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평생 운전을 하지 않았다.
그게 못해서가 아니라,
안 하기로 마음먹은 어떤 이유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빠는 엄마에게
운전면허를 따보라고 여러 번 말했다.
문제집도 사다 주었다.
하지만 엄마는,
펴보지도 못하고 덮었다.
그 시절, 엄마에겐 면허를 딸 여유가 없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
그리고 어린 우리 남매.
매일이 생존이었고,
오늘을 버티는 일이 더 급했으니까.
그래도 그땐 괜찮았다.
아빠가 늘 태워줬으니까.
엄마가 친구들과 어딜 나간다고 하면
아빠는 친구들까지 다 태워다 주고,
모임이 끝날 무렵이면
그들을 다시 데리러 왔다.
그날, 엄마는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부러운 아줌마였다.
그 조수석에서,
가끔 창문을 열고
머리칼을 넘기며 웃었겠지.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굳이
운전을 배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
아빠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
주변 사람들은 엄마에게 말했다.
“이제 형수도 운전면허 좀 따이소.”
“애들도 크고, 차 한 대는 있어야지.”
엄마는 다시
운전면허 문제집을 폈다.
하지만 거기 적힌
표지판, 사고 예시,
긴급 상황 대처법 같은 문장들을 보다
엄마는 또 책을 덮었다.
책에 적힌 말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들이
더 끔찍하고, 더 선명했을 것이다.
엄마는 그렇게
문제집을 책장 한구석에 밀어 넣고
다시 조수석에 앉았다.
엄마는 말한다.
“나는 머리가 나빠서 운전은 몬 한다.”
”문제집 보면 머리가 아프다.”
하지만 나는 안다.
엄마는 머리가 나쁜 게 아니다.
은행 앱, 주식 앱,
온라인 쇼핑, 유튜브 미러링, 넷플릭스까지—
못 하는 게 없는 사람이다.
필요하면 다 외우고, 다 해내는 사람.
엄마는 운전을 안 하는 거지,
못 하는 게 아니다.
아빠의 사고는
단지 아빠를 데려간 게 아니라,
엄마에게서 ‘운전’이라는 선택지도
영영 지워버린 것이다.
훗날,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그분은 말했다.
“한여사~ 운전면허 따면 차 한 대 사주께.”
엄마 남자친구는
말 한 번 뱉으면 지키는 사람.
경차라도 2천만 원.
그게 나였다면,
꽁돈이라고 생각하며 기어코 땄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는
그때도 면허를 따지 않았다.
그때 나는 알았다.
엄마의 조수석은
습관이 아니라,
상처의 자리라는 걸.
어릴 적엔
아빠의 조수석에 앉아 있었고,
지금은
아들의 조수석에만 머무는 엄마.
늘 조수석에서만 세상을 보게 된
한 여자의 인생을
나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그게 마음이 아프고,
좀…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