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그렇게 쓰기 시작했다

by 하린

그렇게 지금의 선생님과 치료를 시작했다.

처음엔 딱히 바뀌는 게 없는 것 같았다.


지금의 선생님은

내가 먹고 있던 약이 너무 강한 것 같다고,

조금씩 줄여주셨다.


바뀌는 건 없었다.

그 상태로 며칠, 몇 주가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선생님, 저 갑상선이 좀 안 좋은 것 같아요.

병원 가서 피검사를 받을 때가 된 것 같은데…

만약 수치가 안 좋으면 수면제를 좀 약한 걸로 줄여주실 수 있을까요?”


내 몸은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던 거였다.


나는 몇 달 전부터 갑상선 기능 저하가

심하게 오고 있는 상태였다.

원래도 갑상선 기능이 좋지 않았지만,

작년 6월쯤부터 갑자기 더 심해졌다.


그래서 꾸준히 피검사를 받고 있었고,

나는 그 변화를 내 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신지로이드를 계속 복용 중인데도

수치가 계속 나빠지고 있다고.

오히려 나 같은 경우에는

약간의 항진 상태가 더 낫다며

약을 더 강하게 처방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갑상선 병원과 정신과를 오가며

선생님들의 조언을 받았다.


그 와중에

내 몸에 약이 드디어 딱 맞기 시작했다.


몸이 살만하니,

다른 것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뭘 한 번 더 해볼까?”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유는 없었다.


나는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재잘재잘 떠드는 걸 좋아했다.

조용한 곳에서는

혼자 내 생각을 조용히 적어보곤 했다.


그러다 문득

엄마가 해줬던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엄마와 아빠가 처음 만났던 이야기.

그 시절, 1980년대의 연애담.

촌스럽고 어색한 사투리와

반전 가득한 에피소드들이

내 기억 속에 너무도 생생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 제목을 정하고,

그 기억들을 하나씩 떠올려가며 쓰기 시작했다.

기억이 막힐 때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그렇게 초고가 완성됐다.


글을 스레드에 올렸는데, 반응이 꽤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이 웃었고, 공감했고, 재미있다고 했다.


나는 어릴 적 기억력이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의 말투며 풍경까지

꽤나 비슷하게 재현할 수 있었다.


그런데… 뭔가 좀 어설펐다.


왜냐하면 그건 내 시점이 아니라

엄마 아빠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책도 안 읽어봤고, 글도 써본 적 없는 내가

그들의 감정을 대신 써내려간다는 건

솔직히 무리였다.


특히 아빠의 감정은

아무리 상상을 해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겪어보지 않았고,

들어본 적도 없는 마음이었으니까.


그래서 결국

초고만 마무리한 채,

그 글은 멈춰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내가 ADHD일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예전부터 의심은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수치가 간당간당하다”고 하셨다.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정도”라고.


그러면서 내게 물으셨다.

“꼭 그 약이 필요하신가요?”


나는 대답했다.

“선생님, 저요…

뭘 하든 좀 제대로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영어공부도 글도 다 시작만 하고, 끝을 못 봐요.

이번엔… 한 번 끝까지 가보고 싶어요.”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ADHD 약을 처방받았다.


상담 후,

마음이 좀 복잡해졌다.


사실 나는

내가 ADHD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약을 먹기 전에

내 힘으로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썼다.

내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건 하나를.


그리고…

그 글이 대박이 났다.


24시간 만에 49만 뷰.


내 글 하나가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그 다음 날엔

아빠와 이별했던 이야기를 썼다.


그다음엔

내가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웃겼던 일,

재밌었던 사건,

어릴 적 기억,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걸 하나씩 글로 쓰다 보니…

나는 행복해졌다.


그렇게 나는,

2주 만에 60편의 에세이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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