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는 파주로 지원을 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제일 큰 이유는 그거였다.
그때 엄마가 “평택으로 이사 간다”고 했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진짜로 엄마가 평택으로 가는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툭 던진 말이었는데,
그때 나는 그걸 진심으로 믿었다.
“엄마가 평택으로 가니까, 나도 가까운 파주로 가야겠다.”
그게 전부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말도 안 되는 선택이었다.
가족도 친구도 다 대구에 있는데,
엄마 혼자 무슨 평택을 가.
말이 안 되는 걸, 그땐 몰랐다.
나는 그냥,
말만 들으면 다 믿는 사람이었다.
그게 나였다.
그렇게 나는 파주로 이동을 결심했고,
이동이 확정되자 오히려 마음이 더 굳어졌다.
“그래, 서울 물도 한 번 먹어보자.”
파주에서 서울을 오가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뭔가, 지금 있는 세상보다
조금 더 넓고 큰 곳으로 나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선택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나를 부서뜨리기 시작했다.
이동 첫 주,
나는 지갑을 도둑맞았다.
그리고 파주의 말씨는 하나같이 낯설었다.
나만 딴 세상에서 온 사람 같았다.
질문을 했더니,
아는 척 한다고 꼽을 줬다.
파주에서의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었지만,
경력자였기에 아는 것도 조금 있었다.
그저 다름을 물어본 거였는데…
그걸 건방지다고 느낀 사람이 있었던 거다.
그때부터 나는
자신감을 잃어갔고,
말을 아끼게 됐고,
자꾸만 겉돌기 시작했다.
그래도 버텼다.
마음이 불편해지니, 잠은 자꾸 부족해졌고,
결국 가정의학과에서 졸피뎀을 처방받았다.
나는 점점 이상해져갔고,
조금씩, 무너졌다.
마치 바보가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버텼다.
버티고, 또 버티고, 또 버텼다.
그리고 2011년 1월.
어느 겨울 아침이었다.
그날은 오전 근무였다.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나는 기숙사에서 출근하려고 나왔다.
늘 서던 통근버스 줄 대신,
나는 택시 줄로 걸어갔다.
택시기사에게 말했다.
“월롱역이요.”
내 가방에는
사원증과 지갑만 달랑 있었다.
출근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회사를 향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대구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그게,
내 첫 무단결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