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대 할 수 없는 로망이 하나 있다.
이룰 수도 없고, 아마 이번 생에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을 꿈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품었던 마음이다.
그저 평범한 하루의 끝에,
퇴근길에 아빠랑 나랑 둘이 몰래 만나는 거다.
엄마 몰래, 오로지 아빠와 딸의 약속.
지하철역 어디쯤에서 만나
팔짱을 끼고 같이 걸어간다.
평소엔 줄이 길어서 쉽게 가지 못했던
그런 식당 앞에 나란히 서서 웨이팅을 하고,
맛있는 저녁을 같이 먹는다.
밥을 다 먹고 나면
요즘 잘 나간다는 영화 한 편을 고른다.
나란히 앉아 팝콘을 나눠 먹고,
화면을 보며 킥킥 웃다가 울다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
나는 조용히 아빠 손을 꼭 잡는다.
손이 참 크고 따뜻하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집에 가기엔 아쉬워서
근처 호프집에 들어간다.
아빠는 맥주 한 잔, 나는 레몬 사이다 한 잔.
“아빠~ 엄마 요즘에 너무 잔소리 심한 것 같아요.”
“서준이는 알라때도 말 안 들었는데 커서도 우째 똑같은 거 같아요.”
“아빠는 서준이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게 맞죠?”
쓸데없는 말들로 수다를 떨다가
불쑥, 눈물이 날 것 같아 조용해지는 그런 밤.
그러면 종업원이 웃으며 물어본다.
“아버지랑 따님이세요?
둘이 너무 똑 닮았네요.”
“보기 좋다.”
아빠는 배시시 웃으시고,
계산은 물론,
“딸이랑 데이트하는데 아빠가 계산해야지 이거 몇 푼이나 한다꼬.”
하며 주섬주섬 첫 월급으로 내가 아빠에게 사드린 지갑을 꺼내는,
아직은 현역으로 잘 버는 우리 아빠가.
그게 내 로망이다.
사람들은 모른다.
그게 얼마나,
얼마나 간절한 소원인지.
누군가는 당연하게 누리는 시간,
누군가는 귀찮아하고,
누군가는 아예 상상도 하지 않는 그 시간.
그런데 나는 단 한 번도,
그 평범한 장면을 살아본 적이 없다.
내 사춘기를 함께 겪기도 전에,
내 첫 월급을 받아
선물 하나 건네보기도 전에,
내가 컸다고, 용돈 한번 드려보기도 전에,
아빠는 그렇게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아빠가 있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쿡쿡 쑤신다.
아빠가 있는 게,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내 나이는 이제 곧 마흔이다.
아직도 나는
아빠와 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다정하게 걸어가는 걸 보면
가끔, 그 로망을 떠올린다.
그리고 속으로 되뇐다.
“아빠랑, 나랑, 오늘 퇴근길에 만났으면 좋겠다…”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을 소원을
오늘도 조용히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