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걷는 소리“

by 황수선화

노인의 걷는 소리/황수선화


마지막으로 누구와 손을 잡았는지,

그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오래된 기억 하나를 더듬어,

낡은 손잡이를 다시 쥔다.


지나간 추억들이 쌓이고 쌓여

커다란 담벼락이 된,

오랜 기억들


지난 기억들의 무게가 나를 누르기에,

오늘도 지팡이를 짚고 걷는다.


탁,탁

지난 시간들이 내심 아쉬운지,

여운을 남기듯,

지나간 자리에 소리를 남기고 간다.


푸르른 잎사귀들이 손을 흔들듯이,

나에게 살랑거리고,


불어오는 바람의 향기를

지난 어린시절의 향기와 비교해보고.


눈 앞에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나이대를 보며

지나온 자신의 모습들과 빗대어

추억해본다.


이제 조금은 쉬어가고 싶기에.


누군가의 그늘 아래에서 컸던 아이는,

그늘을 누군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어른이 되었지만,


노인이 된 지금,

그늘도, 그늘 아래도

더는 나를 환영하지 않았었기에,


햇살에 반짝이는,

칠 벗겨진 벤치에,

조용히 앉는다.


그러고는,

향기를 품은 바람을 맞으며,

고개를 들어 생각에 잠긴다.


자신은 변해도

세상의 아름다움은 변하지 않았기에,


자신이 죽어도

이 세상은 변함없이 찬란할 것을 알기에,


왠지 모를 허탈함과 쓸쓸함이 스며든다.

세상의 이치는 냉정하기에.


어린시절의 추억은 항상,

기쁨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깊게 들어가보면

실망과 배신, 모욕, 폭력 등

다양한 불우한 감정들이,


나를 삼켜왔음을 다시 한번 되뇌인다.


지그시 눈을 감아본다.

바람을 품은 향기가 온다.


내가 죽어도,

변함없이 아름다움을 간직할,

이 찬란한 세상처럼


나 또한,

찬란했다.


어린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들린다.

푸르른 잎들은 손을 흔들듯이 살랑거리고,

바람 속에는 지난 추억들이 담겨 있다.


노인은 생긋 미소를 짓는다.

마치 어린 아이 같다.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길을 걷는다.


탁,탁

그 소리는, 처음과 달리

어떤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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