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욕망을 쫓는 물고기들: 불교로 보는 문학의 풍경

제4부 문학과 불교의 해제

by 한시을

20회: 무상 – 변하지 않는 건 변한다는 사실뿐


잠깐, 생각해 보세요.

조선의 하늘은 500년 동안 견고했습니다. 양반-중인-상민-천민. 누구도 이 질서를 흔들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무너졌습니다.

일제의 하늘도 영원할 것 같았습니다. 총칼로 억압하고, 교육으로 세뇌하고, 돈으로 회유했습니다.

하지만 무너졌습니다.

분단의 하늘, 독재의 하늘, 모두 무너졌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무상(無常)입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

하늘도 변하고, 먹이도 변하고, 물고기도 변합니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게 됩니다.

변하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하늘의 무상: 모든 권력은 무너진다


우리가 본 6개의 하늘을 다시 봅시다.

봉건의 하늘 (조선, 1392-1910)
500년 동안 유지된 신분제. 춘향이 거역한 변학도도, 홍길동이 맞선 적서차별도, 모두 이 하늘의 먹이였습니다. 견고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1910년, 경술국치와 함께 무너졌습니다.

식민의 하늘 (일제강점기, 1910-1945)
황국신민화, 창씨개명, 징용. 이인화가 기차에서 본 황폐한 조선. 영원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1945년, 해방과 함께 무너졌습니다.

분단의 하늘 (1945-)
남과 북. 명호가 선택하지 못한 두 개의 하늘. 고정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남한의 하늘도 계속 변했습니다.

독재의 하늘 (1960-1987)
박정희, 전두환. 경제성장과 3S정책. 난장이 아버지가 달나라를 꿈꾸게 만들고, 동호를 총으로 쏜 하늘. 영원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1987년, 6월 항쟁으로 무너졌습니다.

자본의 하늘 (1987-2000년대)
민주화 이후 자본주의. 돈이 정의를 매수하고, 강인호의 진실을 억압한 하늘.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변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의 하늘 (2000년대-현재)
경쟁과 효율. 김지영의 정체성을 빼앗고, 영혜를 식물로 만든 하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하늘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영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보이나요?

모든 하늘이 변했습니다.

견고해 보이던 것도, 영원할 것 같던 것도, 모두 무너지고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무상입니다.


먹이의 무상: 욕망의 대상도 변한다


하늘이 변하니, 먹이도 변했습니다.

봉건 시대의 먹이

과거 급제 (법)

신분 상승 (법)

정절과 효도 (법)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과거 급제는 최고의 먹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원하지 않습니다.

식민 시대의 먹이

신교육 (법)

근대화 (법)

일본 통치체제 순응 (법)

이광수의 이형식이 쫓던 신교육은 당시에는 진보적 먹이였습니다. 하지만 해방 후에는 친일의 흔적이 되었습니다.

독재 시대의 먹이

경제성장 (법+미)

3S정책 (색성향미촉)

체제 순응 (법)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은 강력한 먹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압축 성장의 폐해"로 비판받습니다.

자본 시대의 먹이

돈 (미)

경력 성공 (법)

사회적 지위 (법)

1990년대의 경력 성공은 여성들에게 해방의 먹이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곧 새로운 억압이 되었습니다.

신자유 시대의 먹이

자기계발 (향)

개인의 정체성 (향)

효율과 경쟁 (법)

지금 우리가 쫓는 "나다움"도 언젠가는 변할 것입니다.

보이나요?

모든 먹이가 변했습니다.

어제의 선(善)이 오늘의 악(惡)이 되고, 어제의 진보가 오늘의 반동이 됩니다.

이것이 무상입니다.


물고기의 무상: 우리 자신도 변한다


하늘도 변하고, 먹이도 변하는데, 물고기는 어떨까요?

물고기도 변합니다.

춘향도 늙었을 것입니다. 몽룡과 결혼한 후, 양반 부인으로 살면서 젊은 날의 열정을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다른 기생 딸들을 보며 "신분을 알아야지"라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인화도 변했을 것입니다. 아내가 죽은 후, 실의에 빠지거나, 아니면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민족의식이 약해졌을 수도 있고, 더 강해졌을 수도 있습니다.

명호는 제3국 배에서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살았다면?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변했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보세요.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릅니다. 몸도 변했고, 생각도 변했고, 가치관도 변했습니다. 10년 전에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지금은 사소해 보입니다. 10년 전에 싫어했던 것을 지금은 좋아합니다.

20년 후의 나는 또 다를 것입니다. 지금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사소해질 것입니다.

내 안에 영원한 '나'는 없습니다.

세포도 7년마다 다 바뀝니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의 나는 7년 전의 나와 물리적으로 다른 존재입니다.

이것이 무상입니다.


그렇다면: 무의미한 것인가?


여기서 절망적인 질문이 생깁니다.

모든 것이 변한다면, 집착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춘향이 정의를 위해 죽음을 무릅쓴 것, 의미가 있을까요? 어차피 조선의 하늘도 무너졌고, 신분제도 사라졌는데.

동호가 민주주의를 위해 도청을 지킨 것, 의미가 있을까요? 어차피 전두환 독재도 무너졌고, 민주화도 왔는데.

강인호가 진실을 폭로하려 한 것, 의미가 있을까요? 어차피 가해자들은 처벌받지 않았고, 시스템은 그대로인데.

변하는 것을 위해 괴로워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부처님이라면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집착을 버려라. 무상을 받아들여라."

하지만 우리는 묻습니다.

"집착을 버리면, 무엇을 위해 살까요?"


역설: 변하지만 남는 것


여기서 놀라운 역설이 나타납니다.

하늘은 무너졌지만, 춘향은 남았습니다.

조선의 신분제는 사라졌지만, 춘향의 정의는 500년 후에도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일제는 물러갔지만, 이인화는 남았습니다.

식민지배는 끝났지만, 이인화의 괴로움은 100년 후에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독재는 무너졌지만, 동호는 남았습니다.

전두환은 감옥에 갔지만, 동호의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계속 살아있습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하늘은 변하고, 먹이는 변하고, 물고기도 변합니다.

하지만 그 괴로움은 남습니다.
하지만 그 펄떡임은 남습니다.
하지만 그 문학은 남습니다.

어떻게 변하는 것이 영원할 수 있을까요?


무상 속의 영원: 욕망의 구조는 불변이다


답은 여기 있습니다.

하늘은 변하지만, 하늘의 본질은 같습니다.

조선이든, 일제든, 독재든, 자본이든, 신자유든.
모든 하늘은 물고기에게 순응을 강요했습니다.
형태는 달랐지만 본질은 같았습니다.

먹이는 변하지만, 먹이의 구조는 같습니다.

과거 급제든, 경제성장이든, 자기계발이든.
모두 색성향미촉법 중 하나였습니다.
대상은 달랐지만 구조는 같았습니다.

물고기는 변하지만, 욕망의 구조는 같습니다.

춘향도, 이인화도, 동호도, 강인호도, 김지영도.
모두 원하는 것(욕망)과 현실(먹이)의 불일치로 괴로워했습니다.
상황은 달랐지만 구조는 같았습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무상(無常) - 모든 것은 변한다.
하지만 괴로움의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
이것이 문학이 포착하는 것입니다.


문학이 기록하는 것: 무상 속의 영원


문학은 무엇을 기록할까요?

구체적인 하늘을 기록합니다.
조선의 신분제, 일제의 식민지배, 전두환의 독재.
하지만 그 하늘들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구체적인 먹이를 기록합니다.
과거 급제, 신교육, 경제성장.
하지만 그 먹이들은 이제 아무도 원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물고기를 기록합니다.
춘향, 이인화, 동호.
하지만 그들도 이미 죽었거나 늙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여전히 감동받을까요?

왜냐하면 문학은 구체적인 것을 통해 보편적인 것을 기록하기 때문입니다.

춘향을 통해, 우리는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인간을 봅니다.
이인화를 통해, 우리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인간을 봅니다.
동호를 통해, 우리는 신념을 위해 싸우는 인간을 봅니다.

조선의 하늘은 사라졌지만, 부당한 권력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일제는 물러갔지만, 정체성의 위기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독재는 무너졌지만, 신념을 위한 싸움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하늘은 변했지만, 하늘과 싸우는 물고기는 여전히 있습니다.

이것이 문학이 영원한 이유입니다.


무상의 위로: 나쁜 하늘도 무너진다


무상은 절망적으로 들립니다. 모든 것이 변한다니.

하지만 역설적으로, 무상은 희망이기도 합니다.

나쁜 하늘도 변합니다.

조선의 신분제는 500년 동안 견고했지만 무너졌습니다.
일제의 식민지배는 영원할 것 같았지만 끝났습니다.
박정희, 전두환의 독재는 강력했지만 무너졌습니다.

지금의 나쁜 하늘도 언젠가는 무너질 것입니다.

자본이 정의를 매수하는 구조도 변할 것입니다.
신자유주의가 강요하는 경쟁도 변할 것입니다.
김지영을 괴롭히는 성차별도 변할 것입니다.

무상은 희망입니다.

춘향이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운(運)이었습니다. 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 돌아온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운과 우연도 무상의 일부입니다.

동호는 죽었지만, 광주는 기억되었습니다. 독재는 무너졌습니다. 그것도 무상입니다.

강인호는 재판에서 졌지만, 《도가니》는 '도가니법'을 만들었습니다. 법이 바뀌었습니다. 그것도 무상입니다.

나쁜 것도 변한다.

이것이 무상이 주는 위로입니다.


무상의 괴로움: 좋은 것도 사라진다


하지만 무상은 괴로움이기도 합니다.

좋은 것도 변합니다.

춘향과 몽룡의 사랑도 언젠가는 시들 것입니다.
동호의 열정도 세월이 지나면 식을 것입니다.
강인호의 정의감도 나이가 들면 약해질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도 변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것도 시들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도 사라질 것입니다.

이것이 애별리고(愛別離苦) -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괴로움입니다.

부처님이 발견한 진리입니다. 무상 때문에 우리는 괴롭습니다.


무상을 받아들이기: 집착을 버리라?


부처님의 가르침은 명확합니다.

"무상을 받아들여라. 집착을 버려라."

하늘도 변하고, 먹이도 변하고, 물고기도 변합니다. 변하는 것에 집착하지 마라. 그것이 괴로움을 만든다.

그렇다면 문학의 물고기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할까요?

춘향에게: "정의에 집착하지 마라. 변학도의 수청을 들어라. 어차피 신분제도 언젠가 무너질 것이다."

동호에게: "민주주의에 집착하지 마라. 도망쳐라. 어차피 전두환 독재도 언젠가 무너질 것이다."

강인호에게: "정의에 집착하지 마라. 포기해라. 어차피 자본의 하늘도 언젠가 변할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춘향전도, 소년이 온다도, 도가니도 없을 것입니다.
문학도 없을 것입니다.
변화도 없을 것입니다.


역설의 해결: 집착이 변화를 만든다


여기서 놀라운 역설이 나타납니다.

집착이 무상을 만듭니다.

춘향이 정의에 집착했기에, 조선의 하늘은 조금 흔들렸습니다.
동호가 민주주의에 집착했기에, 전두환의 하늘은 무너졌습니다.
강인호가 정의에 집착했기에, '도가니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집착하는 물고기들이 하늘을 바꿉니다.

하나의 물고기는 약합니다. 춘향 혼자서는 신분제를 무너뜨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춘향 같은 물고기들이 모이면 강물이 됩니다.
그 강물이 하늘을 적시고, 구름이 되고, 새로운 하늘을 만듭니다.

이것이 핵심 통찰입니다.

개인의 집착 → 집단의 연대 → 강물의 변화 → 하늘의 변화

무상은 그냥 일어나지 않습니다.
집착하는 물고기들이 펄떡여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무상과 문학: 변하지만 영원한


이제 우리는 알았습니다.

문학은 무상을 기록합니다.
하늘이 변하는 것, 먹이가 변하는 것, 물고기가 변하는 것.

하지만 동시에 영원한 것을 기록합니다.
욕망의 구조, 괴로움의 본질, 펄떡이는 인간성.

500년 전 춘향의 이야기가 지금도 감동을 주는 이유는,
하늘은 변했지만 욕망의 구조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00년 전 이인화의 이야기가 지금도 울림을 주는 이유는,
하늘은 변했지만 정체성의 위기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0년 전 동호의 이야기가 지금도 우리를 흔드는 이유는,
하늘은 변했지만 신념을 위한 싸움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문학은 무상 속에서 영원을 발견합니다.
문학은 변하는 것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기록합니다.

이것이 문학이 영원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마지막 질문입니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욕망의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째, 무상을 받아들이되, 집착을 버리지는 말아야 합니다.

지금 추구하는 것이 언젠가는 변할 것입니다. 그것을 압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것을 위해 펄떡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펄떡임이 변화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둘째, 구체적인 것에 집착하되, 보편적인 것을 보아야 합니다.

춘향은 몽룡과의 관계를 지키려 했습니다. 구체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정의라는 보편적인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도 구체적인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내 가족, 내 일, 내 꿈.
하지만 그것을 통해 보편적인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정의, 사랑, 존엄.

셋째, 변하는 것을 인정하되, 포기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하늘은 변할 것입니다. 지금의 나쁜 하늘도 무너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냥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펄떡여야 합니다. 그래야 변화가 옵니다.


다음은 공(空)이다


우리는 무상을 이해했습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

하지만 한 가지 더 깊이 들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공(空).

비어있다는 진리입니다.

욕망도 비어있고, 먹이도 비어있고, 물고기도 비어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짜일까요?
변하는 것도 거짓이고, 변하지 않는 것도 거짓이라면?
욕망도 환상이고, 괴로움도 환상이라면?

다음 회에서는 공(空)을 깊이 들여다봅니다.
비어있지만 가득 찬 것.
없지만 있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함께 찾아갑니다.


[다음 회 예고] 제4부 21회: "공(空) – 욕망과 먹이 모두가 비어있음" - 모든 것이 변한다면, 그것은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도, 먹이도, 물고기도, 모두 비어있습니다. 춘향이 쫓은 정의도, 동호가 쫓은 민주주의도, 김지영이 잃어버린 정체성도, 모두 환상일까요? 공(空)의 진리를 통해 문학이 말하는 것을 봅니다. 비어있지만 의미 있는 것, 환상이지만 진짜인 것, 그것이 무엇인지 함께 찾아갑니다.


keyword
수, 금 연재
이전 20화욕망을 쫓는 물고기들: 불교로 보는 문학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