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향기, 바다 꽃

하얀 물거품을 일렁이며 춤추는 바다, 그 위로 바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해녀들은 바닷속 깊이 내려가 비릿한 바다 내음을 건져 올린다. 갯바위마다 바다의 숨결을 머금은 해녀콩이 살랑이며 피어난다. 철썩이는 파도를 닮아 바다로 달려가는 듯한 해녀콩, 해녀의 강인한 삶처럼 단단하지만,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은 한없이 부드럽다.


"하늘로 날아오를까, 저 깊은 바다로 달려갈까?"

콩닥거리는 맥박소리가 들려온다. 그건 사랑의 맥박일까? 아니면 바람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생명의 숨결일까?


뜨겁게 달구어진 태양 같은 얼굴, 깨알 같은 검은 점이 박혀 있는 꽃, 참나리꽃이 하늘을 향해, 그리고 바다를 향해 숭고한 사랑을 노래하며 피어났다. 나는 이 꽃을 사랑의 승리라 부르고 싶다.

25참나리.JPG 참나리


순박한 시골 아낙처럼 붉게 타오르는 얼굴, 그 위로 점점이 박힌 주근깨 같은 무늬. 하지만 그 무늬는 사랑이 남긴 흔적이다. 때로는 뼛속까지 타들어 가는 아픔마저 끌어안아야 하는 것이 사랑이겠지. 참나리꽃은 그 아픔을 인내하며 피어나는 꽃,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진정한 사랑이 되는 순간은, 그 아픔마저도 사랑할 수 있을 때가 아닐까?


사랑은 쉽게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타오르다가도 끝내 인내하고, 승화시키며 지켜내는 것. 참나리꽃처럼 깊고 성숙한 사랑을 꿈꿀 수 있기를 바란다.


153-선인장6.jpg 손바닥선인장 '백년초'

참나리꽃 향기에 코끝이 노랗게 물드는 동안, 또 다른 꽃이 눈에 들어온다. 연노란 꽃잎을 활짝 펼치고 바다를 향해, 하늘을 향해 손짓하는 꽃.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려면 조심해야 한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느다란 가시들이 살갗에 스며들지도 모르니까. 백년초가 복수초처럼 노란 꽃망울을 터트렸다.


우아한 자태를 뽐내면서도 도도한 가시를 앞세운 꽃.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꽃. 그리고 그 곁에서 보랏빛 향기를 은은하게 흩뿌리는 순비기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수수하지만 정갈한 자태, 바람을 따라 부드럽게 퍼지는 향기. 화려하진 않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숨겨진 꽃의 언어가 들릴 것만 같다.

순비기나무5.jpg 순비기나무


바닷바람에 실려온 꽃향기를 맡으며 수평선을 바라본다. 저 멀리 바닷새들이 집을 짓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리고, 황금빛 무궁화꽃이 피어났다.

아, 반가운 꽃이다. 바닷바람을 따라 다가가 향기를 맡아보았다. 은은한 향기가 가슴 깊이 스며든다. 황근은 멸종위기 보호 야생식물 41호로 지정된 소중한 식물이다. 황근길이 조성되어, 언젠가 이곳이 황금빛으로 물들기를 바라며, 나는 조용히 꽃을 바라본다.

바다와 바람, 그리고 꽃.

오늘도 바다 꽃은 은은한 향기를 품고 창공으로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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