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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정말 선수가 되는 건가?

엘리트의 길로 들어서다.

by 섬나무

다니던 축구클럽에서 놀라운 공지가 올라왔다.

스페인 1부 리그,

발렌시아 CF의 유소년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소식.
'슛돌이 이강인' 선수가 몸담았던, 그 발렌시아였다.
심지어, 스페인 코치가 한국에 상주하며 직접 훈련을 진행한다고 했다.

‘이건 또 무슨 기회란 말인가?’


얼마 후, 설명회가 열렸다.
많은 부모님들이 설명회장을 가득 채웠다.
근우의 친구 어머님과도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선수반이 뭐예요?”

참석한 부모님들은 대체로 의아한 얼굴이었다.
미간을 찌푸린 채, 심란한 표정의 아버님들도 있었다.
걱정, 의구심, 기대가 뒤섞인 분위기 속—
스페인 현지 발렌시아 CF와의 화상 미팅이 시작되었다.

‘축구를 통해 성장한다’는 그들의 모토가 마음에 들었다.
“잘하는 선수는 스페인으로 갈 수도 있다”는 말에
부모님들 사이에 작지만 분명한 동요가 일었다.

글로벌한 프레젠테이션이 끝나자,
부모님들의 질문이 한여름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우리 아이들이 선수가 될 재능이 있는 건가요?”
“스페인 감독이 끝까지 책임져 주나요?”
축구에 대한 질문들

“주 4회씩 축구를 하면, 공부는 언제 하나요?”
“회비는 얼마나 비싸죠?”
현실적인 질문들

팔짱을 낀 한 아버님은 훈계도 잊지 않았다.
“에… 축구선수 된다는 게 아주 어려운 일인데 말이죠.”


'정말, 선수의 길로 들어서는 건가?'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부상당하면 어떡한담?'
'공부를 놓으면 안 되는데...'
나는 이미, 나 스스로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처음 만난 수학문제를 앞에 둔 아이처럼,
정처 없는 계산과 가정을 해댔다.

고모네 이웃집, 야구 선수를 하려다 실패한 형이 떠올랐다.
그랜저를 타던 그 형의 아버님이
아들을 타석에 한 번이라도 세우기 위해
뒷돈을 많이 찔러줬다고 했다.
선수가 못되곤 백수가 되었다며,

여전히 철이 없다며, 고모는 혀를 차며 말했었다.


아내와 선수반 가입 여부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마음의 동요는 아내도 컸던 모양이다.
운동선수가 되려다 실패한 스토리는
주식하다 망한 아무개보다 흔한 이야기 같았다.

이제는 근우의 의견을 물어야 했다.
우리는 경건한 의식을 앞둔 사제처럼
웃음기 없는 얼굴로 아이를 불렀다.

동생과 뛰놀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근우를
마주 보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근우야, 이제 선수반이 생긴대.
너도 그 반에 들어갈 수 있대.
선수반은 힘들고, 정말 열심히 해야 해.
네 선택이야. 잘 생각해야 해.
선수반, 해볼 거야?”

근우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근데 아빠, 성민이는 한대?”


나는 허물어지고 말았다. 또 잊고 말았다.
그저 축구가 좋고, 마냥 친구가 좋은 ‘아이’였지...

빼꼼히 다시 얼굴을 내민 기대를

조심스레 달래서, 다시 넣었다.


둘째, 재범이도 축구를 하고 있다.
아직 초등학교 2학년.
한 번 겪어봐서일까?
이제는 해탈한 수도승처럼
그저 웃으며 지켜볼 수 있다.

아이의 성장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매주 주말,

축구를 통해,

두 아이의 성장을 눈으로 목격한다.
도전과 실패, 그 실패를 넘어서는 희열도 느낀다.

이를 악물고 달리고, 땀을 흘리고, 부딪히고, 넘어진다.
그리고 또 일어나 달린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항상 묻는다.

“축구, 재밌니? 오늘 재밌었니?”
“응, 재밌었어.”

그럼, 그걸로 족하다.
꿈이 축구선수든 아니든,
아이가 꿈을 향해 즐겁게 나아가고 있다면 충분하다.

그리고 나는, 문득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내 꿈을 향해, 즐겁게 달려온 삶이었는지.

내 아들들은 어떻게 살았으면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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