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mission2-다시, 생계형 감탄

레이첼 카슨, <The Sense of Wonder>

by 쓰리씀

사실은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인 제로 웨이스트에 대해 쓰고 싶었다.

근 몇 년 간 비닐류 제품은 일절 사지 않고, 고기는 선택에 의해서는 먹지 않고 있다.
텀블러를 챙기지 않았다면 가능한 한 테이크아웃을 하지 않았고,

일회용품은 요청하지도, 구매하지도 않았다.
새해에, 올해는 새 옷을 한 벌도 사지 않겠다고도 다짐했지만,

공효진이 모델로 입고 나온 신상 여름 티셔츠를 질렀으니,
공효진은 될 수 없었으되
뭐든지 하나를 집 안에 들이면 두 개를 내보낸다는 나만의 원칙에 따라
티셔츠 한 장, 바지 한 벌을 내보내며
마음 한 구석 깊은 현타가 찾아왔다.


흐트러진 기강을 다잡고자,
충격요법을 쓰기로 하고

나의 인생에 제로웨이스트의 화두를 제일 처음 던져 주었던 레이첼 카슨의 책을 다시 빌려 보았다.
하지만 이번에 나에게 충격을 안긴 건, <침묵의 봄>이 아니라
<센스 오브 원더-The Sense of Wonder>였다.


뮤지션들이 꿈에서 영감을 받아
단숨에 써 내려간 곡이,
사실은 어디선가 이미 들었던 음악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 이야기처럼
새벽에 감탄함을 연재하고 있는 지금,
<센스 오브 원더-The Sense of Wonder>와의 만남은 운명적 재회와도 같았다.


제목을 직역하면 ‘놀라워하는 감각’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감탄의 감각에 더 가깝다.
이 책은 원래 “Helping Your Child to Wonder(당신의 아이가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라는 제목으로 잡지에 연재했던 글을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언뜻 보면 양육 지침서나 교육 가이드처럼 보여, 오은영 박사님이나 썼을 법할 글을
레이첼 카슨이 썼다는 것이 매우 의외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매우 진지한 환경운동의 선언문에 가깝다.


그녀는 자연을 사랑하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은
‘자연을 감탄하는 것부터’라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지구가 아파요”, “자연을 사랑해 주세요”라고 아무리 가르쳐도,
정작 중요한 건 사랑하라는 말보다 감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는 것이다.

책에서는 아이들에게 자연에서 놀라움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전혀 거창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나는 한 번도 시도해 보지도, 상상도 해보지 못한 방법이었다.


밤바다를 산책하다 비가 오면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해”라며 서둘러 비를 피하는 대신

담요를 둘러쓰고 바닷가에 앉아

비가 바다와 만나 만들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거대한 물결이 우르릉 대며 춤을 추고,

태어나 처음으로 바다의 신이 부르는 노래를 듣는다.


숲을 탐험하다 어린 가문비나무들들을 만나면

“밟지 않게 조심해”, 하고 돌아가는 대신 ‘크리스마스트리’ 놀이를 한다.


"다람쥐들이 이 나무에 와서 조개도 걸고, 솔방울로 치장도 하고, 이끼를 둘러주기도 할 거야. 그리고 눈이 내리면 나무는 온통 별빛으로 빛나겠지. 크리스마스 날 아침이 되면 다람쥐들은 정말 근사한 트리를 가질 수 있을 거야. 훨씬 작은 건 벌레들의 크리스마스 트리고, 조금 더 큰 건 토끼들의 것이 되겠지."

이내 숲 속의 모든 동물 친구들에게 크리스마스트리 하나씩을 선물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새, 아이가 먼저 “크리스마스트리를 밟지 마세요!” 외치게 된다.


바다를 가면
모래사장을 기어 다니는 이 꼬마는 소라게야.
고둥이었나? 아니, 갯우렁이인가?
이름을 식별하기에 바쁘고,


숲에 가도
잘 알지도 못하는 풀이름, 꽃 이름을 총동원하느라
뭘 보고 지나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연을 ‘아는 것’은 자연을 ‘느끼는 것’의 절반만큼도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레이첼 카슨이 자연을 사랑하려면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왜 새벽에 감탄함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다시 분명해졌다.


그것은 바로
삶을 사랑하기 위해 감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삶을 사랑하자, 감사하자,
막연하고 크게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감탄의 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담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감탄은 내버려 두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품과 공임을 들여 애써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시간을 많이 할애하기보다, 같은 시간에 오래 머무는 연습이다.
레이첼 카슨이 책에서 말하듯,

"우리가 미처 사용하지 않은, 또는 사용한 적은 있으되 그 사용법을 잊어버린 감각의 촉수를 다시금 활짝 여는 일이다."


정작은 전체만 대강 훑어보고 지나가기도 바빠
부분에는 눈길조차 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나는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 이 짧은 순간들을,
그리고 발견하기 어려운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것처럼
놀라고 감탄하고 싶다.


“어린이 앞의 세상은 신선하고, 새롭고, 아름다우며 놀라움과 흥분으로 가득하다. 어른들의 가장 큰 불행은 아름다운 것, 놀라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추구하는 순수한 본능이 흐려졌다는 데 있다.”


분명히 내가 깨달은 건 줄 알았는데,

여기에 다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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