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아른 괴담록

by 허아른


어린 시절의 기억은 여름의 물냄새와 함께 떠오른다. 종아리에 흙을 묻히며 뛰어다니던 시절, 그 시절의 우리 동네에는 개천이 있었다. 좀 더러운 물이긴 했어도, 송사리 같은 작은 물고기들도 많이 사는 그런 얕은 개천.


개천을 따라 걷다 보면 학교가 나왔다. 학교 가는 길에,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나는 때때로 멈춰 허리를 굽혀 앉았다. 졸졸 흐르는 물속을, 그 물속을 휘젓고 다니는 작은 물고기들을 구경했다. 뼈가 있기나 한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유연하게 몸을 구부리며 헤엄 치는, 작지만 생동감 넘치는 그것들을.


하지만 그 생동감은 어느 날 갑자기 무채색의 풍경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날, 하굣길에 내가 본 것은 뻣뻣하게 일자로 뻗어서 둥둥 떠올라 있는 물고기들이었다. 그것들이 더 이상 살아있지 않다는 것은 어린 나로서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물에 떠오른 물고기들 모두 못이 박혀 있었다. 아주 작은 쇠못이. 집으로 돌아가서 그 이야기를 했지만, 부모님은 믿어주지 않았다. 뭘 잘못 봤겠지, 그렇게 말하고는 웃을 뿐이었다.


부모님이 맞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런 일이 진짜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어렸을 때의 기억은 항상 모호하니까. 진실이라고 믿기엔, 기괴하고 부조리한 기억들이 너무 많으니까.


어른이 되고 나서 나는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일을 하면서 다양한 망상 장애 환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자신의 망상을 진심으로 믿고 있다. 스스로 체험했고, 똑똑히 보았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린 시절의 내가 겹쳐 보였다. 그 시절의 나 역시 그랬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맡은 환자 중에는 자기 정수리에 못이 박혔다고 믿는 사람이 있었다. 칠순이 넘은 남자였지만, 또래에 비해 유난히 자세가 곧은 사람이었다. 일생동안 건강을 위해 하루하루 근면하게 살았던 몸이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끝없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망치 소리다.


매일 밤, 그는 꿈과 현실의 틈새쯤에서 들리는 듯한 망치 소리에 시달렸다고 한다. 처음엔 그게 무슨 소리인지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였지만, 날이 갈수록 점점 커져서 마침내 또렷한 망치소리가 되었다.


몇 달, 몇 년을 계속된 그 소리에 시달리다가, 어느 날 그는 자기 정수리에 박힌 보이지 않는 못을 의식하게 되었다.


정수리에, 못이 박혀 있다. 뺄 수도, 건드릴 수도 없는 못이.


밤마다 들리는 망치소리는 그 못을 내리치는 소리라고, 그는 그렇게 말했다.


"만약에 못이 끝까지 박히면 어떻게 될까요, 선생님."


그는 그렇게 물었고, 나는 괜찮을 거라고 대답했다. 괜찮을 것이었다. 그런 못은 없으니까.


정말이다.


수없이 살펴보았지만, 그 남자의 정수리에 못 같은 건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어린 시절 내가 보았던 개천의 풍경처럼, 정수리의 못 역시 착각 또는 망상일 뿐이다.


망치 소리에 시달린다는 점과 망상에 시달린다는 점만 빼면 건강하기 그지없던 그 남자는, 어느 날 침대에 누운 채 그대로 죽었다.


죽은 남자의 시신이 옮겨져 나갈 때,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남자의 몸은, 그러니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조금도 구부러지지 않았다. 곧은 자세 그대로 실려나갔다.


다른 사람들은 그게 사후경직 때문일 거라고 믿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몸이 꼿꼿하게 들어 올려진 상황에서도, 두 팔과 한쪽 다리만은 힘없이 쳐져서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는 그 남자가 마치 정수리에서 발 끝까지, 직선의 척추로 연결된 것처럼 보였다. 아니, 아니지. 정수리에서 발 끝까지, 길고 긴 쇠못으로 박힌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말하는 게 맞겠다.


실려나간 환자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코끝을 맴도는 물냄새를 느꼈다. 어린 시절의 물고기들이 생각났다. 개천에서 실처럼 흔들리던 작은 물고기들, 조금씩 뻣뻣해진 물고기들. 유년의 그림자 속에 묻어두었던 그 망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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