 창밖을 봤다.


집현전 서고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불길이 치솟았다.

"안 돼!"

서고에는 우리의 모든 연구 자료가 있었다. 언문 초고들, 연구 기록들, 모든 것이.


나는 뛰쳐나갔다.

불길이 거셌다. 사람들이 물을 길어다 부었지만 소용없었다.

"누가 불을 질렀습니까?" 내가 소리쳤다.


"모릅니다!" 한 학사가 대답했다. "갑자기 불이 났어요!"

나는 직감했다. 이것은 사고가 아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불을 질렀다.

반대파의 소행이다.


"자료들을!" 나는 서고로 뛰어들려 했다.

"안 됩니다!" 누군가 나를 붙잡았다. "들어가면 죽습니다!"

"하지만 안에 모든 것이..."


그때 건물이 무너졌다. 쾅! 지붕이 무너지고 벽이 쓰러졌다.

모든 것이 재가 되었다.

나는 무릎이 꺾였다.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하지만 그때 문득 깨달았다.

내 손에 '발음기관도해'가 있다는 것을.


마지막 밤에 완성한 이것만은 살아남았다.

나는 종이를 꽉 쥐었다.

'이것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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