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이는 어릴 때 자주 아팠다.
뇌수막염으로 입원을 했고, 다리도 부러지고,
잔병치레가 많았다.
엄마는 늘 병원에 있었고,
아빠는 그 엄마와 서준이를 지키기 위해
일 끝나면 병원으로 갔다.
나는 그때 국민학교 2학년 봄.
학교가 파하면 아빠가 나를 데리러 왔다.
엄마와 서준이가 있는 병원에 나를 데려다주고,
밤이 되면 작은삼촌 내외가 병원으로 와서
나를 다시 데려갔다.
작은삼촌 부부는
지금 생각해보면 거의 부모님 같으신 분이셨다.
나를 참 예뻐하셨다.
당시 맞벌이를 하는 신혼이었던 그들은
퇴근 후 나를 데리고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 데려갔고,
오무라이스랑 스테이크도 사줬다.
두분이 데이트를 하던 코스에 나를 끼워 이곳 저곳 많이도 다녔다.
어른들이 다니는 근사한 카페,
예쁜 조경이 되어있는 공원.
그런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그 어떤 맛있는 음식보다,
내겐 엄마 아빠가 그리웠다.
매일 병원에서 서준이와 시간을 보내는 엄마,
그 엄마를 지키겠다고 병원에 남는 아빠.
나는 항상 그 바깥에 있었다.
항상 ‘맡겨지는 아이’였다.
그래서 어느 날,
작은삼촌 부부가 나를 돌볼 수 없는 하루가 생기고,
아빠가 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아빠는 내 숙제도 봐주고,
알림장도 확인하고,
양치도 시키고,
옷도 갈아입혀주고,
나를 안고 재워줬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아, 이게…
아빠 품이구나.
사실 그전까지 나는
아빠보다 엄마가 더 편했다.
엄마와의 애착이 훨씬 컸고,
아빠는 그저 믿음직한 존재였지
‘정서적으로 가까운’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하룻밤,
그 단 하루가
내 마음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작은삼촌 부부가 아무리 잘해줘도
아빠랑 자는 그 밤이 훨씬 더 좋았다.
그건 비교가 되지 않았다.
나는 엄마 아빠를
서준이에게 다 뺏긴 기분으로 살고 있었는데
그날 밤, 아빠가 온전히 내 것이 된 기분이었다.
그날 밤의 감촉,
아빠의 향수와도 같던 자동차 오일 냄새,
아빠 품에서 잠든 그 느낌,
그 따뜻한 공기와 조용했던 집 안의 정적이
서른아홉이 된 지금까지
삼십 년을 지나서도
잊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