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약 병아리 집사 12
'바다'와 '파도'
올여름 다녀온 바닷가를 떠올리며
딸아이가 청량한 느낌의 이름 두 개를 금세 정했다.
부화기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 내 친구가 병아리 키워보고 싶다는데
우리가 부화시켜서 한 마리 주면 어때?"
그 친구의 엄마와는 평소에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던 사이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당황스러운 반응과 함께
거북이 외에 애완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어
고민이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건,
망설임과 도전 속에서 방향을 찾고
한발 내디딜 용기를 얻기 위해
고민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그 고민은 오래 지속되진 않았다.
잠시 후,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병아리를 키워보기로 결정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병아리를 시골로 보내기 전 2주 동안
아이의 친구집으로 한 마리를 보내
함께 지내보게 하기로 했다.
이렇게 병아리 위탁이 결정되었다.
'병아리가 최소한 꼭 두 마리 이상은 태어나야겠네.'
우리의 마음속 간절한 바람은 현실이 되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두 마리의 예쁜 병아리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바다와 파도,
그중에 바다를 딸아이 친구 집으로 보내기로 했다.
딸아이는 아기를 포대기에 감싸듯
조심스럽게 병아리를 안아 데려다주며
친구와 한참 동안 이야기꽃을 피웠다.
각자 한 마리씩 병아리를 키우게 된 두 아이는
자연스레 새로운 공감대를 나누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병아리 이야기를 하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딸아이는 친구에게 키우게 된 병아리 이름을
새로 지어주라고 했고,
친구집에 간 바다는 노란 병아리를 줄여
'노리'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그런데 우리 집에 남은 파도와 달리
친구 집으로 간 바다는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이였다.
가족들이 곁에서 바라보거나 손길을 내밀면
순하고 따뜻하게 굴었지만 관심이 사라지는 순간
금세 삐약삐약 큰 소리로 울어댔다.
밤이 되면 그 울음은 점점 더 커졌다.
불을 끄고 가족들이 모두 잠자리에 들면
삐약, 삐약 마치 엄마를 찾는 신생아처럼
혼자 남은 노리의 울음은 밤이 깊어갈수록 길어졌다.
'이러다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오는 건 아닐까?'
'노리가 혼자 있어서 외롭고 슬픈 걸까?'
아이의 친구 가족은 며칠 동안
마음이 초조하고 걱정스러워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거실을 서성였다.
사랑받고 싶은 노리. 혼자 있기 싫은 노리.
병아리도 사람처럼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사랑이 느껴질 때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걸까?
다행히도 하루하루 노리가 자라면서
울음은 차츰차츰 줄어들었다.
그런데 2주가 다 되어갈수록
아쉬움이 커져간 건 딸아이의 친구가 아니라,
아이의 엄마였다.
"시간이 너무 금방 흘러가네.
거실에 꺼내놓으면 나만 따라다녀 정말 귀여워.
점프도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
노리에게 푹 빠져버린 딸아이 친구의 엄마는
마지막날 병아리를 건네주는 손길과 눈빛에서
아쉬움이 뚝뚝 흘러내렸다.
그렇게 파도와 노리 아니,
파도와 바다는 다시 만났다.
떨어져 있던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듯
둘은 늘 함께 붙어 다녔다.
그리고 얼마 후 두 병아리는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을 시골로 떠났다.
그 후로도 나는 종종 듣는다.
"노리는 잘 있지? 보고 싶다."
짧았지만 깊었던 시간.
2주는, 병아리와 사랑에 빠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