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면 마음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듯, 그 계절마다 꼭 만나고 싶은 꽃이 있다. 붉은 카네이션도, 패랭이꽃도, 꽃의 여왕 장미도 아니다. 민틋한 오름에 깊게 뿌리내린 채, 선혈처럼 붉은 꽃봉오리를 오므렸다가 화사한 꽃다발로 가슴에 안겨오는 이름, 피뿌리풀.
풀밭에 엎드려 피뿌리풀과 눈을 맞추면, 향긋한 꽃내음 속으로 꿈결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땅속 깊이 숨은 뿌리가 핏빛처럼 붉어 ‘피뿌리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는, 그 이름만큼이나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피뿌리풀은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귀한 꽃으로, 제주와 황해 이북 일부 지역에서만 자란다. 제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꽃은 아니다. 그래서 해마다 오월이면, 나는 그 꽃을 만나기 위해 민틋한 오름을 오른다. 언젠가 그 자리에 다시 피어주기를 바라며. 그러나 무분별한 채취로 인해 피뿌리풀은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 사실을 마주할 때면, 마치 살점을 도려낸 듯 마음이 저며온다.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듯한 상실감이 가슴을 적신다.
이상하게도, 들꽃은 이제 내 삶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피뿌리풀이 떠난 그 자리는 허전하고 쓸쓸하다. 그 꽃이 다시 피어날 수 있을까. 들꽃은 결코 나만의 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꽃이며, 함께 지키고 가꾸어야 할 생명의 일부다.
칼바람을 뚫고 싹을 틔우고, 비바람을 견디며 꽃을 피우는 것. 들꽃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바로 그 강인함에 있다. 모진 역경 속에서도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켜고, 꿈과 소망을 가득 담아 피어나는 꽃.
그 꿈과 소망을 함부로 꺾지 않기를. 우리는 들꽃을 사랑하고, 아끼고, 지켜야 할 사람들이다. 단지 예쁘다는 이유로 꺾지 말고, 단 한 송이로도 충분한 기쁨을 느끼기를.
내년에도, 또 그다음 해에도 오월이 오면, 피뿌리풀이 다시금 오름을 수놓기를. 화사한 꽃다발처럼 우리 곁으로 돌아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