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4. “브라질” 대서양과 아마존이 만든 평화

by 김장렬
브라질 지리.png 브라질 지리 (출처 : 금성출판사 사회과부도)

브라질은 남미의 절반처럼 보인다. 지도 위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크기다. 그러나 이 나라를 규정하는 것은 크기만이 아니다. 거리다. 바다와 정글과 고원이 만들어낸 거리. 이 거리는 전쟁을 막기 위한 성벽이 아니라, 전쟁이 닿기까지 시간을 오래 잡아끄는 완충이었다.


대륙의 많은 나라들이 국경을 두고 싸울 때, 브라질은 비교적 조용했다. 전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브라질의 전쟁은 흔히 밖으로 나가는 전쟁이 아니라 안으로 묶는 전쟁이었다. 브라질은 유럽처럼 국경이 빽빽한 대륙이 아니었고, 멕시코처럼 북쪽에 거대한 중력이 붙어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대신 브라질은 내부가 넓었다. 내부가 넓은 나라는 외부로 뻗기 전에 먼저 내부를 다스린다. 브라질의 평화는 “평화를 사랑해서”만 생긴 것이 아니라, 지리가 먼저 ‘내부의 우선순위’를 정해 주었기 때문에 유지된 면이 크다.

브라질 산, 바다, 강,.png 브라질의 바다, 산, 강, 정글 (출처 : https://www.britannica.com/place/Amazon-River/Physical-features?utm)

이 글을 준비하면서 브라질의 바다, 산, 강, 정글이 전쟁을 어떻게 늦추고, 평화를 어떻게 지탱했는지를 따라갔다. 전쟁은 지리에서 자라고, 평화도 지리에서 자란다. 브라질은 그 사실을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나라다.


1. 대서양은 전장이 아니라 적을 막는 창이었다


브라질의 동쪽은 대서양으로 길게 열려 있다. 긴 해안선은 항구를 만들고, 항구는 도시를 만든다. 리우데자네이루, 살바도르, 헤시피 같은 이름은 파도에서 태어났다. 바다는 유럽으로부터 사람과 물건을 실어 왔고, 설탕과 금과 커피를 실어 갔다. 이 바다는 브라질을 세계에 연결했다. 그러나 같은 바다가 늘 전쟁을 데려오지는 않았다.

브라질의 항구.jpg 브라질 산토스 항구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Port_of_Santos?utm_source=chatgpt.com)

유럽의 해양 강국들이 바다에서 패권을 다투던 시대에도, 브라질의 대서양은 비교적 한쪽 방향의 흐름으로 유지되었다. 식민지의 바다였고, 교역의 바다였다. 침공의 위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브라질의 해안은 “대륙의 가장자리”에 길게 놓여 있어, 한 번의 상륙으로 나라 전체가 무너지는 구조는 아니었다. 해안이 길다는 것은 노출면이 넓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 점을 뚫어 전체를 장악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브라질은 그 길이 덕분에 급작스런 붕괴를 피했다.

브라질 해안선.jpg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코파카바나(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Copacabana%2C_Rio_de_Janeiro?utm_source)

그리고 대서양은 브라질에게 또 하나의 평화를 준다. 바다 건너 큰 적이 멀다는 사실이다. 대서양은 넓고, 남대서양은 북대서양보다 항로가 한산하다. 이 공간적 여유는 브라질의 전략을 “대륙 간 정면충돌”보다 “해상로의 안정”과 “자원 보호”에 두게 했다. 오늘날 브라질이 남대서양의 해상 교통과 해양 자원(특히 심해 유전)을 중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다는 전쟁을 불러오는 칼날이 아니라, 경제와 안보를 동시에 지키는 넓은 마당이 된다.

해상교통.png 남대서양 익스프레스 노선 지도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


2. 안데스 산맥은 브라질을 전쟁에서 떼어 놓았다


남미 서쪽에는 안데스 산맥이 길게 뻗어 있다. 이 산맥은 남미의 척추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대륙을 둘로 나누는 벽이다. 브라질은 안데스의 동쪽에 있다. 이 위치는 결정적이다. 안데스는 태평양 연안 국가들을 서로 묶기도 하지만, 브라질과는 거리를 만든다. 다시 말해 브라질은 남미의 많은 전쟁과 긴장으로부터 한 겹 떨어져 있다.

안데스 산맥2.png 안데스 산맥 (출처 : https://www.worldatlas.com/continents/south-america/maps.html?utm_source=chatgpt.com)

브라질의 내부 지형은 고원과 평야가 섞여 있다. 브라질 고원은 나라의 중심을 넓게 받치고, 해안 산지와 맞물려 도시를 해안에 집중시키는 경향을 만든다. 이런 구조는 국가의 에너지를 바다로 내보내는 동시에, 내부를 하나로 묶는 데 시간과 비용을 요구한다. 내부가 넓고 험하면, 군대는 외부로 나가기 전에 내부의 길을 먼저 닦아야 한다. 그래서 브라질의 팽창은 종종 외부로의 정복이 아니라 도로, 철도, 도시의 건설 등 내부의 확장으로 나타났다.

브라질 고원과 평야.jpg 브라질 고원과 평야 (출처 : https://maps-brazil.com/maps-brazil-geography/brazil-topographic-map)

이 점은 중요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내부를 넓히는 국가는 외부 전쟁에 덜 기울게 된다. 브라질은 정복전보다 개척전의 시간을 더 오래 살았다. 그 시간은 전쟁을 줄였다. 전쟁을 덜 한다는 것은 도덕이 아니라 구조다. 땅의 구조가 사람의 선택을 바꾼다.


3. 아마존은 ‘침투’를 지연시키는 거대한 완충지대이다


브라질의 가장 큰 특징을 하나만 꼽으라면, 많은 사람은 아마존을 말할 것이다. 아마존은 강이면서 숲이고, 숲이면서 거리다. 지도에서 아마존은 한 줄의 물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지류가 얽혀 있는 거대한 혈관망이다. 이 강과 숲은 병력을 빠르게 이동시키기 어렵게 만든다. 정글은 숨을 쉬지만, 군대는 숨이 막힌다. 도로가 없고, 시야가 좁고, 보급이 느리다. 아마존은 오래도록 브라질의 북부를 전쟁의 신속한 무대로 만들지 않았다.

아마존.png 아마존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Amazon_basin?utm_source=chatgpt.com)

그렇다고 아마존이 단지 고립의 공간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강은 길이다. 강은 사람을 운반하고, 물자를 운반한다. 그래서 아마존의 의미는 늘 두 겹이다. 평화의 완충이면서, 개발의 욕망이 닿는 길. 브라질은 이 길을 따라 내부를 묶고, 국경을 관리했다. 국경 분쟁의 가능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마존은 충돌을 쉽게 만들지 않았다. 충돌을 만들려면 먼저 도달해야 한다. 도달이 어렵다면, 충돌은 늦어진다. 늦어진 충돌은 협상으로 바뀔 가능성이 커진다. 지리가 평화를 만든다는 말이 여기서 현실이 된다.

파라나 수계.png 파라나 강 유역과 라플라타 수계 (출처 : https://www.dailysabah.com/life/history)

브라질의 또 다른 평화 자산은 거대한 강들이 하나의 바다로 흐른다는 점이다. 파라나 강 유역과 라플라타 수계는 국경을 넘어 바다로 나아간다. 종착지는 브라질 밖에 있지만, 그 흐름의 시작은 브라질에 있다. 이 물길은 남부의 경제를 움직이며, 내륙을 세계의 항구와 조용히 이어 준다. 물길이 있다는 것은 군대에도 유리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국가가 유지되는 비용을 낮춘다. 유지 비용이 낮아지면, 국가는 전쟁이 아니라 통치에 힘을 쓸 수 있다. 브라질의 강은 “전쟁의 강”이기보다 “국가의 강”이었다.


4. 드문 대외전, 그러나 그 한 번이 국가를 바꾸었다


브라질이 전쟁을 겪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브라질의 전쟁은 대륙의 다른 곳처럼 반복적 국경전이 아니라, 특정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 그 대표가 1864~1870년의 파라과이 전쟁이다. 이 전쟁은 남미 남부의 수계, 즉 파라나 강과 파라과이 강을 둘러싼 충돌로 커졌다. 강을 통해 내륙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길목이 막히면, 국가는 숨이 막힌다. 파라과이는 출구를 원했고, 주변 강대국들은 그 출구를 경계했다. 그래서 강의 흐름이 군사와 외교의 흐름이 된다.

파라과이 전쟁.png 1864~1870년의 브라질과 파라과이 전쟁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3AMap)

전쟁은 길고 잔혹했다. 브라질은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와 함께 전쟁을 치렀고, 승자는 되었지만 대가는 컸다. 이 전쟁은 브라질에게 ‘대외전의 비용’을 뼈아프게 새겼다. 이후 브라질이 남미에서 전면전을 쉽게 택하지 않게 된 배경에는, 도덕만이 아니라 이 기억이 있다. 전쟁은 승리로 끝나도 국가를 마르게 한다. 특히 넓은 나라일수록 전쟁의 비용은 내부로 돌아와 오래 남는다. 브라질은 그 사실을 경험으로 배웠다.


20세기에는 전쟁이 다른 방식으로 찾아왔다. 브라질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 편에 섰고, 독일의 잠수함 작전으로 브라질 선박들이 공격받자(1942년 무렵) 전쟁에 더 깊이 끌려들었다. 그리고 브라질 원정군(FEB)이 1944~1945년 이탈리아 전선에 파병되어 싸운다. 이 장면은 브라질이 “대륙의 내부”에만 머물 수 없는 국가임을 보여준다. 다만 이 참여는 정복이 아니라 질서의 편에 서는 방식이었다. 브라질은 바다를 건너 전쟁을 했지만, 그 전쟁은 브라질의 국경을 넓히지 않았다. 대신 브라질의 외교적 위치를 넓혔다.

독일의 U보트(잠수함)작전 지도.jpg 독일의 U보트(잠수함) 작전 지도(출처 : https://www.sixtant.net/2011/artigos.php?cat=u-boats-sunk-in-south-atlantic)

브라질의 중요한 전투는 종종 국경 밖이 아니라 국경 안에서도 일어났다. 넓은 나라에서 ‘내부의 통합’은 때로 전쟁에 가깝다.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일어난 여러 내란과 분쟁들은, 국가가 내부를 한 덩어리로 만드는 과정의 거친 파도였다. 이 대목에서 지리는 다시 중요해진다. 넓은 내부는 전쟁을 줄이는 대신, 통합의 숙제를 남긴다. 브라질은 그 숙제를 오래 풀었다. 그래서 외부 전쟁이 적었다.


5. 거리의 외교, 중재의 외교

브라질의 외교는 대개 ‘확장’보다 ‘균형’에 가깝다. 이것은 성격이 아니라 지리다. 브라질은 남미에서 압도적으로 큰 나라다. 큰 나라는 주변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브라질이 주변 국가와의 충돌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선택한 길은, 힘을 과시하기보다 규칙을 만들고 중재자가 되는 길이었다.


브라질 외교를 상징하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대륙의 안정”이다. 안정은 이상이 아니라 필요다. 국경이 넓고 내부가 방대하면, 외부 전쟁은 곧 내부 개발을 멈추게 한다. 그래서 브라질은 전면 충돌보다 협상을 선호한다. 이 성향은 유엔 평화유지와 지역 협력에서도 드러난다. 브라질은 때로 평화유지 임무에 참여하며(예컨대 21세기 초 아이티 안정화 임무 등), ‘힘’의 의미를 다르게 보여주려 했다. 전쟁을 잘하는 힘이 아니라, 전쟁을 관리하는 힘.

남미의 지리적 중심.png 남미의 지리적 중심 브라질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File%3ABrazil_in_South_America.svg?)

브라질이 군사력을 키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브라질의 군사력은 대륙을 넘어 투사하기보다, 넓은 영토와 해양 자원을 지키는 성격이 강하다. 특히 남대서양에서의 해상 안전, 심해 자원 보호, 아마존 국경 지대의 감시가 중요해진다. 다시 말해 브라질의 군사력은 ‘정복’의 도구가 아니라 ‘공간 관리’의 도구가 된다. 지리적 국가가 택하는 가장 현실적인 형태다.


6. 아마존과 남대서양이 만드는 새로운 전쟁과 평화


브라질의 미래는 두 공간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하나는 아마존이고, 다른 하나는 남대서양이다. 이 두 공간은 과거에는 전쟁을 멀리 했지만, 앞으로는 오히려 새로운 긴장을 불러올 수 있다. 긴장은 곧 전쟁을 뜻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쟁의 씨앗이 생기는 자리다.

첫째, 아마존은 이제 “거리”만이 아니다. 기후 변화와 산림 파괴, 불법 채굴과 밀렵, 국경을 넘는 범죄가 아마존을 더 자주 흔든다. 이 문제는 군대가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적이 아니다. 하지만 국가는 이 공간을 방치할 수도 없다. 아마존이 흔들리면 국가의 신뢰와 자원, 국제적 압박이 함께 흔들린다. 브라질의 평화는 이제 숲을 지키는 방식, 개발과 보존의 균형을 만드는 방식과 직결된다. 여기서 ‘전쟁’은 총성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통치의 실패로 나타날 수 있다.

아마존 항폐.jpg 위협받는 아마존 (출처 : https://www.kuow.org/stories/opinion-the-global-gold-rush-imperils-the-brazilian)

둘째, 남대서양은 조용하지만 점점 붐비는 바다다. 해상로와 자원, 해저 케이블과 에너지 시설은 모두 안전을 요구한다. 브라질이 남대서양에서 해군력과 감시 역량을 강화하려는 이유는 공격이 아니라 억제다. 전쟁을 불러오는 바다가 아니라, 전쟁을 막아야 하는 바다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 해군.jpg 브라질 해군 역량강화 (출처 : https://en.unav.edu/web/global-affairs/aspiraciones-atlanticas-y-progreso-naval)


그리고 기술은 공간의 의미를 바꾼다. 위성, 감시, 통신, 사이버는 더 이상 전장 바깥의 일이 아니다. 넓은 영토를 가진 국가는 ‘눈’이 필요하다. 브라질의 미래 안보는 전차나 함정만이 아니라, 아마존과 해양을 감시할 수 있는 체계, 공급망과 인프라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과 연결된다. 이는 침공에 대비하는 전쟁이라기보다, 붕괴를 막는 평화다. 현대의 평화는 관리 능력의 이름이 되었다.

브라질 레이더.jpg 브라질 해군 수상 탐색 및 해안 감시 레이터 개발 추진 (출처 : https://defensemirror.com/news/36469/Embraer__Brazilian_Navy)


7. 싸워서 얻은 평화가 아니라, 멀어서 지킨 평화


브라질은 전쟁이 없어서 평화로운 나라가 아니다. 브라질의 평화는 지리가 만든 완충과 거리, 그리고 내부 확장의 선택이 결합된 결과다. 대서양은 넓고, 안데스는 멀고, 아마존은 깊다. 이 조건들은 전쟁을 쉽게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브라질은 전쟁 대신 내부를 묶는 데 오래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리는 영원한 방패가 아니다. 지리는 조건이고, 조건은 바뀐다. 기후 변화로 숲이 흔들리고, 자원과 항로로 바다가 붐비며, 기술로 거리가 줄어든다. 브라질의 평화는 이제 “멀어서 지키는 평화”에서 “관리해서 지키는 평화”로 옮겨가야 한다.

브라질 풍경.jpg 지리가 만든 브라질의 평화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Coastline_of_Brazil?utm_source=chatgpt.com)


그럼에도 브라질의 가장 큰 강점은 여전히 지리에 있다. 넓은 내부, 풍부한 물, 거대한 숲, 그리고 대양으로 열린 창. 이 지리가 전쟁을 줄였듯, 앞으로도 올바른 선택과 결합된다면 평화를 지탱할 수 있다. 전쟁은 지리에서 시작되지만, 평화도 지리에서 시작된다. 브라질은 그 사실을 조용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나라다.

브라질 지리.png 브라질 지리 (출처 : 금성출판사 사회과 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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