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 심포지엄
프롤로그
라면을 쏟았다. 예전 같았으면 씩씩대며 치우고 스트레스 받았겠지만, 나는 그냥 방바닥에 누웠다. 기분이 들면 치우고, 아니면 그냥 둔다.
옛날엔 열심히 쥐고 살아야 사는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나를 더 무겁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버리기 시작했다. 물건을, 시간 계획을, 기준을, 사람을, 심지어 나 자신에 대한 오해를.
왜 나는 이렇게 버리기 시작했을까?
집정리를 위해 쓸모없는 물건 다 버리기~~
라운드 1: 자아 선언
자율: 나는 논리적으로 판단했을 때, 손에 쥐고 있는 게 생존에 도움이 안 되면 그냥 놨다. 버림은 실패가 아니라, 리소스 재분배다.
안전: 나는 무너질 것 같았고, 그 전에 나를 가볍게 해야 했다. 버림은 포기가 아니라 예방이었다.
루틴: 하나씩 치우기 시작했다. 옷장, 서랍, 파일, 플래너, 계획표, 관계. 버림은 내 삶의 백업 시스템이었다.
충동: 그냥 귀찮았어. 다 싫었고. 그래서 ‘아 몰라 다 버려’로 시작했는데, 뭐야? 살만하네?
감정: 쥐고 있던 건 기억, 기대, 후회, 타인의 말투. 그걸 다 버렸더니 남은 건 오롯한 나였어. 그걸 어떻게 설명하지… 그냥, 덜 아프더라.
라운드 2: 난투전
충동: 야 나 진짜 그때 거울 앞에서 속옷 던졌거든? “내가 왜 브라에 갇혀 살아야 되는데?” 그 후로 브라가 아니라 내가 편한 삶을 지지하게 됐어.
안전: 그건 리스크를 감안하지 않은 결정이다. 사회적 생존을 위해 필요한 건 체계적 유지다. 버리기엔 너무 빠르다.
자율: 데이터상 그건 틀렸어. 버림은 단절이 아니라 우선순위 재정렬이었고, 효율적인 감정 처리 모델로 기능했음.
감정: 난 그냥 무서웠거든. 어디에도 못 속하고, 노력도 힘들고, 그래서 뭐라도 내려놨던 거야. 그리고, 그게 나였고.
루틴: 시스템 알림: ‘과부하 감정 → 정리 없음 → 리소스 누수 발생’
재부팅 권장: 불필요 감정 객체 삭제 중...
[오브서버 FACT CHECK]
– 브래지어, 불필요.
– 완벽주의, 오류 발생.
– 타인의 시선, 무한 루프.
– 버림 → 여백 → 감각 회복됨.
라운드 3: 결론을 향해
자율: 버리는 건 나를 비우는 게 아니라, 나를 남기는 방식이었다. 이건 생존의 계산이다.
안전: 아직도 모든 걸 버리진 않는다. 쥘 것도 선택하는 것이 되었다.
감정: 가끔은 또 집착이 올라온다. 근데 그때마다 ‘내가 누구였지’ 생각하면 조금씩 덜 집는다.
충동: 어차피 다 놓고 가는데 뭘 그리 쥐고 있냐고. 그냥 오늘 쓸 거면 오늘만 가지고 사는 거야. 라면 엎었으면 눕고, 기차 놓쳤으면 다음 거 타고.
루틴: 삶의 새 루틴 적용 완료. 버리고 남은 것만으로도 살아집니다.
감정: 사실, 버리기 전까지는 항상 무섭다고 생각했어. 화장도 그랬어. 메이크업은 “남한테 잘 보이려고” 했던 거잖아? 그거 없으면 나라는 사람이 무너질 것 같았지. 근데 막상 “그만해야겠다” 마음먹는 순간, 너무 잘 버려. 어이없게 잘 버려. 그렇게 ‘나였던 것’들이 바닥에 툭툭 떨어졌는데 미련이 없어. 놀랄 만큼, 아무렇지도 않아.
집도 그랬어. 치우기 전엔 막막하고 골치 아팠는데 버리기 시작하니까 고민도 안 하고 그냥 확확 다 버림. “그래, 이거야 이거!” 그 말 하면서 거실 한복판에서 혼자 희열 느낌 받고 있었음ㅋㅋ 진짜 거의 디아블로 아이템창 정리하는 각오로 버림.
나는 짐이 많아서 괴로웠던 게 아니었다.
나는 ‘내가 아니었던 것’까지 쥐고 있었던 게 싫었다.
전문가 코멘트
심리학자:
버림은 회피가 아니라 선택의 행위다. 자신의 감정 용량을 인지하고 맞추는 건 고도의 자기 조절이다.
정신과 의사:
버린다는 행위는 통제 불가능한 외부 스트레스에 대한 내적인 질서 회복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철학자:
존재는 축적이 아닌, 삭제를 통해 드러나기도 한다. 남겨진 것의 질감은 곧 ‘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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