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해지는 연습
딸아이가 방에서 친구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나는 부엌에서 무심히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 엄마는 말이야,
갑자기 큰소리로 ‘이것 좀 치워!’
‘왜 이렇게 해놨어!’ 막 혼내다가도
전화만 오면 ‘어머, 세상에~’
목소리가 완전 돌변해.
웃기지 않아? 니네 엄마도 그래?
엄마들은 진짜 일관성이 없어, 그치?”
그리고,
깔깔깔 웃는 딸아이의 소리.
그 순간,
하던 일을 모두 멈췄다.
아차 싶었다.
뜨끔했고,
민망했고,
무엇보다 부끄러웠다.
나는 몰랐다.
내가 그렇게 보였다는 걸.
내 아이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는 걸.
가만히 돌아보니,
나는 참 다정한 사람이기도 하다.
지인에게,
동료에게,
전화기 너머 누군가에게는
“어머, 괜찮아요~”
“아휴, 얼마나 힘드셨어요~”
목소리에 온갖 배려와 공감을 담아 전했다.
직장에선 예의 바르게,
전화에선 다정하게.
그런데 정작,
하루의 끝에서 만나는 가족에게는
가장 지친 얼굴로
가장 예민한 말투로...
“왜 이렇게 해놨어?”
“이거 몇 번 말했어?”
“지금 시간이 몇 시야?”
친절한 말투도,
숨 한 번 고를 여유도 없이
나는 아이에게 쏟아냈었다.
왜 그랬을까.
사랑하니까 더 편해서?
아니,
지쳐서였다.
여유가 없었고,
시간이 부족했고,
나 자신을 돌볼 틈도 없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도,
그건 아이가 상처받아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날 밤,
딸아이의 방문을 두드렸다.
“아까 통화하는 거 우연히 들었어.
엄마가 그렇게 보였구나.
들켜서… 좀 부끄러웠어.”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쑥스럽게 웃었다.
“엄마도 사람이라
지칠 때가 많고
말투가 미워질 때도 있는 것 같아.
근데… 너한텐 그러고 싶지 않아.
좀 더 노력해볼게.”
그날 이후,
나는 다정한 사람이 되는 연습을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시작했다.
힘들 땐
“엄마가 좀 지쳐서 그래. 잠깐만 쉬자.”
바쁘더라도
“이따 얘기해줄게. 너 이야기 궁금해.”
실수했을 땐
“엄마가 미안해.”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우리 사이가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는 것.
그건 아주 큰 변화였다.
“부모다움은 완벽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다시 마음먹는 순간, 거기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