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정신과를 방문했을 때,
정말 많은 설문지를 작성했다.
이름, 증상, 가족력, 수면 습관, 감정 기복…
손은 떨렸고, 마음은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입원진료실 문이 열렸고,
그 안엔 한 명의 의사가 있었다.
강세은 원장님.
세련된 이미지에,
참 포근한 인상을 가진 여자 선생님이었다.
나는 선생님을 보자마자—
눈물이 났다.
참을 수 없었다.
울음이 터졌다.
‘이제 나, 진짜 나을 수 있겠지?’
그 생각 하나가 온몸을 흔들었다.
선생님은 마치,
나를 지켜주러 온 사람 같았다.
구세주처럼 보였다.
울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화를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선생님은
부드럽게 말을 건네며
내 안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주었다.
나는 천천히
내가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꺼냈다.
그리고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울증이 뚜렷하게 시작된 건 12년 전인 것 같아요.
다은 씨가 25살이던 그때쯤.
왜 그때는 진작 병원에 와볼 생각을 못 하셨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다시 눈물을 쏟았다.
그 한 문장이
내 안의 시간을 꿰뚫고 지나갔다.
그렇게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나는 내 아빠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의 부재.
그 이야기를 하면서
또 많이 울었다.
선생님은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어린 시절 부모의 결핍을 겪은 아이들은
우울증에 노출될 확률이 훨씬 높아요.
다은 씨는 그런 경우인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처음으로
내 안에서 무언가가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약한 게 아니었구나.’
‘내가 나태해서 그런 게 아니었구나.’
나는 20대 초반,
연장근무도, 조출도, 특근도 다 지원하며
몇 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악착같이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던 내가
나약한 사람일 리 없었다.
나는 그냥—
무너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날,
선생님의 말은
내가 나를 다시 믿기 시작하게 만든
첫 번째 문장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기쁨과 안도의 눈물.
“이제는 정말 괜찮아질 수 있겠구나.”
그 믿음이
처음으로 내 안에 들어온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