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발전은 없었지만, 버텼던 시간들

by 하린

퇴사를 하고

나는 대구로 내려갔다.

엄마와 다시 함께 살게 되었다.


하지만 엄마는

내 퇴사가 못마땅했다.

“그 좋은 회사를 왜 때려쳤냐”고

잔소리를 많이 했다.

그 말들이

나를 더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얼마나 망가졌는지,

어떤 마음으로 도망치듯 나왔는지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말하지 않는 대신,

나는 콜센터에 다녔다.

그리고 퇴근 후엔

미용학원에 다녔다.

메이크업 자격증을 땄다.


그건 작은 성취였지만

내가 내 손으로

무언가를 해낸 첫 시작이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엄마와는…

도저히 함께 살 수 없었다.


그 무렵,

서울에 남자친구가 생겼다.

처음엔 친구 이서의 집에 얹혀 살았다.

그러다 독립을 했다.

작은 방, 작은 침대, 작은 냄비 하나.

그게 내 삶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버티는 삶을 살았다.


그 시절 나는

사회 속에 섞여 있는 듯하면서도

절반쯤은 밖에 나와 있는 사람,

반 히키코모리처럼 살았다.


사람들 사이에 있었지만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했고,

세상을 살아는 갔지만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했다.


성장도, 발전도 없다고 느꼈지만

되돌아보면

그 시간은 분명히 살아낸 시간이었다.


일하고, 월세 내고, 밥을 먹고,

때로는 여행도 가고,

집 안에 조금씩 살림이 늘어나고,

여름이면 선풍기와 에어컨을 틀고,

겨울이면 따뜻하게 전기장판을 펴고 잤다.


매달 고단했지만, 나는 다시 일어났고

다음 달을 또 살아냈다.


그게 반복이었다.

10년 가까이.


버텼다는 건,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이니까.

가만히 있던 게 아니라,

한 칸씩, 작게라도 앞으로 갔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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