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새벽 1시 반.
나는 그날, 내 첫 전세집에서 자고 있었다.
갓 지어진 새 건물이었다.
도배도, 바닥도, 보일러도 전부 새 것이었다.
예쁜 침대도, 예쁜 가구도, 커튼도, 소파도.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계약한 공간.
스물셋의 나에게 그 방은 성취였고, 자부심이었다.
그 밤도 평범했다.
따뜻하게 데운 방 안에서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겨우 잠이 들려던 참이었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토스카 17X2 차주분 계세요?”
낯선 남자의 목소리.
시간은 새벽 1시 반.
이상했다. 동시에 무서웠다.
나는 열려 있는 창문은 없는지 확인하고,
고리문도 단단히 잠근 뒤 안에서 말했다.
“그런 사람 없어요. 장난치지 마세요! 경찰 부를 거예요!”
그러자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저희 경찰입니다. 문 좀 열어주세요.”
믿기지 않았다.
내가 부르지도 않은 경찰이 왜,
지금 이 시간에?
문 두드림은 멈추지 않았다.
남자들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걸쇠 열고 확인하시면 되잖아요! 빨리 문 여세요!”
공포가 밀려왔다.
심장은 너무 빨리 뛰었고, 머리는 얼어붙었다.
그 순간 떠오른 이름—장민석.
덩치 크고 믿음직한 회사 동료 오빠.
며칠 전 이사를 도와준 덕분에 우리 집 위치를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급히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장민석… 지금 경찰이라는데 남자들 한 세네 명 돼 보이거든.
계속 문 두드린다. 무서워 죽겠어. 올 수 있나?”
그는 마침 우리집에서 5분거리에 살았고,
차를 타고 정말 빠르게 달려왔다.
건물 계단을 쿵쾅거리며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고,
밖에서는 "새벽에 남의집 앞에서 뭐하시는거에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장민석의 특유의 방정맞은 목소리가 들렸다.
“야, 김다은! 경찰 맞다. 문 열어라~!”
나는 문을 열었다.
진짜 경찰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경찰과 함께 한 여자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나를 보자마자 외쳤다.
“이 여자예요! 맞아요, 이 여자!”
나는 상황을 파악할 틈도 없이 휘말렸다.
경찰은 내 집을 수색했다.
갓 이사한 새집,
내가 내 힘으로 마련한 첫 전세집.
그 공간이 낯선 손들에 의해 열리고, 뒤져졌다.
나는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여자는 싸늘한 눈빛으로 다가와 말했다.
“머리 한번 풀어보실래요?”
“그리고… 묶어보실래요?”
나는 말없이 따라야 했다.
머리를 풀고, 다시 묶자
그 여자는 소리쳤다.
“헉! 맞아, 저 머리! 이 여자예요!”
그제야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사실, 그 일주일 전부터 이상한 낌새가 있었다.
밤마다 누군가 따라오는 듯한 기분.
엘리베이터 앞에서 멈칫하게 되는 순간들.
어느 날은 도어락 누르는 소리도 들렸다.
밖을 나가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게 그냥 기분 탓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 여자는 나를 일주일 넘게 미행하고, 감시하고, 추적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 혼자 “확신”한 뒤, 경찰을 끌고 와서
나를 불륜 ‘현행범’으로 몰아붙였다.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내 말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경찰은 내 핸드폰을 확인하고,
서랍을 열고,
침대 밑까지 들춰보았다.
나는 피의자처럼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장민석은 나를 안방으로 데려가더니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야, 김다은. 니 혹시 진짜 유부남 만나나?”
그 말에 나는, 정말 돌아버릴 뻔했다.
“야이 새끼야, 내가 대가리에 총 맞았나?”
다음날, 그 여자가 다시 찾아왔다.
혼자였다.
나는 문을 열었고, 그녀는 울고 있었다.
“죄송해요… 제가 착각했어요…”
나는 화를 내지 못했다.
그땐 너무 어려서,
오해가 풀렸다는 것만으로 안도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내 거실에 앉아
남편 사진, 아이 사진을 꺼내 보이며 울었다.
“저… 경주 살아요.
남편이 바람피는 것 같아서…
월요일부터 미행했어요.
도어락도 눌렀고… 뒤도 몇 번 밟았어요.
내천 건너편에서 망원경으로 지켜봤어요…”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정말은 분노했어야 했고,
문을 닫았어야 했고,
신고했어야 했지만,
그때 나는 너무 순진했고,
너무 착했고,
너무 어렸다.
그녀는 울면서 계속 말했다.
“근데… 나는 분명히 이 집으로 들어가는 걸 봤거든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옆집 아니에요?”
그녀는 고개를 들더니
곧장 옆집 벨을 눌렀다.
그날, 그녀의 확신은 무너졌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 여자와, 옆집 여자, 그리고 나까지—
우리는 모두 내 전세방 안에 있었다.
결국 밝혀진 진실은 이랬다.
그 여자의 남편은 옆집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자신을 미혼이라 속여 임신까지 시켰으며,
그 여자는 남편을 잡겠다며 경찰을 데려와
주소도 확인하지 않은 채 내 집에 들이닥쳤던 것이다.
나는 그저 앉아 있었다.
내가 계약한 공간,
내가 마련한 공간의 중심에서
나는 조용히 배경이 되었다.
그 여자는 말했다.
“언니… 저 임신한 것 같아요.
근데 그 남자 유부남이면… 애 못 낳아요.
낙태비… 주세요.”
나는 말이 없었다.
그날 저녁, 그들은 작전을 짰고
남자는 체포됐다.
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나가버렸다.
조용히,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고 나는 혼자 남았다.
그날 이후, 나는 불을 끄고 잠들지 못한다.
현관 도어락이 눌리는 소리,
복도에서 나는 발자국,
휴대폰 진동 하나에도 깬다.
수년이 흐른 뒤, 나는 병원을 찾았다.
우울증을 진단받고,
수면제와 항불안제를 처방받았다.
오랜 시간 정신과 상담을 하며
그날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꺼냈다.
의사는 말했다.
“참…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일을 겪으셨어요.
분명 이 사건도, 다은 씨에게 트라우마가 되어 있을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그 새벽이
내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린 건 아니다.
이미 흔들리고 있었던 마음에
그 새벽은 또 하나의 금이 되었을 뿐이다.
나는 그 이후로도 수많은 밤을 지나왔고,
지금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만큼은 살아 있다.
이건 단지 억울한 사건이 아니다.
이건 내가 누구인지조차 물어주지 않았던,
어떤 밤의 기록이다.
그 밤에 나는
그저 그 시절 유행하던 갈색 단발머리를 한,
스물셋 여자 하나였다.
그리고 그 새벽, 나는 ‘범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