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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을 그린다는 건

근대디자인사 #9. 추상주의(Abstraction)

by 공일공스튜디오
근대디자인사 #9.jpg


✍ 추상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려는 시도였다.


1910년, 러시아 출신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는 캔버스 위에서 대상을 지워버렸다. 집도, 사람도, 나무도 사라지고, 대신 색과 선, 점과 면이 화면을 메웠다. 사람들은 물었다. “이게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칸딘스키가 찾은 건 형태가 아니라 감정이었다. 그는 말했다. “색은 영혼에 직접 닿는다.” 추상주의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그릴까


사람의 마음, 음악의 리듬, 불안과 희망 같은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추상주의 화가들은 “그렇다면 보이는 것을 그리는 대신,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무 대신 초록색의 선율, 집 대신 네모난 리듬, 사람 대신 붉은 파동이 등장했다. 이것은 대상을 지운 그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린 그림이었다.


0f58c88ecd7d2.png (Wassily Kandinsky, Composition VII(1913))




단순함 속에 담긴 감정


피트 몬드리안은 직선과 네모, 빨강·파랑·노랑만 남겼다.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그는 이 안에 “조화로운 세계”를 담고자 했다. 흰 여백은 숨 쉬는 공간, 굵은 검은 선은 질서, 원색은 살아 있는 에너지였다. 복잡한 세상에서 본질만 남기면 이런 모습일 거라 믿은 것이다.



c3c0a0cbd3063.png (Piet Mondrian, Composition with Red, Blue, and Yellow(1930))




음악처럼, 건축처럼


추상화는 회화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음악처럼 리듬을 만들고, 건축처럼 공간을 나눴다. 러시아 아방가르드 건축가들은 큐브와 선으로 건물을 설계했고,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활자와 색면을 조율하며 새로운 언어를 만들었다. 추상은 그림에서 시작했지만, 곧 디자인 전체의 언어가 되었다.



(El Lissitzky, Beat the Whites with the Red Wedge (1919))


c5f4e64ed51f4.png (리트펠트 슈뢰더 하우스(Rietveld Schröder House, 1924))




추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추상화를 보며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하지만 추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음악을 들을 때 우리는 악보에 그려진 도형을 떠올리지 않는다. 그냥 리듬과 감정으로 느낀다. 추상주의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는 사물 대신,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과 질서를 그린 것이다.


그래서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그 답은 어렵지 않다. 사물을 넘어서려는 용기, 그리고 감정을 믿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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