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2. "캐나다" 전쟁을 부르지 않는 지리

지리가 평화를 지탱하는 나라

by 김장렬
캐나다지리.jpg 캐나다 지리 (출처 : 금성출판사 사회과부도)

캐나다의 지리는 말수가 적다. 북쪽에는 얼음이 있고, 동과 서에는 바다가 있으며, 남쪽에는 긴 국경이 이어진다. 이 국경에는 성벽도, 참호도, 군대도 거의 없다. 세계에서 가장 긴 국경이지만, 총성이 울린 적은 드물다. 캐나다는 전쟁을 준비하지 않아서 평화를 얻은 나라가 아니다. 전쟁을 부르지 않는 지리를 가졌기에, 다른 선택이 가능했던 나라다.

유럽의 국가들이 국경을 따라 싸우고, 아시아의 나라들이 통로에서 충돌할 때, 캐나다는 충돌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 거리는 우연이 아니라 조건이었다. 캐나다의 평화는 선언이 아니라 상태였고, 그 상태를 만든 것은 지리였다.


1. 전쟁이 닿지 않는 바다의 가장자리


캐나다는 세 개의 바다를 가진 나라다. 대서양(Atlantic Ocean)과 태평양 (Pacific Ocean), 그리고 북극해 (Arctic Ocean). 이 해안선은 공격을 유혹하지 않았다. 항구는 많았지만, 침략의 대상이 되기에는 너무 멀고 넓었다. 바다는 캐나다를 고립시키지 않았지만, 전쟁으로부터 분리시켰다.

캐나다 바다.jpg 캐나다의 바다 (출처 : https://cramadake.tistory.com/entry/)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캐나다의 본토는 직접적인 공격을 받지 않았다. 대신 바다는 병력과 물자를 유럽으로 보내는 통로가 되었다. 캐나다는 전쟁의 전면에 서지 않았지만, 전쟁을 떠받쳤다. 이 해안선은 전쟁을 부르는 경계가 아니라, 질서를 유지하는 가장자리였다.

제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포격 지원하는 캐나다 병력.jpg 제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포격지원하는 캐나다 병력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


2. 얼음과 산맥이 만든 방패


캐나다 북부의 지리는 사람이 살기 어렵다. 툰드라와 얼음, 긴 겨울은 군대보다 강한 장벽이었다. 이 북쪽은 오랫동안 침략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접근 자체가 전쟁보다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산맥.png 캐나다의 산맥 (출처 : https://cramadake.tistory.com/entry/)

로키산맥은 서쪽에서 또 하나의 장벽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산맥은 국경을 나누지 않았다. 캐나다는 산맥을 따라 분열되지 않았고, 산맥은 내부 통합의 일부로 작용했다. 지리는 국가를 쪼개지 않았고, 대신 보호했다.

오늘날 이 북쪽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기후 변화로 북극 항로가 열리면서, 북쪽은 더 이상 고립된 공간이 아니다. 캐나다는 이 변화 속에서 전쟁보다 규칙을, 충돌보다 관리와 협력을 선택하려 한다. 지리는 여전히 방패이지만, 동시에 책임의 공간이 되었다.

북극항로.png 북극항로 (출처 : https://namu.wiki/w/)


3. 총보다 먼저 흐른 물길


캐나다의 내부를 지배하는 것은 산이 아니라 물이다. 오대호와 세인트로렌스 수로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담수 네트워크다. 이 물길은 전쟁의 통로가 아니라, 교역과 이동의 길이었다.

이 수로는 미국과 캐나다를 갈라놓지 않았다. 오히려 연결했다. 전쟁 대신 교역이 흐르고, 군대 대신 배가 다녔다. 이 지리는 캐나다를 방어 국가가 아니라, 유지 국가로 만들었다. 평화는 총으로 지켜진 것이 아니라, 물길을 따라 유지되었다.

오대호와 세인트로렌스 수로.jpg 오대호와 세인트로렌스 수로 (출처 : https://kr.123rf.com/photo_138082565)


4. 전쟁에 참여하는 방식


캐나다는 전쟁을 하지 않은 나라가 아니다. 다만 전쟁을 대하는 방식이 달랐다.

1812년, 미국과 영국 사이의 전쟁이 북아메리카로 번졌을 때, 오늘날의 캐나다 땅은 전장의 한복판이 되었다. 미국은 북쪽으로 진군하며 캐나다 병합을 염두에 두었고, 나이아가라 반도는 그 길목에 놓여 있었다.

1814년 여름, 나이아가라 폭포 주변 런디스 레인의 들판에서 양측은 정면으로 충돌했다. 밤까지 이어진 치열한 교전은 승자도 패자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싸움은 흐름을 바꾸었다. 미군의 북상은 멈췄고, 캐나다는 처음으로 ‘지켜낸 땅’이 되었다. 이 전투 이후, 캐나다는 더 이상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이 경험은 캐나다의 군사 정체성을 규정했다. 전쟁은 필요할 때만 수행되고, 목적은 확장보다 억제에 두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이후 캐나다는 전쟁을 피하는 나라가 아니라, 전쟁의 성격을 선택하는 나라가 되었다.

런디스 레인 전투.jpg 런디스 레인 전투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캐나다는 유럽 전선에 병력을 보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도 캐나다군은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이 전쟁들은 캐나다의 생존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국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한국전쟁에서도 캐나다는 유엔군으로 참전했다. 본토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무너진 질서를 다시 세우기 위한 참여였다. 캐나다의 지리는 전쟁을 피할 수 있게 했고, 그 덕분에 전쟁의 목적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한국전쟁의 캐나다 소년병들.jpg 한국전쟁의 캐나다 소년병들(출처 :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08025)


5. 북극과 평화의 시험대


캐나다의 미래는 북쪽에 있다. 북극 항로가 열리면서, 북극은 새로운 경쟁의 공간이 되었다. 러시아, 미국, 중국이 이 지역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캐나다는 군사적 충돌보다 규칙과 협약을 강조한다.

이 선택은 지리에서 나온다. 북쪽은 싸워서 지킬 수 있는 땅이 아니다. 관리하고 협력해야 유지되는 공간이다. 캐나다의 지리는 미래의 전쟁을 부르기보다, 새로운 형태의 평화를 시험하는 장이 되고 있다.

북극의 지정학적 균열.png 북극의 지정학적 균열 (출처 : https://www.ilemonde.com/news/userArticlePhoto.html)

에너지와 자원, 항로와 환경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캐나다는 전면 충돌보다 조정과 중재를 택하려 한다. 이 태도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적 판단이다. 지리가 그렇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6.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


캐나다의 역사는 지리가 만든 선택의 역사다. 바다는 전쟁을 멀리 두었고, 북쪽은 침략을 차단했으며, 강과 호수는 총보다 먼저 흐르며 평화를 유지했다. 캐나다는 전쟁을 하지 않아서 평화로운 나라가 아니라, 전쟁이 필요 없도록 만든 지리를 가진 나라다.

지리는 답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조건을 만든다. 캐나다의 지리는 전쟁을 최소화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했고, 그 조건 위에서 국가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싸우지 않는다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가능성이 있을 때만 가능한 선택이다.

캐나다는 그 가능성을 지리에서 얻었다. 그리고 그 지리는 오늘도 조용히 평화를 지탱하고 있다.

캐나다지리.jpg 캐나다 지리 (출처 : 금성출판사 사회과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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