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 앉은 아이

허아른 괴담록

by 허아른



아들이 죽었다. 여섯 살이었다.


안 그래도 조그맣던 아들은 화장터에서 더 작아져서는 조그만 유골항아리에 담겼다. 나는 혼자가 된 집으로 그 유골항아리를 안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것과 마주 앉았다.


하얗고 작은 항아리. 웅크린 아이의 등처럼 둥근 항아리. 항아리 앞에서,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써보았지만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에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아이가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모습뿐이었다. 그럴 수밖에. 그 모습이야말로, 내가 가장 많이 보았던 모습일 테니. 혼자 아이를 키우느라 바빠서 그랬다는 변명은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분명히 아이에게 충분히 사랑을 주지 못했다.


이해심이 많은 아이였다. 하지만 결국 여섯 살 아이였다. 엄마가 바쁘다는 사실을, 그래서 자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아이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도 엄마의 관심에 대한 욕구, 그리고 그 욕구를 채우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은 아이의 작은 가슴에 고스란히 쌓이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는, 화를 낸 적은 없었지만 자주 토라졌다. 지나치게 사려가 깊은 아이였다. 토라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토라진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그럴 때마다 내게서 등을 돌리곤 했다. 돌이켜보면 내 기억 속에 가장 깊이 새겨진 것은 외로운 아이의 등이었다.


유골항아리를 닦았다. 깨끗이 닦았다. 훌쩍거리며 항아리를 닦았다. 아이의 등을 닦는 것처럼. 햇볕이 드는 곳, 항아리가 가장 하얗게 빛날만한 곳에 그것을 내려놓았다. 나라고 없었겠는가. 내 아이를 더 자주 안아주고 싶은 욕망이. 내 아이에게 더 사랑을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인 욕구와 불만은, 아이가 죽고 나서야 터지고 말았다.


나는 일을 그만두고 집안에 틀어박혔다. 아이와 나, 둘만의 시간을 위해서. 매일 항아리를 닦았다.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장을 볼 때는 항아리를 안고 나갔다. 걸으면서 쉴 새 없이 항아리에 말을 걸었다. 남이 뭐라고 생각하든 상관없었다. 아이와 나의 세계, 거기엔 누구도 끼어들 수 없으니까.


밤이 되면 항아리를 열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유골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젠 너무 늦었다고 말해도 상관없다. 나는 내 아이를 원했다. 이미 죽었다 하더라도, 함께하길 원했다. 그래서 내 모든 시간을, 내 모든 마음을 아이에게 쏟아부었다.


언젠가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까. 항아리를 열고 귀를 대보아도 아이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그래도 매일 말을 걸었다. 품에 안고 잤다. 새가 알을 품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조금씩 항아리는 따뜻해져 갔다. 나도 항아리에서 온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 온기가 더없이 그리워, 항아리를 가슴에 더 깊이 품었다.


햇살이 유난히도 항아리를 하얗게 비추던 날, 햇볕이 내 몸을 유난히도 데우던 날, 그 일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나는 항아리 앞에서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눈물과도 다른 것이었다. 슬픔, 희열, 회한과 감동이 복잡하게 뒤섞인, 마치 갈기갈기 찢어진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눈물.


내 앞에 놓인 것은 분명 어디를 둘러보아도 똑같은 모양의 하얀 항아리였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나만이 알아볼 수 있었다. 항아리가 나를 향해 돌아앉아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잊었던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참을 토라져 앉아 있던 아이가 내게로 고개를 돌린다. 엄마. 배고파. 그것이 그 아이의 화해의 말이었다. 나는 울었다.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분명히 들리고 있었다. 엄마. 배고파. 엄마, 배고파.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틀림없이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리라. 나는 항아리를 품에 껴안고 조심히 전화를 받았다. 아이의 목소리가 들릴 줄 알았건만, 전화를 걸어온 것은 중년 남자의 목소리였다. 들어본 적이 있다. 장례식장에서였나. 전화 건너편의 남자는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문제가 발생했다고.

아마도 화장터에 가기 전에 관이 바뀐 것 같다고.

그게 무슨 소리지.

무슨 이야기지.

그럴 리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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