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 심포지엄
프롤로그
오늘도 기차를 탔다. 탔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 기차를 놓치지 않은 건 거의 기적이다.
짐도 쌌고, 알람도 맞췄고, 시간도 계산했는데... 이상하게 항상 마지막에 뒤엉킨다.
왜 나는 매번 이성적으로 준비했으면서도 막판 5분의 마법에 휘둘리는 걸까?
라운드 1: 자아 선언
자율:
“내 뇌는 일정을 분해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문제는 예상 외 변수가 아니라, 감정의 여운이다. 나는 계산했지만 감정은 안 끝났던 거다.”
안전:
“기차는 놓치면 끝이다. 다음 열차가 있다고 해도 시간 손해, 비용 손해, 멘탈 손해가 연쇄적으로 온다.
그래서 나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시뮬레이션해야 한다. 그걸 안 하는 사람은 그냥 무모한 거다.”
루틴:
“기차는 시간표, 알람은 다단계, 짐은 체크리스트.
이 프로토콜만 따르면 놓칠 이유가 없다.
문제는 프로토콜에서 이탈하는 예외 인간인 너, 너 자신이다.”
충동:
“ㅋㅋㅋ 내가 왜 자꾸 놓치냐고?
그거야 뭐 시간 계산 다 해놓고 거북이 구경하다가 바디로션 바르고 도넛 먹으니까 그렇지.
진짜 사람 아니고 산만한 소형 라이브 방송 채널이야.”
감정:
“내가 기차를 놓치는 건 무능해서가 아니다.
나는 준비한다. 계획한다.
근데 항상... 마지막에 무슨 감정이 올라와.
'아직 괜찮아' 하는 그 감정이 나를 늦게 만든다.”
라운드 2: 난투전
충동:
“시간? 계산? ㅋㅋㅋㅋㅋ
너네는 나처럼 선크림 바르고 로션 바르고 약 챙기다 거북이 눈빛 한 번 보면 시간이 훅 간다는 걸 몰라서 그래.
기차는 놓쳐도 거북이는 안 놓친다고.”
안전:
“리스크는 리스크다.
기차는 공공 시스템이다.
네 감정이 남아 있든 도넛이 입에 있든 기차는 제시간에 떠난다.
그건 너의 감정선이 고려되는 구조가 아님.”
자율:
“정확히 말하자면, ‘산만함’은 원인이 아니라 감정의 잔존물이다.
나의 계산은 언제나 정확했지만, 나는 내 감정의 딜레이를 간과했다.
이건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인지 조율 실패다.”
루틴:
“내가 몇 번을 말하냐.
10시 10분: 최종 점검.
10시 30분: 출발.
양말 미리 신기. 알람 2중 세팅.
이걸 어기면 그냥… 인간 로그아웃이지 뭐.”
감정:
“나는 사실…
‘기차 놓치면 어쩌지’보다
‘기차 놓치면 다 내 잘못인가’라는 생각이 무섭다.
그래서 자꾸 마지막에 감정이 터져.
그게 나를 무겁게 해.”
[오브서버 FACT CHECK]
통계적으로 ADHD 및 시간감각 처리 민감자는 ‘준비 완료 후 마비’되는 **시간 착시 현상(time optimism)**이 잦다.
즉, 기차를 놓치는 게 게으름이 아니라 뇌의 인식 처리 차이라는 거.
(출처: 정신신경학 저널 vol.78, 2023)
라운드 3: 결론을 향해
자율:
“나의 시간 계산은 잘못되지 않았다.
감정이 뒤늦게 밀려왔을 뿐이다.
다음엔 이걸 ‘시간 포함 감정 딜레이 10분’으로 환산해보자.”
안전:
“다 좋아. 하지만 리스크는 여전하다.
기차는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모든 감정은 출발 전에 정리돼야 한다.”
감정:
“나는 ‘조급함’이 싫어서 시간을 늘리고 싶은 마음이었어.
기차를 놓치면 혼나는 기분이 드니까.
그래서 나는 계속 ‘좀 더’ 머물러 있는 거야.”
충동:
“기차 놓치면 재밌는 썰 생겨서 좋긴 하던데~
근데 오늘 안 놓쳤다고?
어휴… 캐릭터 붕괴임.”
루틴:
“다음엔 '선크림 단계 → 감정정리 단계 → 물통 마무리 단계'로 출발 프로토콜 개편 요청함.
안 지키면 또 로그 찍는다.”
나는 기차를 놓치는 게 싫었던 게 아니었다.
나는 떠나야 하는 그 마지막 감정이 싫었다.
전문가 코멘트
심리학자:
“이 행동은 인지 부하보다 감정 마무리 실패에서 발생한다.
준비된 상태임에도 계속 ‘안 된 것 같은 기분’이 남아 인지 착각이 생긴다.”
정신과 의사:
“뇌는 계획을 완료한 순간부터 실제 행동까지 시간 지연을 방치하기 쉽다.
ADHD 뇌는 특히 ‘마지막 10분’에서 멈춤 현상이 발생한다.”
철학자:
“기차는 하나의 목적지이자 문턱이다.
그 문턱을 넘기 전, 인간은 잠깐의 혼란을 견뎌야 한다.
혼란을 정리하는 그 5분이 실존이다.”
오늘 집을 떠나는 마지막까지 내 시선을 붙잡았던 거북이 보고 가세요 >_<
이름은 두팔이에요 박두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