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에 많게는 여덟 편,
적게는 세 편씩 글을 썼다.
ADHD 약을 먹고 나서부터였다.
약이 나를 천재로 만든 건 아니었다.
한자리에 앉아 있는 일이 조금 쉬워졌고,
머릿속에 떠다니던 말들이
손끝으로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2주 만에 60편의 에세이를 썼다.
문득,
내가 조금 자랑스러워졌다.
아이처럼 방방 뛰며 가족들에게 내 글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글 속에 등장한 사람들에게도 직접 보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출판사 네 곳에 투고를 보냈다.
가족들과 친구들의 반응은 너무나 좋았다.
자기 이야기가 담겨 있고,
자기 마음을 알아준다고 느껴서였을까.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칭찬이 이어졌고,
그 말들이 나에게 더 큰 힘이 되었다.
그 무렵,
예전 직장에서 정말 친하게 지냈던 언니가 떠올랐다.
하윤 언니.
나의 어미새 같았던 사람.
나는 언니 이야기를 글로 쓰고,
언니에게 보내줬다.
언니는 감동받았다며 말했다.
“눈물 날 것 같아.”
그 순간, 아차 싶었다.
언니도 글을 쓰고 있었던 게 어렴풋이 기억났다.
그래서 물어봤다.
“언니도 글 쓰고 있지 않아요?
전에 상도 타고 했던거 본것 같은데…“
언니는 대답했다.
사실은 독서회도 다니고,
에세이도 여러 곳에 투고했었다고.
결국 실패했지만,
계속 취미로, 노력으로 써왔다고.
육아를 하며 틈틈이 글을 쓰고,
시 대회에서 수상한 경력도 있는
정말 멋지고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니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하윤 언니는 말했다.
• 작가들은 글을 쓰며 ‘합평’이라는 걸 한다는 것,
• 남의 책을 많이 읽으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다시 생긴다는 것,
• 그리고 무엇보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보라는 것.
그 말을 듣는데,
머리가 띵해졌다.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내 글의 투박함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게 아직은 시야가 좁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정을 억지로 다듬고 싶지는 않았다.
그날의 대화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한 장면 같았다.
관식이는 늘 새벽마다 바다에 나갔다.
하루는 딸 금명이를 데리고 해뜨는 걸 보여주겠다며
깜깜한 바다 위에 둘이서만 배를 탔다.
금명이가 말했다.
“아빠, 무섭지 않아?”
관식이가 대답했다.
“저기 멀리 조그만 불빛 하나 보이지?
저게 고기 잡는 배야.
근데 아빠는 저 불빛을 보며 위안을 해.
저 사람도 나처럼 무섭겠구나,
생각하면 나도 덜 무서워져.”
하윤 언니는,
그 불빛 같은 사람이었다.
아니, 나보다 훨씬 먼저
고기를 잡으며 성실히 살아가던 어부였다.
그리고 그 언니의 불빛이,
“나 여기 있어”
깜빡깜빡깜빡
나를 향해 신호를 보내주고 있었던 거다.
하윤 언니는 브런치 작가에 도전해보라고 추천해줬다.
사실 나는 책을 잘 읽지 않았고,
브런치가 뭔지도 잘 몰랐다.
그저 Thread라는 플랫폼에
그냥 그냥 있었던 일을 글로 올리던 나였기에,
브런치는 멀게만 느껴졌었다.
그래도
이미 써놓은 글이 많았고,
그래서 브런치 앱을 다운받고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작가 신청 시,
300자 이내로 연재 방향을 쓰라는 항목이 있었다.
나는 내 글이
어디로 가야 할지 너무 잘 알고 있었고,
그 마음을 정성스럽게,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갔다.
금요일 오후 신청서를 제출하고,
일요일까지 몇 번이나 글을 고치고 또 고쳤다.
지우 언니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가 있었는데,
파티는 뒷전이고,
나는 계속 핸드폰만 들여다보며 수정만 했다.
일요일 오후,
마지막 수정을 마치고
나는 더 이상 손대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월요일 오후 3시,
브런치 앱에서 알람이 떴다.
“작가님.”
처음 보는 말이었다.
나한테 작가님이라니.
나는 네이트 메일을 얼른 확인했고,
메일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 또 한 번
작가님.
그 말에,
나는…
내가 정말 뭔가를 해낸 것 같았다.
물론,
브런치 작가쯤은
누군가에겐 아무 일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처럼 느껴졌다.
다음 날은 정신과 진료일이었다.
나는 2주 동안 있었던 변화들을
프레젠테이션 발표하듯 정리해서
선생님께 보고했다.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논문 발표 같아요.”
나는 말했다.
“선생님,
제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꼼꼼하게, 정확하게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상담을 다 받고 나와서,
나는 선생님께 고개 숙여 인사했다.
“선생님 덕분에
제가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은 말했다.
“다은씨가 노력해서 해낸 결과입니다.
저는 그걸 조금 도와드렸을 뿐이에요.”
그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울지 않고,
감사하다고 연신 말하며 진료실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