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아른 괴담록

by 허아른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를 한 달 앞두고, 공사 책임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완공이 한 달 정도 더 미루어질 것 같다고.


“작업자들 컨디션이 안 좋아서요. 자꾸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그러네요? 뭔가가 건물 속을 뛰어다니는 것 같다고... 상태가 안 좋아서 헛것을 보는 사람도 있고요.”

“헛것이라면, 뭔가요?”

“그게... 노란 우비를 입은 꼬마아이가 자꾸 공사장 안에 나타난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실제로 나타난 건 아니고요?”

“당연하죠. 어린애가 들어올 수 있는 현장이 아닌데요.”

“그래서, 그 아이는 뭘 하고 있었다고 하던가요?”

“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는데요?”


우비를 입은 아이.

전에도, 그런 것을 본 사람이 있었다.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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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유미는 우리 반 반장이었다. 2학년 때 전학을 왔는데,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예쁘고 해서, 순식간에 인기를 끌었다. 아니,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유미가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데는 뭔가 신비한 힘 같은 것이 작용하는 것 같았다.


유미네 집이 정확히 뭘 하는지는 몰랐지만, 그 집은 어른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어른들도 그 집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때때로 그 집을 ‘업둥이네 집’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말을 하는 사람들도 그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아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 집은, 유미는 특별했다.


그런 유미와 친해진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했었다. 유미와 현주, 그리고 나 세 사람은 3학년 때 같은 반이 되자마자 단짝이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 겨우 한 달 앞으로 다가왔을 무렵, 우리 세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조별 과제를 할 일이 생겼다. 조 편성이 확정된 그 순간, 나와 현주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주고받았다.


우리는 친했다. 친했지만, 단 한 번도 유미의 집에 가본 적이 없었다. 집이 어디인지는 알고 있었다. 가끔 찾아가서 불러내기도 했지만, 어째서인지 절대 집안을 보여주는 일은 없었다. 졸업하면 뿔뿔이 흩어질 세 사람. 어쩌면 이번이, 유미의 집에 들어가 볼 마지막 기회다.


과제를 핑계로.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커피숍 같은 데서 해도 되잖아.”


예상대로 유미는 우리의 제안을 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마지막 기회였기에 나와 현주는 끈질기게 설득했다.

“남들 보는 데선 집중이 안 돼. 그리고 돈이 얼만데.”

“너네들 집은?”

“우리 집은 친척들 와 있어서 안 돼.”

“우리 집은 이제 좀 그만 데려오랜다 야.”


수없이 밀고당기기를 반복한 끝에, 유미는 결국 못마땅한 표정으로 승낙했다. 묘한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이상한 게 보이더라도, 보이는 척하지 마.”

“이상한 거라니?”

“그런 게 있어.”


유미는 꺼림칙한 표정으로 입을 닫았다. 말하기 싫지만 말해두어야 하는 그런 것이 있다. 그래서 말했을 뿐이다. 그런 느낌이었다.


“너희들, 왔구나.”


현관을 열고 들어가자 유미의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유미의 어머니는 미인이었다. 그것도 굉장히 품격이 느껴지는. 밖에서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집에서 마주치니 어쩐지 훨씬 더, 뭐라 말할 수 없는 기품이 있는 것 같이 보였다.


물론, 집 자체도 기품이 느껴졌다. 요즘 보기 힘든 이층집 단독주택. 뭐랄까, 20세기에 만들어졌을 법한 느낌이었지만, 낡았다기보다는 고풍스럽다는 말이 어울릴 것 같았다. 그렇게 느끼게 만드는 어떤 기운, 냄새, 그런 것이 있었다.


유미의 방은 이층이었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유미의 방이 나온다. 유미의 방까지 가면서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집이 크다 보니 방이 많았다. 그런데 모든 방이 조금씩, 그러니까 반쯤 열려 있었다. 그리고 유미의 방도, 딱 반 정도 열려 있었다.


“닫지 마.”


방 안에 마지막으로 들어선 현주가 방문을 닫으려 할 때, 유미가 급하게 한 말이었다. 유미는 방 한쪽에 기대어 있던 밥상 같은 것을 가져와 방 한가운데 펼쳤다. 어쩐지 제사상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 셋이 그 상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으니, 잠시 후 유미 엄마가 과자와 음료수 같은 것들을 들고 들어왔다.


“우리 집은 나랑 유미, 둘 뿐이야.”

“앗, 네.”


유미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친구니까. 하지만 지금 그 이야기는 왜 하는 걸까. 유미 엄마는 유미와 잠시 묘한 눈빛을 주고받더니 도로 나갔고, 유미는 어쩐지 약간 화가 난 듯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삐걱삐걱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 귀에는 묘한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네 발로 마룻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 같은 소리, 그러다가 전력으로 달리는 것 같은 소리. 유미의 엄마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어쩐지, 광기 같은 것이 느껴지는 소리다.


잘못 들은 것은 아니다. 소리가 변할 때마다 유미의 표정이 나빠졌으니까. 하지만 현주에게는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현주는, 그 소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궁금했다. 저게 무슨 소리일까.


유미에게 소리에 대해서 물어보려 한 순간, 유미는 무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건, 내가 뭘 물어보려는지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곧바로 입을 닫았다. 굉장히 불합리하게 느껴졌지만, 절대로 물어봐서는 안 된다.


나와 유미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분을 느꼈는지, 현주는 불안한 표정이 되어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어? 안녕?”


현주가 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뭔가가, 물체라기보다는 그림자 같은 것이 문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쟤, 유미 네 동생이야?”


현주의 물음에 '동생이 있었어?' 하고 맞장구치려던 찰나, 나는 유미의 표정을 보고는 아차 싶어 입을 닫았다. 그 표정에는 경악과 당혹, 그리고 원망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유미 엄마가 했던 이상한 말이 머리에 떠올랐다.


이 집엔 나와 유미, 둘 뿐이야.


아버지가 없다는 말을 하려던 게 아니다. 둘뿐. 다른 식구는 없다. 유미의 엄마는 힌트를 주었던 것이다. 어째서인지 직접적으로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동생 같은 건 없다는 이야기를 돌려서 말한 것이다. 이상한 게 보이더라도, 보이는 척하지 마. 유미가 했던 그 말. 그 이상한 것을 현주는 보고 만 것이었다.


싸늘한 오한이 밀려왔다. 있을 리 없는 남동생의 존재 때문도 아니다. 그것을 보고 말아 버린 현주 때문이 아니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유미의 얼굴 때문이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이 정말 유미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원한에 가득한 표정. 그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현주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있지만, 도저히 사그라들지 않는 그 표정. 그날의 모임은 결국,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과제 이야기도 흐지부지되었고, 유미도 나도,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똑똑하게 기억에 남는지도 모른다. 그날 문을 나서면서 현주가 했던 그 말이.


근데 네 동생, 왜 집안에서 우비를 입고 있어?


아니, 어쩌면 그저 그것이 현주의 마지막 말이었기 때문에 기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음 날부터, 현주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갑작스럽게 전학을 갔다고 얼버무렸지만, 납득은 되지 않았다. 졸업을 한 달도 남기지 않았는데, 전학이라니.


혼자서 현주의 집에 찾아가 보았지만, 의혹만 더 깊어졌다. 분명히 그 집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생활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사 간 흔적 따윈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만 사라진 것 같았다.


또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유미의 태도였다. 유미는 더 이상 나와 어떤 대화도 하지 않으려 했다. 현주의 전학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느냐고 몇 차례나 물어보았지만, 대답을 들은 것은 딱 한 번이었다. 아니, 그걸 대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너, 그러다 옮으면, 난 책임 안 져.”


옮는다니? 뭐가? 무슨... 병 같은 거야? 현주는... 병에 걸렸어? 그렇게 수없이 되물었지만, 대답은 듣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들의 중학 시절은 끝났다. 그 후로, 우리 셋은 다시 모이지 못했다. 아니, 앞으로도 모이지 못할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고향에 돌아왔을 때, 유미의 집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때 그대로. 하지만 그 집엔 아무도 없었다. 이사 간 흔적도, 없었다. 나는 온갖 수를 다 써서 그 집을 매입했다. 그 집을 허물고, 더 큰 집을 짓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의 새 보금자리로 삼기 위해서.


그렇게 유미와 이별하고, 어른이 되어 가면서 차츰차츰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유미와 유미의 엄마, 그리고 그 집을 감싸고 있던 신비한 기운. 그리고 유미가 모두에게 주목받게 만든 신비한 힘이, 그리고 유미 가족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신비한 존재가 무엇이었는지.


그것은, 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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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이라는 것이 있다. 뱀이라고 하기도 하고, 조상신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것이 집에 있는 동안은 집안에 재물이 들어오고, 하는 일이 잘 된다. 하지만 그것이 떠나면 그만큼의 재앙이 찾아온다. 현주가 보았던 그것. 나에겐 그림자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그것. 아마 유미에게도, 유미 엄마에게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을 그것은, 업이 아니었을까. 말 그대로, 업둥이.


그날 유미가 보였던 표정, 그 후의 태도, 그 어느 것을 생각해 보아도 그런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 집에는 업둥이가 있었다.


이상한 게 보여도, 아는 척하지 마.


그날 유미가 그렇게 말했던 것은 우리를 걱정해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업이, 자길 아는 척하는 사람을 따라갈까 봐. 업이 집에서 나가버릴까 봐. 그래서 그랬던 것 아닐까. 나는 공사 관계자에게 다시 물었다.


“아이를 보았다는 사람은, 한 명인 거죠?”

“예. 딱 한 명입니다. 글쎄 아무것도 없는 곳을 가리키면서 자꾸 아이가 보인다고.”


현주네 가족이 사라진 것은, 현주가 업둥이를 보았기 때문이다. 업둥이가 현주를 따라나섰기 때문이다. 유미가 말한, 옮으면 자기도 모른다는 그 말은 그걸 말한 것이었다. 업이 옮으면, 업이 이번엔 날 따라오면...


...어떻게 하겠다는 뜻이었을까.


우비 입은 아이는 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고 했다. 거기에, 그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는 것이겠지. 그날부터, 지금까지 쭉... 현주네 가족은 아마도, 거기에 있는 거겠지.


업을 그 집에 붙잡아두기 위해, 유미네 가족은...


그래, 마지막으로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행복한 새 집 생활을 위해서. 나는 공사 관계자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 사람은, 그래서 지금 어디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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