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최촉녀 언니야

by 하린

생각해보면,

내 첫 직장은 참 좋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내 사수 선배님, 지안 선배님도 그렇고,

후배 서연이랑, 사랑이도 나를 참 잘 따랐다.

그리고 나보다 몇 주 늦게 입사했지만 두 살 많은,

자칭 ‘최촉녀’ 하윤 언니도 있었다.


하윤 언니는 참 재밌는 사람이었다.

발랄하고, 엉뚱하고, 웃기고, 자기 감정 표현도 잘하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때 봤던 언니의 모습은 딱 그랬다.

전체적인 느낌이 그냥… 재밌고 편하고,

언제나 내 옆에 있어주는 사람 같았다.


한때는 셋이서 함께 잘 지냈던 동료가 있었는데,

그 친구와 나는 점점 멀어졌고,

상당히 많이 틀어지기도 했었다.

그때 하윤 언니는 내 옆에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는 언니에게 꽤 섭섭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랑 사이가 멀어진 것도 서운했을 텐데,

언니까지 뺏긴 것처럼 느꼈을 테니까.


그래도 그땐 그런 생각까지 못 했다.

그저, 하윤 언니가 내 편이라는 사실이 늘 든든했고,

언니는 꼭 내 사람 같았다.

‘내 거’ 같다기보단,

‘우리 언니야’—그런 느낌.


지안 선배님은 선배님이라

존경심이 드는, 빽 같은 좋은 언니였다면,

하윤 언니는 사번은 느렸지만 진짜 ‘편한 언니’였다.

그렇다고 내가 언니를 막대하거나 무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 아래라고 생각해본 적도,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저, 하윤 언니는… 그 자체로 너무 좋은 사람이었다.


언니는 늘 말했다.

“김다은. 내 촉녀대이. 니 말 안 해도 내 다 안다잉.”

진짜 신기했다.

언니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말 나를 자기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가끔은, 언니가 무섭기도 했다.


내가 퇴사하고 난 후에도

언니는 가끔 연락을 해왔다.

“김다은, 구미 오면 뭐다? 언니야 집에 온나이!

니는 아기새고, 언니야는 어미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정리했다.

대구 엄마는 친엄마,

구미 엄마는 하윤 언니.


그런데 점점 이상해졌다.

자꾸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가끔 충동적으로 이상한 행동을 하고,

스스로를 소름끼쳐하고, 불안하고,

무서운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


남자친구 기찬이가 제발 정신과 좀 가보라고 설득했다.

그래서 결국 병원에 갔다.

첫 상담을 받고 나오는데,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


“우울증 증세가 12년 전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왜 그때는 병원에 가보실 생각을 안 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진료실을 나와, 감정이 채 가라앉기도 전이었는데

갑자기 휴대폰에 익숙한 이름이 떴다.

‘최하윤’.


너무 오랜만이었고,

하필 그 타이밍이라

순간, 울컥하고도 아찔했다.


“다은아… 다은아… 너 통화 돼?”

“언니야, 나 지금 정신과 왔어.”

“어…? 뭐라고?”

“지금 통화는 어려워. 조금 있다가 다시 전화할게. 한 시간 정도 뒤에.”


전화를 끊고 한 시간 뒤,

내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언니는 전화를 받자마자 말했다.

“문득 너한테 전화를 걸어야 할 것 같더라고. 근데 진짜 깜짝 놀랐다.”

“응… 첫 진료 받았는데 나 우울증이 좀 심한 상태래.”


“다은아, 마음 아프면 감기처럼 병원 가는 거야.

이상한 거 아니다. 언니도 힘들면 병원 가.

다 쏟아내고 오면 좀 나아진다.

병원 가는 거 절대 이상한 거 아니거든.

진짜야. 힘들면 꼭 병원 가.”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왜 그토록 울컥했는지 모르겠다.


통화를 끊고 나서

언니는 나에게 장문의 응원 메시지를 보냈고,

나는 “고마워요 언니야”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날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엄마 때문에,

그리고 하윤 언니 때문에 절대 무너지면 안 된다.”


왜냐면,

하윤 언니는 지금도

진짜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디서든 전화를 걸어올 것 같다.

아직도 날 자기 손바닥에 올려놓고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가끔,

속으로 중얼거린다.


“최촉녀 언니야, 지금 내 뭐 하는지 보이나?

내 지금 뭐 하고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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