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크

허아른 괴담록

by 허아른


일주일간 일곱 명을 죽였다. 하루에 한 명꼴이다.


인적 없는 야간이긴 했지만, 모두 도로에서 벌어진 일이다. 어쩌면 CCTV 따위에 찍혔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 신원까지는 모르더라도 이 차에는 이미 수배가 떨어졌겠지. 요즘 교통 카메라는 차 번호만큼은 확실하게 식별하니까.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했지만, 더 이상은 위험하다. 저 트렁크에는 아마 일곱 명의 DNA가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인적 없는 산골 도로를 차로 달리고 있다.


조심해서 달리고 있는데도 차가 덜컹거린다. 울퉁불퉁한 도로 때문만은 아니다. 뒤 트렁크의 그 녀석이 아까부터 몸부림치고 있다. 그래, 너도 살고 싶겠지. 그게 본능이겠지. 하지만 나는 널 살려줄 생각이 없어.

그래, 여덟 번째 희생자는 저 녀석이 될 것이다. 이 차를 사람의 발이 닿지 않는 곳으로 몰고 가 그대로 차가운 바다에 빠뜨릴 것이다. 누구도 가까이 갈 수 없도록, 깊은 곳에.


트렁크에서 쿵쿵거리는 소리와 기묘한 신음소리가 들린다. 시끄럽다고 한마디 해주려다가 문득 브레이크를 밟고 말았다. 갑자기 앞쪽에서 빛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빛이라니, 뭐지? 이 시간에.

이런 외진 길에서.


...사람이다.


앞에서 누군가, 손전등을 들고 다가오고 있다. 나는 본능적으로 오디오 볼륨을 크게 올렸다. 트렁크의 쿵쿵거리는 소리가 음악에 묻혀 들리지 않길 바라면서.


뭐지? 설마 경찰인가?


그 사람은 운전석 옆으로 다가와 창을 똑똑 두드렸다.


경찰이다.

대체 왜 이런 곳에?


나는 창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경찰 제복을 입은 중년 남자의 얼굴이 쑥 다가왔다.


"실례하겠습니다."


나는 최대한 태연한 목소리를 내려 애썼다.


"무슨 일이시죠?"

"실종자 수색 중입니다. 잠시만 협조해 주시죠."


실종자. 나는 자기도 모르게 트렁크 쪽을 돌아볼 뻔했다.


아니, 아니지. 침착하자. 그럴 리가 없어.


이미 서울에서부터 200킬로미터 넘게 달려왔다. 이런 산골까지 왔는데, 여기서 그 녀석을 찾고 있을 리 없어.

우연히 다른 사건의 검문에 엮였을 뿐이야.


"잠시만 차 안을 살펴봐도 괜찮을까요?"


그렇게 말한 경찰은, 내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이미 손전등을 창 안으로 집어넣어 이리저리 휘둘렀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보통 실종 사건에 이렇게까지 하나?


"이 동네에서 누가… 실종된 건가요?"

"아뇨, 실종된 장소는 서울입니다."


서울. 나는 헉 소리를 낼 뻔했지만 간신히 참아냈다.


"서울에서 실종된 사람을 왜 여기서 찾는데요?"


경찰은 차 안 구석구석을 힐끔거리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실종자가 여기까지 왔다고 해서요. 그나저나 음악 너무 크게 들으시네. 지금은 젊어서 괜찮을 것 같지만 나중에 귀 다 망가져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실종자라면서, 여기로 왔다는 건 도대체 어떻게 알았다는 걸까? 설마…. 아!


"스마트폰… 인가요?"

"예?"


뭐라는 거냐는 듯, 경찰이 내 쪽을 돌아보았다. 나는 살짝 움츠러들어서 조용히 물었다.


"스마트폰 GPS 추적 같은 건가 해서…"


경찰은 잠시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아니고… 실은 실종자가 흉악범이거든요."

"흉악범…?"

"네. 경찰로 위장해서는 인적 없는 도로에서 검문 핑계로 차를 세우고 강도짓을 한 상습범입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도 죽였고요."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경찰 위장 강도… 살인범….


"전혀 개선의 여지가 없는 놈이었는데 뭘 어떻게 했는지, 얼마 전에 가석방이 됐어요. 죄질이 안 좋고 재범의 우려가 있는 사람이 가석방될 때는 남은 형기 동안 위치추적기를 달거든요. 전자발찌라고 부르는 그거요."

"아아… 네."


몰랐다. 전자발찌는 성범죄자에게만 다는 것인 줄 알았는데. 하지만, 경찰 위장 강도라니. 그것도 인적이 없는 도로….


경찰은 차 안을 살펴보고는 살짝 물러나 차 외관을 둘러보았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도대체 왜. 경찰이 뒤쪽으로 걸어간다. 차 트렁크 근처에서 턱을 손가락으로 만지며 이리저리 비춰본다. 나도 모르게 운전대를 꽉 쥐었다. 지금이라도, 액셀을 밟아버릴까. 도망칠까.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경찰의 손이 운전대를 잡는다. 얼굴이 가까이 와서, 코앞에 멈췄다. 진지해 보이는 얼굴이다.


"얼굴이 빨간데요."

"…네?"

"술을 드신 건 아니죠?"

"어… 네, 안 마셨어요."

"잠깐만 내려보시죠."


완전히, 말려들었다. 기선을 제압당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차에서 내렸다. 경찰은 차 뒤쪽을 손전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으로 똑바로 걸어보세요."


시키는 대로, 손전등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술 같은 건 마시지 않았다. 마음이 살짝 불안할 뿐이다. 손전등의 빛줄기를 따라 걷다 보니, 눈에 뭔가 들어왔다. 뭐지? 뭔가, 차에 위화감이... 트렁크 쪽이 점점 잘 보인다. 저건.. 아차.


살짝 찌그러진 트렁크.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틈이 있었다. 아니, 중요한 것은 그 틈이 아니라, 그 틈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액체… 이 자식 혀를 깨문 건가. 봤을까? 저 혈흔을...


그때, 엔진이 꺼지는 소리가 들렸다. 음악 소리도 멎었다. 놀라 뒤를 돌아보니, 경찰이 차 키를 뽑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아까의 심드렁한 표정과는 달리, 굳은 표정이었다.


"트렁크를 열어봐도 되겠습니까?"


애초에 그럴 셈이었나. 술이 어쩌고 했던 건, 도망치지 못하도록 차키를 뽑을 속셈이었던가... 나는 딱딱한 표정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말했다.


"…싫은데요."


어처구니없는 대답이지만, 그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물론,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경찰은 내 대답을 무시하고 트렁크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차 키를 가져다 댔다. 트렁크가 열린다. 트렁크 안쪽의 붉은 형체가 드러난다.


틀렸다. 이젠 어쩔 수 없다.


경찰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인다. 허리를 굽힌다. 손전등을 든 채로 상반신을 몸으로 집어넣는다. 쫙 벌린 트렁크의 아가리 속으로 반신이 들어간다.


나는 멀찌감치 서서 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차마 볼 수가 없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트렁크가 닫혔다. 다시 돌아보니, 잘려나간 경찰의 하반신이 바닥에 피를 뿜으며 나뒹굴고 있었다. 생각도 못했다. 일곱 번째 그 녀석이 설마 하니 가짜 경찰이었을 줄이야. 게다가 전자발찌라니.


트렁크가 경찰을 씹어먹는 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들린다. 꽤나 배고팠나 보지. 하긴, 오는 길의 그 몸부림이 심상치 않기는 했다. 나는 트렁크를 다시 열고, 남은 하반신을 마저 그놈의 입속에 던져주었다. 트렁크가 다시 닫힌다. 이걸로 여덟 명째다. 저 놈이 잡아먹은 건. 경찰이 일곱, 전과자가 한 명.


나는 걸레를 가져와 트렁크의 핏자국을 닦아내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차 키를 주워 운전석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고, 다시 가던 길로 출발한다.


얼마 안 가 트렁크 쪽에서 쿵쿵 소리가 들려온다. 경찰 하나를 다 씹어먹은 트렁크의 그 녀석이 배고프다고 몸부림치기 때문이다. 웃기지 마라. 네 녀석의 식사는 그게 마지막이야. 아홉 번째 희생자는 네 녀석이 될 것이다. 이 차를 사람의 발이 닿지 않는 곳으로 몰고 가 차가운 바다에 빠뜨릴 것이다. 누구도 가까이 갈 수 없도록 깊은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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