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23:59 01화

처음

by Green
@OpenAI


어느새 비바람이 한가득 지나갔나. 나무들은 밤새 단풍 방석을 펼쳐놓았다. 지금쯤 어디에서 남은 비가 쏟아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병원에서 드디어 나왔다. 그동안의 가려움증이 탄수화물 결핍으로 인한 증상이었다니 너무 놀라울 따름이었다. 등에는 이미 언제 회복될지 모를 붉은 반점으로 가득했다. 어느 행성의 지도인듯했다. 작은 기생들이 위에서 이미 대장정을 펼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결심한 듯 면과 쌀을 즐기기로 했다. 그런 김에 이번 저녁은 밀가루로 가득 채우기로 했다. 우동면 세 봉지와 만두를 챙겨 집으로 돌아갔다. 아무도 없는 기척을 유지하는 집이었다.


저녁 시간에 맞추어 요리를 시작하였다. 어느새 우동 두 그릇과 만두 한 접시가 완성되었다. 식탁에는 이미 올려진 깍두기와 멸치볶음이 있었다.


"어서 와!"


하며 자리에 앉았다. 어느새 툭 소리가 나며 시야 위로 몸체가 드러났다. 남편. 아침부터 쓰고 있던 검은색 페도라와 안경을 찬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등장했다. 앞머리를 숨기듯 올려 쓰고 있었다. 몇 시간째 의자에 앉아있었는지 몸에는 수건 냄새가 가득했다.


".. 고마워요."


나는 국물을 먼저 해치우기 시작했다. 아, 얼마 만에 먹는 밀가루인가. 오랜만에 느끼는 촉감에 온 신경이 따끔한 소리를 내며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멸치볶음에는 얼음향기가 그윽했다. 냉장고의 온도가 너무 낮은 듯했다. 무의 향이 아직 남아있는 깍두기를 입에 넣고 점점 비워지는 접시를 보며


'만두를 좀 더 구울 걸 그랬나..'


생각하는 나였다.


그런데, 그는 좀처럼 수저를 잘 들지를 않았다. 들더라도 조금씩 자잘하게 음식을 집어 입에 넣기만 하는 시늉을 취할 뿐이었다. 이랬던 그가 아니었는데. 나는 이미 그릇의 반을 비우고 있었다.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내가 치료를 받고 왔다는 것에 기분이 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왜 그래? 어서 먹어. 간만에 맛있게 만들었어."


그제야 나와 눈을 마주쳤다. 눈을 바라본 게 언제였나였을 정도로 처음 보는 모습인 듯했다. 살짝 거울빛을 띠고 있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건 거짓말이었다. 나와 눈을 정확히 마주치며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티 내기 위함이다. 분명히 숨기고 있는 것이 있음이 틀림없었다.


"솔직히 얘기해 줘. 나한테 말해도 부끄러울 게 없다는 거 알잖아."


"음.."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입을 열다 마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국 한 숟갈을 떠먹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럼.. 솔직하게 이야기해 드릴게요."


그리곤 이빨을 보이며 숨을 크게 들이쉬고 있었다.


@OpenAI


"솔직히,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해요. 너무나도 소중해서 한 순간 한 순간을 감히 넘기지 못할 정도예요. 당장이라도 저 만두를 집어 먹고 싶고, 이 그릇 속의 면을 모두 들이키고 싶어요."


"그래그래 당연하지! 어서 먹으란 말야!"


"그쵸. 늘 그렇게 저와 당신을 위해서 음식을 만들어주고 계세요. 그치만, 그런 시간의 가치와도 다름없는 이것들을 감히 제가 함부로 해도 될지 너무 겁이 나요. 물론 저를 위한 마음이 가장 크셨겠죠. 저를 위해서 밖에 나가 다시 돌아오신 거죠. 그렇게 만들어진 이 너무나도 소중한 가치가 하나의 욕구로 인해 사라져 버린다는 게 뭐랄까.. 너무 아쉬워서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아요. 너무 감사하고도 죄송스러운 이 감정을 정말.. 품고 싶기도 하고, 이 음식을 먹어버림으로써 없애고 싶기도 해요."


순간 나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생뚱맞은 이상한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외칠 뻔했다. 그러나 순간 알아차렸다. 그 말속에 얼마나 진심 어린 배려가 어려있는지 깨달았다. 그것은 오로지 나를 위한 내 아이만의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먹는 행위를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지는 단순한 욕구를 없애버리기 위한 수단일 뿐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고맙네. 그 사유가 너무 예뻐서. 난 그냥 한 끼 배불리 먹이고 싶어서 이렇게 만들어낸 것일 뿐인데, 그걸 함부로 다루어버리는 거라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나는 살짝 눈을 글썽였다. 슬프진 않았다.


"맞아요. 너무 미안했어요 그동안. 그 가치를 너무 저 혼자서 없애버린 것만 같았어요. 언젠간 이 솔직하고도 어리석은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옳지 않은 마음이란 걸 알았지만, 당신에게서 얻는 확신 외에는 이 감정을 소화해 낼 것이 없었어요. 여태 저는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혼자 만족하며 살아왔죠. 그 모습을 보며 침을 흘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어떻게든 저의 시간을 홀로 보내며 그 외로움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고자 했죠. 하지만 혼자 되뇌는 것은 오히려 그 외로움을 부추기더군요. 그런데 이건.. 표현해 주는 사람과 그것을 받아주는 사람이 함께 있는 이 모습은.. 사랑하는 이가 만들어준 음식을 사랑받는 이가 먹는 이 광경은.. 이것이 비로소 삶이라는 거였군요. 너무 고마워요."


내 아이다. 내 아이가 한 말이다.


"그래그래. 충분히 이해해. 괜찮아. 그러기 위한 거니까 먹어줬으면 해. 내가 만든 음식을 한 입 가득 입에 넣는 모습을 너무 보고 싶어. 그리고 함께 이야기하자. 지금은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야. 이 소중함을 느끼며 네가 좋아할 많은 이야기 들려줄게."


".. 정말요?"


그는 비로소 웃음을 띠었다. 바로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이 되었다. 그리고 한입 가득 면을 넣고 오물오물 씹고 있었다. 양볼에 음식을 넣고 있는 모양새가 너무..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느새 비워진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그걸 글로 쓰면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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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