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풀거리는 초록 이파리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숲에 내려앉는다. 그 포근한 빛에 화답하듯, 들꽃들이 하나둘 미소를 머금는다.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오월의 한라산을 오른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 자리에서 나를 반겨줄 꽃들이 있을 것이다.
“얼마나 곱게 피었을까.” 마음이 먼저 숲길을 향해 달려간다.
초록으로 물드는 길을 따라 한 걸음, 또 한 걸음. 발밑에서는 앉은뱅이 풀꽃들이 조용히 눈을 맞춘다. 발길을 멈추고,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넨다. 그 순간,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듯한 기척이 느껴진다. 조릿대 사이로 수줍게 고개를 내민 큰앵초. 환한 웃음을 머금은 그 꽃을 바라보며 숨을 고른다. 분홍빛 꽃잎에 살며시 입을 맞춘다.
‘앵초’란 이름은 앵두나무 꽃을 닮았다는 뜻이지만, 사실 전혀 닮지 않았다. 그래도 이 꽃은, 그저 앵초다.
한라산에는 두 종류의 앵초가 자란다. 늘씬한 줄기 위에 분홍빛 꽃을 층층이 피워내는 큰앵초, 그리고 키가 아담한 연보랏빛 설앵초. 둘 다 고산지대 깊숙한 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귀한 꽃들이다.
큰앵초 앞에 선 사람들은 좀처럼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눈길은 온통 꽃에 닿아 있고, 그 찬란한 순간을 마음에 오래도록 새긴다. 다시 허리를 숙여 꽃잎에 숨결을 얹는다. 이토록 고운 꽃 앞에서 어찌 사랑을 고백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고개를 들면, 엷은 초록 커튼 너머로 파란 하늘이 내려와 마음을 적신다.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 한 번 바라보고, 다시금 꽃을 본다.
오월의 한라산이여, 그 품에 안기고 싶다. 가슴 어딘가에서 간질간질 날개가 돋는 듯한 감각. 마치 하늘로 날아오를 듯, 벅찬 심장이 쿵쿵 뛴다.
설앵초는 작지만 당당하다. 양지바른 풀밭에서도, 졸졸 흐르는 물가에서도, 햇살과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살랑살랑 춤을 춘다. 작지만 깊고 단단한 아름다움. 그저 그 자리에 조용히 피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꽃.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