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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수비수는 안돼

욕심의 주인

by 섬나무

“근우는 왜 수비수를 하는 것 같아?”
“잘 모르겠어.”
예상했던 대로다. 아들은 별 감흥이 없다.

지난달 받았던 근우의 평가표를 꺼냈다.
드리블, 패스, 발을 뻗는 수비 등등 갖가지 역량 항목들.
빨간색으로 칠해진, 낮은 막대그래프 몇 가지가 눈에 거슬렸다.

평가표를 근우가 자주 다니는 길목에다 붙였다.
혹시나? 낮은 평가에 자극받아 개인 연습이라도 하길 바라며 덫을 놓은 것이다.

'아빠 이게 뭐야? 더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흐뭇한 질문이 상상의 가지를 따라 꽃을 틔운다.


며칠간 감감무소식이다.
아빠의 덫은 아들을 유혹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다음은 더 강력한 미끼를 던진다


"근우야 오늘 아빠랑 축구 연습하면 게임시간 10분을 줄게"
"정말? 아빠 축구하러 나가자"

역시, 게임은 고성능 미끼다.

단, 효력이 확실한 만큼 역효과도 확실하다.


연습과 실력향상은 근우의 목표물이 아니다.
10분 게임 포상에 목을 매는 아이,

나는 뭔가 잘못된 것을 직감한다.


대체 뭐가 맞는 거지? 울고싶은 마음이다.
오은영 선생님과 싸커 대디의 심리상담이 시급했다.

"근우야, 게임을 너무 많이 하는 거 아냐?"
하랄 땐 언제고, 하고 있으면 심통이 난다.
'게임에 빠지면 어쩌지?' 걱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 연기가 되어 피어오른다.


어떻게든 수비수는 피해야 하는데...

나를 닮아 키가 크진 않을 텐데...

아빠의 고심만 깊다.




세계적 수비수인 김민재 선수로 인해

최근엔 인식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수비수와 골키퍼는 피해야 하는 비선호 포지션이다.


너무 수비 위주로 시킨다고 팀을 옮기기도 하고,

포지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부모님이 코치진에 따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


대게 끝이 좋지 않다.

팀을 떠나거나, 설령 남더라도 그 고통은 자녀가 떠앉는다.


자녀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부모님들의 욕심,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확실한 건 '욕심의 주인'은 자녀여야 한다.

아빠의 욕심은 내 자식의 것이 아니다.

근우는 수비로 출발해,

미드필더를 거쳐,

다시 중앙 수비를 주포지션으로 삼고 있다.

부모로서 큰 키와 다부진 신체를 물려주지 못한 것이 몹시 미안할 따름이다.


아들에게 묻는다.

"근우야 수비 계속해도 괜찮아?"

"응 풀타임으로 뛰는 건 나밖에 없잖아!

근데 미드필더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더 연습해야지 뭐"


우리의 아이는 생각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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