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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는 왜 해체되었는가?

근대디자인사 #8. 큐비즘(Cubism)

by 공일공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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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체는 부정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을 위한 분할이었다.


1907년, 파리. 파블로 피카소가 <아비뇽의 처녀들>을 공개했을 때, 관람객은 충격을 받았다. 익숙한 인체가 부서지고, 얼굴은 아프리카 가면처럼 낯설게 변형되었으며, 공간은 평면과 단편으로 분할돼 서로 충돌하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양식의 변화가 아니었다. 회화의 규칙을 새로 쓰는 실험, 즉 큐비즘의 시작이었다.




원근법의 붕괴 ― 세계는 하나의 시점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르네상스 이후 미술은 원근법을 통해 하나의 시점에서 세상을 재현해왔다. 그러나 20세기 초, 산업과 도시, 사진과 영화의 등장은 인간의 감각이 더 이상 단일 시각으로 환원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피카소와 브라크는 말했다. "우리는 눈이 아닌 머리로 본다." 대상의 여러 면을 동시에 드러내는 분절적 표현은, 세상은 한 눈에 담기지 않고 여러 겹의 모습으로 드러난다는 뜻이었다.


b1bd1468aa570.png (Picasso, Les Demoiselles d’Avignon (1907))




형태의 해체 ― 분석적 큐비즘(Analytic Cubism)


1909~1912년, 피카소와 브라크는 형태를 세밀하게 쪼개어 화면에 흩뿌렸다. 바이올린, 병, 인물은 작은 입방체와 기하학적 파편으로 해체되었다. 색은 갈색 · 회색 · 베이지로 절제해, 형태 자체의 구조에 집중했다. 이것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사물을 이루는 본질적 구조를 드러내려는 시도였다.


f7d5267d298cd.png (Georges Braque, Violin and Palette (1909))




파편의 재구성 ― 종합적 큐비즘(Synthetic Cubism)


1912년 이후, 큐비즘은 다시 새로운 실험을 했다. 신문 조각, 벽지, 포스터를 붙여넣은 콜라주(collage) 기법이 등장한 것이다. 해체된 형태는 현실의 파편들과 결합해 다시 조립되었다. 평면적 실루엣과 강렬한 색채, 활자와 오브제가 결합하면서 화면은 회화와 그래픽, 현실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었다.


(Picasso, Still Life with Chair Caning (1912))




건축과 디자인으로 확산 ― 입체적 언어의 영향


큐비즘은 회화에 머물지 않았다.건축에서는 르 코르뷔지에가 기하학적 매스를 건축의 언어로 확립했고, 디자인과 그래픽에서는 포스터·가구·타이포그래피가 큐비즘의 평면성과 단편화를 흡수했다. 조각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자크 리프쉬츠와 알렉산더 아르키펜코는 해체된 형태를 입체로 번역하며, 화면에서 시작된 큐비즘의 언어를 공간 속으로 확장시켰다.


995863d183a69.png (https://www.fostinum.org/czech-cubist-interiors.html)


cfd4c7fc6e540.png (https://blog.naver.com/boggi04/220756327840,https://blog.naver.com/boggi04/220756327840)


4535c111244cf.png (https://pisso.kr/?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0567926&t=boar


이렇게 큐비즘은 20세기 모더니즘 전체를 관통하는 조형 언어로 자리 잡았다.




해체는 파괴가 아니라 재구성이다


큐비즘의 해체는 단순한 분쇄가 아니었다. 그것은 보이는 방식과 생각하는 방식을 새로 조립하는 과정이었다. 오늘날, 데이터 시각화 · 3D 모델링 · 디지털 아트 역시 대상과 공간을 하나의 시점에 고정하지 않는다. 다양한 층위와 파편, 혼합된 현실이 새로운 경험을 만든다.


"형태는 왜 해체되었는가?" 라는 질문은 결국,

"우리는 어떻게 세계를 다시 조립할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파편 속에서 세계를 다시 그리는 일, 그것이 큐비즘이 남긴 영원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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