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3. “멕시코” 경계의 문이 만든 전쟁과 평화

by 김장렬
멕시코 지리.png 멕시코 지리 (출처 : 금성출판사 사회과 부도)

멕시코는 북미의 남쪽 끝이 아니다. 북미의 문이다. 문은 바람을 막지 못한다. 문은 열리고 닫히며, 바깥의 힘이 안쪽으로 스며드는 자리가 된다. 멕시코가 겪어온 전쟁과 평화는, 많은 경우 그 문이 열린 방식과 닫힌 방식의 기록이었다.


캐나다가 거리를 가졌다면, 멕시코는 경계를 가졌다. 캐나다의 국경은 거의 무장하지 않아도 되는 선이 되었지만, 멕시코의 국경은 늘 문제의 시작점이 되었다. 같은 대륙 위에서 왜 이렇게 달라졌는가. 그 질문은 제도나 인물보다 먼저, 지리를 보게 한다. 바다의 방향, 산맥의 배치, 물길의 부족, 사막의 길,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과 맞닿은 긴 경계선. 이 조건들이 멕시코를 “중심의 나라”가 아니라 “경계의 나라”로 만들었다.


멕시코는 강해서 전쟁을 택한 적도 있고, 약해서 전쟁을 피하지 못한 적도 있다. 그러나 더 자주, 전쟁은 멕시코가 원해서라기보다 지리가 불러온 충돌로 찾아왔다. 평화 또한 이상이 아니라 경계를 관리하는 기술로서 겨우 유지되었다.


1. 두 개의 바다, 하나의 취약성


멕시코는 태평양과 멕시코만(카리브해로 이어지는)에 동시에 닿아 있다. 지도만 보면 축복이다. 한 나라가 두 바다를 가진다는 것은 교역로를 두 개 가진다는 뜻이고, 위기 때는 탈출구가 둘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멕시코의 바다는 오래도록 방패가 되지 못했다. 바다는 멀리 있는 적을 늦추는 장벽이 되기도 하지만, 준비가 없으면 외세가 가장 먼저 들어오는 열린 문이 된다.

멕시코 바다.png 멕시코 바다(출처 : https://greenblog.co.kr)

16세기 초, 스페인이 그 문으로 들어왔다. 1519년 코르테스가 상륙해 내륙으로 파고들었고, 1521년 테노치티틀란이 무너지면서 아즈텍 제국은 급격히 해체되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전투의 승패만이 아니라, 해안에서 수도로 이어지는 내륙 통로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열려 있었다는 지리의 문제이기도 했다. 높은 산맥이 있어도, 바다는 상륙을 허용했고, 내륙의 정치 중심을 한번 흔들면 지배가 따라왔다. 멕시코의 바다는 장거리 방어선이 아니라, ‘침투의 시작점’이 되었다.

에르난 코르테스 멕시코 아즈텍문화 정복.png 에르난 코르테스, 멕시코 아즈텍 문화 정복 (출처 : https://www.hmap.co.kr/contents/view)

멕시코만 연안은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곳은 항로이자 에너지의 자리다. 멕시코의 석유 산업은 오랫동안 멕시코만의 해상 생산과 연안 시설에 기대어 왔다. 바다는 경제의 생명선이 되었지만, 그만큼 외부의 영향력도 강해졌다. 멕시코만이 미국 남부와 연결되는 공간이라는 사실은, 멕시코가 바다를 통해서도 미국의 중력권 안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태평양 연안 역시 마냥 안전하지 않았다. 대양은 멀지만, 멀다는 것은 동시에 무언가를 “지켜줄 해군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강한 해군력이 없는 두 바다는, 멕시코에게 방패라기보다 넓은 노출면이었다. 멕시코의 해안선은 풍부한 가능성이었지만, 역사적으로는 늘 “먼저 열린 자리”였다.

멕시코 군사력 순위.png 멕시코 군사련 순위(2023년 145개국 중 31위) (출처 : https://www.reddit.com/r/geography/comments/16i40kj/mexicos)


2. 방패였지만 벽이 되지 못한 산맥과 사막


멕시코의 땅은 평평하지 않다. 나라의 몸통에는 높은 고원이 있고, 그 고원을 양쪽에서 시에라 마드레(서부·동부) 산맥이 끌어안는다. 여기에 ‘멕시코 화산대(Trans-Mexican Volcanic Belt)’가 가로질러, 중부는 산과 고원이 겹치는 구조를 이룬다. 이런 지형은 방어에 유리해 보인다. 좁은 고개와 산악 통로를 지키면, 큰 군대도 속도를 잃는다.

멕시코 산맥.png 멕시코 산맥 (출처 : 금성출판사 사회과부도)

그런데 멕시코의 산맥은 “국경의 벽”이 되기보다 “내부를 나누는 주름”으로 작동해 왔다. 산맥은 외부를 막는 대신, 내부의 이동을 어렵게 만들었다. 중앙 권력이 전국을 고르게 통제하기 어렵고, 지역마다 경제·문화·치안이 다르게 흘러가기 쉬운 구조다. 방어는 쉬워도 통합은 어렵다. 그 결과 멕시코의 정치사는 한동안 “외세와의 전쟁”뿐 아니라 “내부의 분열과 진동”으로도 흔들렸다.


19세기 중반 멕시코와 프랑스 전쟁(1861~1867)에서도, 멕시코의 산과 고원은 저항의 공간이 되었다. 프랑스는 멕시코시티를 중심으로 질서를 세우려 했지만, 넓고 복잡한 내륙은 단순한 점령으로 굴복하지 않았다. 외세는 수도를 잡아도 나라 전체를 붙잡지 못했고, 멕시코는 결국 공화정의 축을 되찾는다. 지형은 멕시코에게 “버티는 시간”을 주었다. 다만 그 시간은 국가 통합을 자동으로 주지 않았다.

프랑스 군에 맞서 싸우는 멕시코 군.png 프랑스 군에 맞서 싸우는 멕시코 군(출처 : https://www.haninsinmun.com/single-post)

20세기 초 30년간 집권한 포르피리오 디아스 독재 정권에 맞서 프란시스코 마데로가 봉기하며 시작된 대규모 무장 투쟁인 멕시코 혁명(1910~1920) 또한 ‘산과 고원의 나라’가 가진 분열의 속성을 보여준다. 혁명은 단일한 전선이 아니라 지역별 이해와 무장 세력이 엮인 복합 충돌이었고, 광대한 내륙은 중앙의 명령만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산맥은 방패가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부 균열의 공간이기도 했다. 멕시코에서 전쟁은 종종 외부에서 오고, 혼란은 자주 내부에서 자랐다.

멕시코 혁명군.jpg 멕시코 혁명군(출처 : https://history-maps.com/ko/story/History-of-Mexico/event/Mexican-Revolution)


3. 통로가 아닌 단절의 강과 사막


미국과 캐나다가 강의 나라라면, 멕시코는 상대적으로 물길이 빈약한 나라다. 큰 강이 국가 전체를 하나로 꿰는 형태가 약하다. 물론 레르마–산티아고 강, 발사스 강, 남부의 우수마신타·그리할바 같은 물길이 있지만, 북미의 거대한 수운 체계처럼 국토를 통합하는 “단단한 물류의 척추”가 되기에는 제한이 있었다.


대신 북부에는 사막이 있다. 소노라 사막과 치와와 사막은 넓고 건조하다. 사막은 자연 방어선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종종 통제의 공백이 된다. 사람이 살기 어렵다는 것은, 국가의 행정력과 치안력도 촘촘히 들어가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 빈틈은 국경의 긴장과 결합할 때, 전쟁이 아니면서 전쟁 같은 갈등을 만들기 쉬워진다.

치와와 사막.jpg 치와와 사막 (출처 : https://www.khan.co.kr/photo_collection.html?art_id=20240819170105)

사막은 군대를 막기도 하지만, 동시에 “길이 보이면 빠르게 열린다.” 트럭과 도로, 통신이 발달한 시대에 사막은 더 이상 천연 장벽만은 아니다. 사막은 이제 밀수와 이주의 통로가 된다. 물이 부족한 공간은 삶을 밀어내고, 그 밀림은 국경을 향한다. 멕시코의 지리는 이렇게 전쟁을 유발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함대와 군대가 들어왔고, 지금은 사람과 물자가 밀려든다. 그러나 본질은 같다. “경계”가 흔들릴 때, 멕시코의 안정도 흔들린다.


4. 전쟁으로 잃어버린 땅과 굳어진 경계


멕시코의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전쟁은 1846~1848년의 멕시코–미국 전쟁이다. 이 전쟁은 단지 영토를 잃은 사건이 아니라, 멕시코가 이후 오랫동안 경계를 어떻게 바라보게 되었는지를 결정했다. 당시 멕시코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했고, 북부의 광대한 지역은 인구와 통제가 충분히 밀집되지 못한 상태였다. 반면 미국은 팽창의 동력을 갖고 있었고, 국경선은 긴장으로 달아올랐다.


전쟁은 멕시코의 패배로 끝나고, 1848년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으로 멕시코는 광대한 영토를 상실한다(오늘날의 캘리포니아·네바다·유타 등과 애리조나·뉴멕시코 일부를 포함하는 지역). 그 결과 리오그란데(멕시코에서는 리오 브라보)가 “국경”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진다. 강이 경계를 만들 때, 경계는 지도 위에서 가장 선명해진다. 하지만 강은 동시에 사람을 부른다. 물이 있고 길이 있고, 건널 수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국경은 이때부터 단순한 선이 아니라, 역사적 기억이 된다.

미국 멕시코 전쟁결과.png 멕시코-미국 전쟁결과 할양된 땅 (출처 : https://sheennet.co.kr/kg)

이 전쟁은 멕시코의 전략 감각도 바꾸었다. 멕시코는 이후 확장의 꿈보다 “상실을 반복하지 않는 것”에 더 민감해졌다. 군사력은 대양을 건너 힘을 투사하기보다, 내부를 유지하고 경계를 지키는 방향으로 조정된다. 그러나 국경은 지키기 어려운 길이다. 길고, 다양하고, 지역마다 다르다. 멕시코의 지리는 전쟁의 상처를 기억하게 만들었고, 그 기억은 오늘날까지도 국경을 둘러싼 감정과 정책에 남아 있다.


5. 전쟁이 아닌데 전쟁 같은 국경의 일상


멕시코의 국경은 군대끼리 싸우는 전선이 아닐 때가 많다. 대신 이곳은 경찰과 범죄 조직, 이주민과 단속, 경제와 불법이 맞부딪히는 자리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어떤 날에는 전쟁보다 더 많은 총성이 난다.


21세기에 들어 멕시코가 겪어온 가장 고통스러운 갈등은 ‘카르텔과 국가’ 사이의 충돌이다. 2006년 이후 정부의 강경 대응이 본격화되면서, 무장 조직의 폭력은 여러 지역에서 심해졌다. 이 문제는 도덕이나 단속의 문제만이 아니다. 지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북부 사막과 산악, 긴 국경선, 해안 항로, 그리고 거대한 소비 시장이 바로 북쪽에 있다는 사실. 이 조건이 불법 경제의 통로를 만든다.

카르텔과 국가와의 전쟁.jpg 카르텔과 국가와의 전쟁 (출처 : https://blog.naver.com/dapapr/110111230817)

여기서 국경은 담장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국경은 선이 아니라 면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국경의 틈에서 움직이고, 물자는 국경의 길에서 흐른다. 멕시코의 평화는 단순히 전쟁을 피하는 일이 아니라, 이 ‘면’을 관리하는 일이다. 질서의 붕괴가 곧 국경의 붕괴로 이어지고, 국경의 붕괴가 다시 내부의 불안으로 돌아오는 순환이 있다.


이주 문제도 같은 구조에 있다. 남쪽의 중미에서 올라오는 이주 흐름은 멕시코를 “통과 국가”로 만들고, 때로는 “정착 국가”로도 만든다. 멕시코는 외부의 갈등을 떠안고, 내부의 한계를 드러낸다. 그 과정에서 멕시코의 지리는 전쟁을 만들기보다, 전쟁 같은 긴장을 만든다. 국경은 총알보다 오래 남는 갈등이다.


멕시코 국경 이민자 단속.jpg 멕시코 국경 이민자 단속 (출처 :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


6. 충돌을 피하기 위한 외교의 기술


멕시코는 대국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 지리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북쪽에 초강대국이 있고, 남쪽에는 불안정이 있으며, 바다는 열려 있다. 이런 조건에서 멕시코의 가장 현실적인 전략은 “충돌을 최소화하고, 자율성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멕시코는 세계대전에서 제한적 참여를 보였고, 냉전기에도 특정 진영에 완전히 휩쓸리기보다 자율적 외교를 유지하려 했다. 이것은 이상주의라기보다 생존 감각이다. 멕시코의 외교는 대양을 건너 경쟁하기보다, 북미라는 구조 속에서 유리한 자리를 찾는 데 집중한다.


경제 통합은 그 선택의 연장선이다. 1994년 NAFTA는 멕시코의 산업 구조를 바꾸었고, 2020년 USMCA로 재편된 질서는 북미 공급망을 다시 묶었다. 멕시코는 공장이 되고, 통로가 되고, 교차로가 된다. 교차로는 위험하지만, 동시에 가치가 있다. 멕시코가 평화를 찾는 방식은 전쟁 억지가 아니라, 상호 의존을 늘려 충돌 비용을 높이는 것에 가깝다.

멕시코 북미 공급망의 전초 기지.jpg 멕시코 북미 공급망의 전치 기지 (출처 :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50305/131144207/2)

7. 미래의 멕시코 지리 경계는 바뀌는가?

멕시코의 미래는 “경계의 성격”이 바뀌는지에 달려 있다. 경계가 상처의 선으로 남으면, 긴장은 지속된다. 하지만 경계가 협력의 공간이 되면, 멕시코의 지리는 처음으로 평화의 설계도가 될 수 있다.

최근의 ‘니어쇼어링’ 흐름은 멕시코에 기회를 준다. 생산기지가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면, 멕시코는 공급망의 핵심 거점이 된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경제의 이동이지만, 지리는 여기서도 전쟁과 평화의 조건을 만든다. 물류와 도로, 항만과 국경 통관, 전력과 치안이 안정될수록 멕시코는 ‘경계의 부담’을 ‘경계의 이익’으로 바꿀 수 있다.


다만 기후 변화는 다른 전선을 만든다. 물이 부족해질수록 사막은 넓어지고, 농업과 생계는 흔들리며, 이주는 늘 수 있다. 물은 국경을 넘어 흐르지 않을 때 갈등이 된다. 멕시코의 미래 평화는 군사력만이 아니라, 물·도시·치안·국경 관리라는 복합 전략에 달려 있다. 이것은 멕시코가 피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과 평화”다.

멕시코 극심한 물 부족 문제.png 멕시코 극심한 물 부족 문제 (출처 : https://www.haninsinmun.com/single-post)


8. 경계에서 배운 국가의 생존법


멕시코는 약해서 전쟁을 겪은 나라가 아니다. 멕시코는 경계에 서 있었기에 전쟁과 충돌이 자주 찾아온 나라다. 두 바다는 열려 있었고, 산맥은 내부를 나누었으며, 물길은 국토를 한 번에 묶어주지 못했다. 그리고 북쪽의 국경은 한 나라의 운명을 너무 가까이에서 규정해 왔다.

멕시코의 평화는 거대한 승리의 산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긴 관리의 결과다. 경계를 봉합하고, 통로를 다스리고, 내부를 연결하는 일. 멕시코가 전쟁을 줄이기 위해 선택한 것은 확장이 아니라 균형이었다. 힘을 과시하기보다 비용을 계산하고, 충돌을 키우기보다 충돌을 흡수하는 방식이었다.

지리는 답이 아니다. 그러나 조건이다. 멕시코의 지리는 오랫동안 전쟁과 갈등의 조건을 만들었다. 동시에, 그 조건을 이해하는 순간부터 평화의 조건도 보이기 시작한다. 멕시코는 지금도 그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 경계 위에서, 전쟁이 아닌 평화를 설계하려고.

멕시코 지리.png 멕시코 지리 (출처 : 금성출판사 사회과 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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