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나는 바다를 생각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듯해 우산을 챙겼다. 어디에서나 흔히 보인 거대한 연잎을 자른듯한 모양새였다.
새로운 보금자리가 어느 곳에 지어질지 기대에 찬 마음으로 조용히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난히 시끄러운 폭우였다. 풀을 때리는 소리인지 강을 두드리는 소리인지 구분을 할 수 없었다.
본 편은 닌텐도 <동물의 숲>을 배경으로 하였으며, 작품의 공식 설정과는 무관하게 게임 내 캐릭터의 대사를 인용하여 작가의 상상을 더해 지어진 이야기입니다.
택시 창문에 물방울이 끊임없이 부딪혔다. 나는 창문을 살짝 열었다. 건물의 처마 밑으로 비둘기들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떼 지어 모여 깃을 다듬거나, 서로의 체온을 나누듯 조용히 웅크렸다. 습기가 가득한 공기가 들어오자 기사가 눈짓으로 창을 가리켰지만 나는 못 본척했다. 우연히 무리에서 눈에 띄게 떨어져 있는 한 마리의 비둘기를 발견했다. 소나무의 탄내가 나는 듯했다. 그 비둘기는 무리를 등지고 있었다. 그 비둘기는 홀로 비를 맞고 있었다. 고개를 약간 들어 흐린 하늘을 바라보는 그 모습은 이상하게 낯설고 또 익숙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부터 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을 깜빡이며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내가 있다는 눈초리를 강하게 쏘았지만 돌아오는 건 없었다.
“저, 손님...”
문득 시선을 두어야 할 곳을 놓쳤음을 깨달았다. 한 것 양 옆으로 찢어진 눈, 부리인지 입술인지 구분이 안 가는 도톰한 입이 눈앞에 보였다. 기사는 시간을 물어보며 차의 시계가 자주 먹통이 된다며 고치고 싶다는 듯한 말투를 보였다. 그 의미는 창문을 닫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비가 참말로 오래도 내리네."
그는 경험담을 드러 놓기 시작했다. 내가 이사를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아는 듯했다. 먼 곳에 가 돈 한 푼 없을 때에는 상점이라도 가서 허드렛일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것과 고독한 아침에는 블렌드 커피로 마음을 환기시키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역시 세상 일은 쉽지 않다는 것과 서로의 이름을 공유하는 것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문득 기사는 목적지의 이름을 잊었다. 나는 마을의 이름을 대답했다. 기사는 농담이었다는 말로 부끄러움을 대신했다. 마무리가 아쉬웠는지 이번에는 그곳에 가는 이유를 묻기 시작했다. 나는 침묵으로 답변을 하는 시늉을 하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순간 보았던 그곳이 박물관이었음을 깨달았다. 그것이 침묵의 이유는 아니었지만 어쩌면 그래도 좋았다. 본능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그곳은 연한 갈색의 높이 있는 세모 모양의 지붕을 취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그런 형태였으면 했다. 그런 모양새가 아니어도 마침내 마주치는 순간 내가 생각하던 크기와 모양이 옳았다는 관념이 탄생할 것 같았다.
기사는 어느새 비도 그쳤다는 말과 함께 슬슬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미 그쳤던 것일지도 모른다. 떠나온 그곳엔 아직 비가 쏟아지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는 도로를 벗어나 풀밭 위를 그대로 달려 어느 작은 광장 위의 돌바닥 위에 섰다. 이곳이구나 싶어 나는 그대로 내렸고 앞에는 보랏빛 문의 건물 한 채가 있었다. 기사는 수속을 위해 마을사무소에 들어가라고 하였다. 바로 그곳인 듯했다.
초록이라는 이름답게 마을에는 잎이 무성했고 바람이 불었다. 풀과 나무가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젓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나는 그대로 마을사무소에 들어갔다. 광장에는 빵을 쪼는 비둘기들이 있었다. 시선은 아래쪽이지만 낯선 누군가가 오는 것을 아는 듯 부리를 살짝 들며 쪼는 속도를 늦추었다.
사무소에는 보랏빛 날개의 오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더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없었다. 보이는 모든 것이 건물 안의 전부였다. 안쪽에는 테 없는 안경을 쓴 거북이 한 마리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다른 이는 보이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니 손에는 지도가 쥐어져 있었다. 이미 누군가가 살고 있는 듯한 집 세 곳이 표시되어 있었다. 머무를 집은 진한 초록색으로 조금 더 크게 그려져 있었다. 강을 가로지르는 남쪽 다리를 건너야 나오는 곳이다. 위쪽에는 고대 신전 형태의 조형물 표시가 있었다.
이곳이 머물 곳인가. 회색 지붕이다. 색을 칠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저러한 빛깔을 띄고 있었던 것 같다. 안에는 누가 태웠을지 모를 박스 위 촛불과 카세트라디오뿐이었다.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없었다. 어두울 땐 빛을, 고요함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싶을 땐 소리를. 문밖을 나서는 이유는 이 모습을 그리워하기 위함이며 이 속에 머무는 이유는 다시 문밖을 나서기 위함이다. 밤이 되어 공간의 형태를 느끼지 못할 때에는 그것을 다시 알게 하기 위한 작은 불빛, 그것이 비로소 채워지는 공간, 그리고 그 크기를 깨닫게 해주는 울려 퍼지는 소리. 이곳에 머물며 떠오를 앞날의 감정이 쉽게 그려졌다.
모든 것이 처음 보는 광경이지만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다. 비가 오는 겨울에는 도미를 낚고 귀뚜라미 우는 봄에는 화석을 캐고 별이 보이는 여름에는 땅강아지를 찾고 바람이 부는 가을에는 무를 심었다. 묘목을 심으면 나흘 만에 나무가 되었고 복숭아가 맺혔다. 빨간 장미를 심으면 이틀 만에 갈색빛으로 시들었고 물을 주면 다음날 바로 빛을 되찾았다. 아침에는 우체통을 열고, 낮에는 이웃 주민과 벽지를 교환하고 밤에는 풀소리만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분명 새로운 보금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