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보다 구조, 눈보다 사고
시각디자인을 처음 배우려는 사람 중 다수가 이렇게 묻는다.
“센스가 없으면 디자이너 못하나요?”
“그림을 잘 못 그리면 불리한가요?”
하지만 실무를 오래 해본 디자이너는 안다. 시각디자인은 감각의 영역이 아니라, 구조의 언어라는 것을. (물론 감각이 뛰어나고, 그림에 소질이 있다면 더 좋다.) 이 일의 본질은 예쁜 것을 잘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정보를 정리하고 의미를 구조화하는 능력에 더 가깝다. 오늘은 그래서 ‘시각디자인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실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대답해보려 한다. 감각보다 구조, 손보다 뇌가 먼저 작동해야 하는 이유를 중심으로.
처음 디자인을 배우는 대부분은 ‘예쁜 결과물’을 따라 만든다. 잘 만든 포스터를 그대로 베껴보거나, 마음에 드는 앱 화면을 흉내 내보는 식이다. 하지만 디자인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다. '왜 그렇게 만들었는가'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실력이 붙는다.
잘 만든 디자인은 항상 구조가 좋다. 정보의 우선순위가 분명하고, 시선 흐름이 자연스럽고, 사용자의 맥락과 접점이 맞물리는 지점에 설계의 중심이 있다. 이런 구조적 판단은 감각으로 '찍어내는' 것이 아니다. 브리프에서 파악한 문제를 바탕으로, 시각적 논리와 사용자 흐름에 따라 설계된 결과다.
디자인을 잘하고 싶다면, 많이 만들어보기 전에 먼저 잘 관찰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유명한 포트폴리오나 브랜드 사례를 단순히 '예쁘다'고 넘기지 말고, 무엇이 그 디자인을 좋게 만들었는지를 분석해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처럼 관찰 → 질문 → 재해석을 반복하다 보면 단순히 감각적으로 베끼는 수준을 넘어서, 시각 구조를 분석하고 응용하는 능력이 생긴다. 좋은 디자인은 우연히 예뻐진 것이 아니다. 정확한 목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결과물이다.
디자인 툴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과 디자인을 ‘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툴은 디자인을 표현하는 수단일 뿐이고, 그 이전에 디자이너는 무엇을 표현해야 할지 정의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실제로 툴을 잘 쓰는 사람 중에도 디자인이 엉성한 경우는 많다. 반면 디자인 개념이 탄탄한 사람은, 낯선 툴을 써도 빠르게 적응한다. 핵심은 도구가 아니라, 시각 언어로 사고하는 능력이다.
이런 질문이 익숙해질수록, 툴은 점점 ‘빠르게 손을 움직이게 하는 도구’로 바뀐다.
디자인에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좋은 선택에는 항상 근거가 있다. 이 로고에 왜 이 컬러를 썼는지, 이 배너에서 왜 이 위치에 CTA 버튼을 넣었는지. 그 모든 디자인에는 의도가 있어야 한다.
초보 디자이너가 훈련해야 할 것은 ‘예쁘게 만들어야지’가 아니라 ‘왜 이걸 이렇게 만들었는가’를 설명할 수 있는 사고력이다. 이 사고력이 있어야 디자인 요청이 들어왔을 때 방향을 제안할 수 있고, 피드백이 들어왔을 때 맥락에 맞게 조율할 수 있다.
그 판단을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실력 있는 디자이너다.
시각디자인은 예술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다. 그렇기에 이 일을 잘한다는 것은 예쁘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의미를 잘 구조화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능력은 타고나는 감각보다 반복적으로 훈련된 사고 방식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시각디자인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면 눈보다 머리를 먼저 훈련시켜야 한다. 감각은 그다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