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슝공항 13만 원짜리 OOO사건

나 홀로 공항에서 눈물바다

by 홍하

여행으로 숨기_가오슝 편

에피소드 #1. 가오슝 공항의 13만 원짜리 OOO사건


대만의 가오슝은 아직 한국에서 인기 있는 여행지는 아니었다. 그래서 더 끌렸달까.

사실 ‘직항’이라는 게 한몫 차지했으리라.

(때는 딱 코로나가 창궐하기 바로 직전 2020년 1월)


한 번 멀리 나가려면 지역 공항에서 김포공항,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공항, 이렇게 대이동을 하는 나 같은 섬사람에게 ‘직항’은 특히 매력적인 단어다.


그 시기는 주위에 대만을 다녀온 사람도 없고 여행 정보도 적었다.

왁자지껄하게 인기 있는 지역이 아닌 듯 보여 내향인에게 적합한 여행지가 될 것 같은 착각 같은 기대감을 충전하며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계획형 J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여행지의 정보를 일일이 찾아보지 않는 편이다.

꼭 가봐야 한다거나 먹어봐야 하는 곳은 넘기고 오직 항공과 숙소예약만 해두고 탑승.


아마도 대만인으로 추정되는 95%의 탑승객 사이에서 두근두근하며 오지도 않는 잠을 청해보다 1시간 반 남짓의 시간을 보냈다.


이번은 휴대 수화물만 포함한 표 덕분에 컨베이어벨트에서 캐리어를 찾는 사람들을 지나치며

‘저 먼저 나갑니다’

당당하면서도 민첩하게 행동하는 듯... 했다.


여기까지는 분명히 수월했었는데!!

내 작은 기내용 캐리어와 애착 크로스백을 Nothing To declare(세관신고 대상 없음) 통관 검사대에 올릴 때까지만 해도 미처 몰랐다.


내가 공항에서 울게 될 줄은...


너무도 찰나의 검색대를 나와서 내 여행 절친, 크로스백을 가뿐히 들어 올리려는데

“Sir?"

(저기, 선생님? 어디 감히 가시려고요? 정도의 뉘앙스)

나를 불러 세운다.


당연히 내 절친은 그 직원의 손에 들려 벨트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온다.

아니 나오다가 다시 어딘가, 그러니까 웬만한 탑승객들이 빠져나가는 반대 방향의 카운터로 나와 내 가방이 쫄래쫄래 따라간다.


아무 판단이 안 서 멀뚱히 서 있으니 오픈해 보란다.


장갑을 낀 직원은 속에 든 정체불명의 존재를 인지하여 나에게 지퍼 열기를 요청했고, 아무 걸릴 것 없는 듯 당당했던 나는 익숙하게 지퍼를 열어젖혔다.


그가 조심스레 가방에서 끌어올린 물체는...


바. 나. 나.


새벽 비행이라서 배가 고플까 봐 공항에서 먹으려고 싸 온 그 바나나.

한자로 적힌 문서 여러 장을 보여줬는데 금방 파악은 되지 않았다.


‘불법, 금지’라는 영어 단어를 듣고서야 ‘과일 반입 금지’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문제아는,

딱 먹기 알맞게 익은 짙노랑 바나나와 무지하도록 당당했던 사이좋은 그의 주인이었다.


얼굴이 터질 대로 빨개진 갈 곳 잃은 표정의 애처로운 한국 관광객과 포토존에 놓인 노란 바나나만이 범법자가 되어 공항에 남았다.


나... 여행 자격 없는 걸까? 왜 그걸 까먹었을까아아아아?!!!!


그보다 왜 아침으로 다 안 먹고 가방에 도로 챙겼을까? 내 배와 불과 2시간 전의 과거를 원망하면서 눈물 넘치는 애원이 시작됐다.


‘어? 어? 아이 돈 니드 댓 원 나우. 플리스. 아이 윌 쓰로우 댓’

(저 진짜 진짜 이제 그 노랑이 더 이상 필요 없어요.

이 원수 버릴게요!! 제발!!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가난한 여행자라서 이거 봐요. 가방도 이렇게 작잖아요. 숙소도 6인실이랍니다. 정말 잘못했으니까. 이거 바로 버릴게요, 정도의 하소연 가득 뉘앙스)


정말 싹싹 빌어봤다.


정말로 저 천 원 미만의 바나나가 지금부터는 원수가 돼서 가까이에 놓인 쓰레기통에 그대로 안착하면 될 일처럼 보였다.


허나 그는 제 일을 제대로 수행하는 성실한 직원이었고 싹싹 빌며 우는 한국인 관광객에게 측은한 눈빛을 보낼 뿐 손은 단호히 엑스자를 그릴뿐이었다.


한 송이도 아니고 바나나 하나에 약 130배에 달하는 13만 원을 벌금으로 내고 공항 한쪽 구석에 짠 눈물을 가득 흘리고서야 입국이 허가되어 풀려(?) 났다.


이상하고 무서워 보이는 여러 장의 문서에 몇 번이나 서명하고 여권을 찍히고 나자, 혹시 다른 데 입국할 때 이 기록이 남아 앞으로 두고두고 '바나나 하나로 벌금을 어마하게 낸 무지하고 안쓰러운 관광객'으로 찍히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


더 속상한 건 흘끔거리는 입국객들 사이에서 나만 외톨이라는 사실이었다.


한국어 지원도 없고 짤막한 중국어와 영어로만 나에게 설명하는 이 상황까지..

벌금을 안 내면 다시 출발공항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이겠지만 협박처럼 느껴지던 그 매정한 말 덕분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신경을 숙소 찾는 데로 돌렸다.


가오슝 한복판에 바나나를 심으려고 침입한 한국인 스파이가 된 심정을 애써 지우며, 숙소가 있는 피어(Pier) 항구 쪽으로 가는 법을 찾았다.


들여다본 핸드폰 화면에 눈물 자국이 아직 남아있다.



< 최근 후기 >

4년 후 재방문한 가오슝 공항

짐을 찾고 대망의 통관 절차.

어라라, 공항 직원들이 들어오는 모든 한국 관광객에게 코 앞에 열심히 보이는 그것은..

"과일 반입 금지" + 각종 과일 그림

"과일 안 돼요. 신고하세요" 유창한 한국어는 덤이다.

이제는 울지 않고 흘낏 거리며 지나쳤지만

왠지 그림에 바나나가 그려졌던가 아닌가?

벌금과 울음이 적어도 4년 후 한국어 안내에 아주 조금은 보탬이 됐겠거니

누군가는 맞다! 하면서 가방을 뒤질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요?

생각하면서 트라우마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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