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디자인사 #4. 추상주의(Abstract Art)
1910년, 러시아의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을 모두 지워버린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 예술은 사물의 재현이 아니라, 순수한 감정의 진동이었다.
색과 선, 형태는 현실의 그림자가 아니라 음악처럼 울리는 감각의 언어가 되었다.
이것은 회화의 혁명이었다. ‘무엇을 그렸는가’가 아니라, ‘색과 형태 자체가 무엇을 말하는가’를 묻는 순간. 추상주의는 그렇게 시작됐다.
칸딘스키는 색을 음표처럼 느꼈다. 빨강은 트럼펫, 파랑은 첼로, 노랑은 나팔 소리. 그는 회화를 ‘보이는 음악(Visible Music)’이라 불렀다.
이 개념은 이후 파울 클레(Paul Klee)로 이어졌다.
클레는 색과 점, 선을 조합해 리듬을 만들었고, 이 추상적 사고는 후에 바우하우스 디자인 교육의 중심 원리가 된다.
즉, 감정의 시각화 → 구조의 체계화로 이어진 것이다.
추상주의의 또 다른 축은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이었다.
그는 직선과 기본색(빨강, 노랑, 파랑)으로 세계의 질서를 표현하려 했다.
예술은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사회를 효율적으로 조직하는 시스템이 되어야 했다.
그에게 ‘형태’는 자연의 단순화였고, ‘색’은 우주의 조화였다.
몬드리안의 그림은 결국 ‘디자인의 언어’로 진화했다. 그의 직선과 색의 조합은 오늘날의 그래픽, 편집, 제품 디자인의 시각 체계로 이어졌다.
즉, 추상주의는 감정에서 시작해 구조로 끝난 예술이었다.
추상주의는 형태를 단순화하고, 색을 ‘감정의 기호’로 바라보는 시각을 열었다. 그들의 실험은 미술에 머무르지 않았다.
포스터, 건축, 가구, 타이포그래피까지 — 형태의 본질을 탐구하는 디자인 철학으로 확장됐다.
그들이 남긴 메시지는 단순하다. “의미를 버려야, 진짜 본질이 보인다.”
추상주의는 혼란이 아닌 질서의 탐구였다. 그들은 감정의 파편 속에서 세상의 보이지 않는 구조를 시각화했다.
이 정신은 오늘날 브랜드 아이덴티티, UI 구조 디자인, 모션 그래픽까지 이어진다.
형태와 색의 ‘감정적 조화’를 읽어내는 감각, 그것이 추상주의가 남긴 디자인의 핵심 유산이다.
추상주의는 눈으로 보는 예술이 아니라, 감각으로 느끼는 언어였다. 이성이 아닌 감정, 대상이 아닌 구조.
그들은 “형태를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오늘날의 디자이너가 색과 비율, 간격으로 감정을 설계할 수 있는 이유 — 그 뿌리는 바로 이 시대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