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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사람은 지리를 그리고, 지리가 사람의 운명을 그린다."

by 김장렬

나는 자주 지도 앞에 앉아 오랫동안 조용히 바라보곤 한다. 나라와 나라 사이를 가르는 굵은 선들, 푸른 바다 위에 흩어진 작은 섬들, 구불구불한 산맥과 강줄기들이 조화를 이루는 그 평면은 단지 색깔과 선의 결합이 아니라 인간과 역사의 살아 숨 쉬는 흔적이다. 지도는 정적인 그림 같지만, 나는 그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수많은 생명과 사건의 숨결을 느낀다. 지도 위에서 한 나라가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에 따라 그 나라의 삶과 역사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이처럼 지리적 환경이 한 국가의 전쟁과 평화의 운명을 결정짓게 하는 것을 우리는 군사지리학이라고 한다. 군사지리학 이란 전쟁과 갈등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평화와 번영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지리는 전쟁과 평화, 두 얼굴을 가진 운명의 도구이다.


지도를 보고 있으면 수많은 강력한 제국들이 어떻게 지리의 장벽 앞에 무릎을 꿇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고대 로마의 제국을 떠올려 본다. 지중해를 둘러싼 광활한 땅을 다스리던 로마는 교역과 번영의 중심이었지만, 그 넓은 영토의 국경을 지키려다 결국 힘을 잃고 무너졌다. 그 위대함이 곧 몰락의 시작이었다. 넓은 영토와 긴 국경선이 로마를 세우기도 했고, 로마를 허물기도 했던 것이다. 나는 또 지도 위에서 나폴레옹을 따라 러시아의 끝없는 평원을 바라본다. 나폴레옹은 정복의 야망을 품고 러시아로 향했지만, 그의 군대는 광활한 러시아의 대지와 혹독한 겨울의 추위 앞에서 길을 잃었다. 군사력의 크기나 전술의 뛰어남보다 더 큰 운명의 힘이 바로 지리였던 것이다. 결국 나폴레옹의 원정은 지리의 거대한 힘 앞에 좌절되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한반도의 지도에서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낙동강의 흐름을 바라본다. 한국 전쟁 당시 이 강은 적의 맹렬한 공격을 막아내는 방패가 되어주었다. 낙동강이라는 자연의 방어선 덕분에 전투의 운명은 바뀌었고, 마침내 전쟁의 흐름마저 바뀌었다. 지도의 선 하나, 강 하나가 수많은 이들의 생명을 지켜주었다. 이런 지리적 요소는 과거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세계는 여전히 지리 위에서 갈등하고 평화를 꿈꾼다.

6.25전쟁 낙동강 방어선

남중국해는 중국과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치열하게 싸우는 공간이다. 중국은 더 넓은 바다를 차지하기 위해 애쓰고, 미국은 그 바다 위의 항행의 자유를 지키려 한다. 지도 위의 바다는 조용히 있지만, 그 아래에는 격렬한 힘의 투쟁이 흐르고 있고 우크라이나의 평원에서는 러시아와 유럽 사이의 땅,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충돌을 보며 나는 다시금 지리의 힘을 실감한다. 우크라이나가 어디에 속할지, 그 작은 땅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해 강력한 나라들이 지리적 전략을 펼친다. 그 평원 위에서 사람들의 운명은 지도 위의 선들로 인해 결정되는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래에도 군사력과 전략은 결국 지리적 조건과의 조화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우주와 사이버 공간으로 전쟁의 영역이 확장될지라도, 결국 군사력의 바탕은 우리가 밟고 서 있는 이 땅과 바다, 산과 강으로 돌아올 것이다. 중국과 인도 사이의 히말라야 산맥은 여전히 양국의 운명을 나누고, 러시아는 북극의 얼음과 바다 위에서 또 다른 전략적 우위를 찾고자 한다.

우주와 사이버 공간 전장 확대

나는 앞으로 "지리가 만든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로 지리가 전쟁의 시작과 끝을 결정했던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함께 나눌 것이다. 전쟁의 역사 속에서 생생히 살아 숨 쉬는 이야기를 지리와 함께 쉽게 풀어내어, 지리가 가진 힘과 의미를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려 한다. 우리가 놓치고 살아가는 이 땅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도록 이끌어주는 그런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지도를 바라보며 세계를 이해하는 일은 결국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일과 같다. 우리는 지도의 작은 선 하나, 푸른 강줄기 하나에서도 커다란 운명과 역사를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작은 땅 위에서도 세계 전체의 흐름을 바꿀 힘이 있음을 생각하면, 지리의 이야기는 언제나 새롭고 놀랍다.


이제 지도의 바다 위에 작은 배를 띄우듯, 독자들과 함께 지리가 만들어낸 전쟁과 평화의 이야기로 항해를 떠나고자 한다. 지도 위의 선들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지, 그 숨겨진 지리의 비밀을 찾아 떠나는 이 여정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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