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디자인사 #12.아르데코(Art Deco)
1920년대, 세상은 기계로 돌아가고 있었다. 바우하우스가 “기능”을 말하고, 르 코르뷔지에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고 선언하던 시기. 그러나 모두가 그 차가운 질서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아름다움’은 정말 효율과 대립해야 하는가? 아르데코는 그 질문에서 출발했다.
1910년대 말,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사람들은 전쟁의 파괴와 기계의 소음 속에서 다시 화려함을 찾고자 했다.
1925년 파리 만국박람회 — 정식 명칭은 현대 장식미술과 산업미술 국제박람회(Exposition Internationale des Arts Décoratifs et Industriels Modernes). 이곳에서 처음 등장한 이름이 바로 “Art Deco”였다.
이 운동은 ‘기계시대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기하학적 패턴, 대칭적인 구성, 금속·유리·에나멜·상아 같은 새로운 재료를 통해 산업의 감각을 장식으로 번역했다. 즉, 기계의 냉정함과 인간의 감각을 결합하려는 실험이었다.
아르데코의 형태는 이전의 아르누보처럼 유기적이지 않았다. 대신 단단한 선, 반복되는 패턴, 정제된 곡선으로 질서를 세웠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 라디오 시티 홀의 인테리어는 모두 이 시대의 상징이다. 금속으로 장식된 엘리베이터 문, 대리석과 유리로 꾸며진 홀, 빛이 반사되는 크롬 라인. 그 속에는 “기계의 미학”과 “인간의 욕망”이 공존했다.
아르데코는 ‘기계’가 만들어낸 재료를 통해 오히려 ‘장식’을 되살린 운동이었다. 즉, “기계로 장식을 한다”는 역설을 구현한 셈이다.
1920~30년대, 아르데코는 건축을 넘어 가구·패션·그래픽·가전제품으로 확산됐다.
라디오, 전화기, 자동차, 전기선풍기
포스터, 보석, 향수병, 영화관 간판
모두 날카로운 선과 반짝이는 표면, 대칭적인 구조를 공유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기계미 + 대중문화”의 결합으로 발전했다. 뉴욕의 스카이라인은 그 자체로 ‘아르데코의 도시’가 되었고, 포스터에는 속도와 빛, 도시의 리듬이 등장했다.
아르데코는 산업 제품을 통해 ‘예술이 생활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을 보여주었다.
아르데코는 단순한 복고가 아니었다. 그들은 ‘장식’을 통해 오히려 ‘현대’를 정의했다. 이전 세대의 장식이 자연의 모방이었다면, 아르데코의 장식은 기계의 질서, 도시의 리듬, 산업의 속도를 반영한 것이었다.
이것은 과거의 장식과 전혀 다른, 현대적 장식이었다.
그래서 아르데코는 “기계와 예술의 타협안”으로 남았다. 기계는 효율을, 예술은 감각을 말하던 시대 —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였다.
AI와 자동화가 디자인의 영역을 넓혀가는 지금, 우리는 다시 묻는다.
“기계와 감각은 공존할 수 있을까?”
100년 전, 아르데코는 그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기계는 차가워도, 인간은 여전히 그것을 아름답게 만든다.”
디자인은 언제나 기술의 언어로 인간의 감각을 말해왔다. 그것이, 시대를 지나도 변하지 않는 디자인의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