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아빠와 남동생

by 하린

우리 아빠는 젊고 멋진 사람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빠를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피부색도, 얼굴 윤곽도, 입술도.

누가 봐도 아빠 딸이었다.


반면 남동생 서준이는 엄마를 닮았다.

땡그란 눈, 오똑한 코, 뽀얀 피부.

태어났을 때부터 예뻤고,

사람들은 “외탁이네”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릴 때,

엄마는 서준이를 더 좋아하는 거 아닐까

혼자 삐친 마음을 품곤 했다.

지금도 그 마음이 다 사라진 건 아니다.


아빠는 내가 열한 살이던 해에 돌아가셨다.

내 기억 속 아빠는

늘 반듯하고 건강한 모습으로만 남아 있다.

늙고 작아진 얼굴도, 흐려지는 눈빛도 없이

영원히 서른일곱.

그 모습으로 내 마음 한편에 묶여 있다.


타지 생활을 오래 해서,

서준이 얼굴을 자주 볼 일도 많지 않았다.

그날도 오랜만에 대구 본가에 내려갔다가,

거실 한복판에서 아빠를 봤다.


한 손으로 머리를 괴고 누운 서준이가 TV를 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익숙했다.

뒤통수도, 옆으로 살짝 삐딱하게 누운 자세도,

TV 보면서 발을 까딱까딱 흔드는 것도,

심지어—


“헤헤헤—”


그 꺾어 웃는 웃음소리까지.

그건 정말, 아빠였다.

아빠 특유의 웃음. 소리가 꺾이는 그 웃음.

나는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마치 시간이 휘어져서,

11살의 내가 다시 지금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너무 놀라서 TV 앞에 앉아 있는 서준이 얼굴을 들여다봤다.

한참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나 보다.

서준이가 말했다.

“아 뭐하노? 나온나~”


나는 울컥한 마음을 꾹 눌러 담고 말했다.

“아… 아빤 줄 알았다… 깜짝 놀랬네…”


신기했다.

어릴 땐 엄마만 닮았다고 생각했던 서준이 얼굴에서

점점 아빠가 보이고 있었다.

윤곽이 거칠고 얼굴도 넙데데했던 아빠와 달리,

서준이는 엄마의 예쁜 점까지 더해져서

조금 더 갸름하고, 정리된 느낌이었다.

마치 요즘 세상에 태어난, 잘생긴 버전의 아빠 얼굴 같다고 해야 할까.

그게 너무 이상하고, 또 기분 좋았다.


나는 옷을 갈아입으러 방에 들어가면서

고인 눈물을 손등으로 툭 닦고, 큰소리로 말했다.


“엄마~ 서준이 나이 드니까 아빠랑 똑같이 생겼네.

아빤 줄 알고 깜짝 놀랬다.”


엄마는 말했다.

“엄마는 맨날 봐서 잘 모르겠는데… 엄마 안 닮았나?

근데 느그 고모랑 삼촌들이 카대.

서준이 즈그 아바이 판박이라고.

니도 그래 말하는 거 보이, 진짜 닮기는 닮았는갑다.”


그러더니 엄마도 슬며시 서준이 곁으로 가서,

서준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 눈빛은 말이 없었지만,

뭔가 복잡한 마음들이 담겨 있었다.


서준이도 말했다.

“내가 그래 아빠 닮았나?”


그런데 녀석,

그 말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싱긋 웃는 표정.

마치 그게 자랑스럽기라도 한 듯이.


서준이는 지금 서른일곱이다.

돌아가시던 때였던 아빠의 나이를 따라잡았다.

요즘은 어깨도 넓어지고, 눈빛도 깊어지고,

가끔은 말투까지 닮아간다.


아빠가 떠난 후로,

나는 오랫동안 무서웠고 외로웠다.

세상이 너무 넓고,

나는 너무 작았고,

그 작음이 슬펐다.


그런데 서준이 얼굴에서

점점 아빠가 자라나고 있는 걸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마치,

아빠가 살아 돌아온 것만 같은 기분.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갑작스레 떠나는 아빠 말고,

엄마와 내 곁에 오래오래 남아줄 수 있는 아빠가

서준이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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