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본다는 건, 결국 '지구에 남은 사람'을 믿는 일이다.
폭력과 질서 사이, 차가운 명령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사랑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총 대신 펜을 쥔 군인, 현실의 전장을 우주로 번역하는 사람.
오늘은 SF작가 더블윤을 만난다.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육군에서 복무중인 군인 더블윤입니다. 아직은 저를 작가라는 말보단 군인으로 소개하는 편이 옳을 듯 하네요.
하고싶은 것이 너무많아 아직은 철없는 애기 아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하고 싶은 것 중 단연 글쓰기가 포함되어 있죠.
과학과 우주,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철학과 인류의 삶을 사랑합니다. 정말 사랑한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만큼요.
→ 사실 글이라는 것을 처음 써봤던 시기는 조금 더 어린시절로 돌아갑니다. 그때의 저는 대학 진학에 실패한 뒤로 재수를 결정하며, 하루의 모든시간을 캄캄한 독서실에서 보내고 있었죠.
그 시간을 공부로만 채워갔다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그때의 저는 그곳에서 부정적이고 어두운 감정들을 키워나갔습니다. 온통 세상에 대한 원망과, 자기 비하에 빠진채, 그 누구도 만나는 사람 없이 표정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갔었죠.
그렇게 빠져나올 길을 찾지 못한 제 감정들은, 제가 들고 있던 펜을 통해 빠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표현은 미숙했고 내용은 어두웠지만, 그것이 제게는 처음으로 스스로를 다루는 방법이었어요.
오랫동안 그 경험을 잊고 살았어요. 그러다 군 복무 중 우연히 쓴 기고문이 국방일보에 실리면서 그때의 감각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 타인과 공유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느꼈고, 그때부터 글을 의도적으로 쓰기 시작했어요.
→ 어릴 적 본 영화 <스타워즈>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어요. 에피소드 4~6편은 수십 번을 반복해볼 정도였고, 그 세계가 제게 준 충격은 오래 남아 있습니다. 그 경험은 저의 오래된 취미 중 하나인 천체관측과 연결되어, 지금의 우주를 좋아하는 저를 만든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했을 때, 장르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고 생각해요. 가장 강하게 끌리는 세계를 떠올렸을 때, 자연스럽게 우주가 떠오르기 때문이죠. 처음 써보는 소설이기에, 그만큼 어려움도 많지만, 우주와 과학을 사랑하는 제가 SF 외의 소설을 쓰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 제가 쓰고 있는 자전적 에세이, <솜털보다 가벼운>을 통해 드러낸바 있지만, 군대라는 조직은 다채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줍니다. 다양한 지역, 다양한 연령, 다양한 경험을 겪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다양한 사건들을 만들어 내곤 하죠. 그런 군생활의 경험은 제게 세상에 대한 또 다른 배움과 깨달음을 선물해 줍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군생활의 경험이 소설 속 전투장면의 묘사나 전술적인 모습들을 표현하는데 큰 도움을 줘요. 그러니 군생활은 제게있어 글쓰기의 훌륭한 소재거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 거의 모든 군인들은, 그 누구보다 평화를 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도 그러한 사람들 중 하나에요. 때문에 제가 쓰는 모든 글에 이러한 가치를 담으려 노력합니다.
진정한 질서와 공존, 평화와 번영, 사랑과 희망.
우리가 발 붙이고 살아가고 있는 이땅에 이러한 가치들이 넘쳐나길 바라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쓰는 모든 글에도 그러한 가치들이 담으려 노력하고 있고, 그것이 제 글을 읽는 모두에게 전해지기를 항상 바라고 있습니다.
→ '희망'이란 단어와 '사랑'이라는 감정을 좋아합니다. 무엇을 보든, 무엇을 듣든, 무엇을 읽든 그 안에서 인간에 대한 희망과 사랑을 찾으려 노력하는 편이에요.
위에서도 언급 했듯이, 제가 쓰는 글에도 그러한 소중한 가치들이 머물기를 바라고 있죠.
더블윤 작가의 글은 어둠에서 태어났다. 고립과 자책 속에서 펜을 쥔 그는 군인이 된 뒤, 다시 글로 자신을 구했다. 총 대신 펜을 든 그에게 SF는 현실을 견디는 또 다른 전장이었다.
<스타워즈>의 세계가 불씨가 되어, 그는 군대의 질서와 우주의 질서를 겹쳐 본다.
전투 대신 평화를, 명령 대신 사랑을 기록한다.
▶ 요약 한 문장:
군복 안의 작가가 우주를 향해 쓴다. 그에게 SF는 '평화를 꿈꾸는 언어'이다.
▶ 느낌 한 줄:
그는 싸우는 대신 쓴다. 싸움의 끝에서, 별빛의 희망을 본다.
→ 사실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게 소설을 쓰며 가장 어려운 부분중 하나입니다. 제 MBTI는 'INTJ'에요. 굉장히 고리타분하고 공감력 떨어지는 사람인 셈이죠. 이러한 성향때문인지, 아니면 군생활의 경험이 저를 이렇게 만든 것인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저는 감정표현이 서툴고,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반면 기술에 대한 설정은 상상만 해도 매우 신이나죠. 사실 SF를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각종 과학 기술에 대한 아이디어를 들여다보기 위함은 아닐까 생각돼요.
그러니 대답은, 당연히 '기술적 설정' 입니다. 오히려 너무나 많은 기술적 설정이 소설의 내용과 분위기를 해칠까 자제하려는 편이죠.
→ 확실히 소설속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칼리뮤는 놀라운 신체적 능력을 갖고 있는 강인한 군인입니다. 하지만 그 외의 인물들도 각자의 신념과 용기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을 보면, 현실의 군인들이 가지고 있는 의기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하네요.
어쩌면 저는 어릴적부터 군인들의 이러한 모습을 동경해 왔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분명 군생활의 경험이 소설속 장면 묘사를 수월하게 만들어 줍니다. 통신을 주고받는 행위라던가, 분대(소규모 부대)단위의 전술적 행동 들은 실제 훈련시 경험했던 것들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겠죠.
물론 현실의 저는 죽음이 임박한 경험을 했던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가끔 상상을 하긴 해요.
'전투, 전쟁이 일어나면 나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까?'
아무래도 가장 많이 하는 상상은 이것일 겁니다. 하지만 정말 답을 내리기 어려운 상상은 이게 아니에요.
'내가 과연, 내 눈앞에 두려움에 떨고 있거나,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청년, 또는 누군가의 남편이나 누군가의 아버지를 쏠 수 있을까?'
실로 두려운 상상이고, 끔찍한 광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쟁을 바라지 않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이기도 하죠.
그래서 군생활의 경험보다도 위의 딜레마를 소설속에 반영하고 싶었어요. 전쟁과 폭력이 오락거리가 아닌, 끔찍한 비극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죠.
→ SF라는 장르적 흥미는 결국 제 즐거움과 연결되어 있어요. 스타워즈, 스타트렉과 같은 우주전쟁, 스페이스 오페라의 이야기 뿐 아니라, SF적 요소들이 들어간 거의 모든 영화들을 빠짐없이 보았죠.
하지만 이런 개인적인 흥미의 요소가 아니더라도, SF라는 장르는 결국 과학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과학은 제게 커다란 의미가 있어요.
학창시절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어릴적 꿈은 과학 선생님이었죠.
비록 저의 과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는 것은 대학교 2학년을 끝으로 막을 내렸지만, 군 입대 이후에도 각종 과학 서적들을 읽으며 그 끝없는 탐구의 여정을 이어나가고 있어요.
과학은 제게 경이로움을 선사해 줍니다.
생명의 조화로움과 그 신비함 속에서, 진정한 마법을 보여주는 화학 반응의 세계를 통해서, 이 세계의 불변의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물리의 영역에서, 그리고 인간의 미약함과 위대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아름다운 우주, 코스모스를 통해서, 저는 매순간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전율을 느낍니다.
그러니 SF는, 아니 Science는 제 삶에서 뗄레야 뗄수없는, 가장 큰 흥밋거리라 할 수 있습니다.
→ 인간, 인류에 대한 제 시선은 항상 낙관의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는 코스모스안의 우리 인류를 특별한 존재로 바라보고 있는 시선 때문이며, 인간이 가진 가능성과 그 힘이 우리 스스로를 더욱 찬란한 존재로 만들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죠.
그렇기에 저는 이 세상이 언젠간 우리가 꿈꿔온 이상향으로 나아가리라 믿고 있습니다. 비록 당장 내일의 불확실함도 해결 못할, 아직은 미약한 우리지만, 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한걸음씩 나아짐을 향해 니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글을 통해 말하고 싶은 인간은 바로 그것에 있습니다.
폭력과 부조리, 고통과 갈등에 얼룩진 우리 인간이지만, 그 어디에나 희망은 빛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제 생각은 제가 브런치 스토리에서 처음 집필한 책인 <다시, 코스모스를 꿈꾸다>와 <배움의 존재>에 잘 드러나 있어요.
어쩌면 매우 재미없는 책이지만, <다시, 코스모스를 꿈꾸다>를 통해 우주적 질서를 회복한 인류 문명의 모습을 제시하고 싶었고, <배움의 존재>라는 책을 통해, 그 회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제시하고 싶었죠.
우리 인간은, 결국, 오늘보다 내일 더 나아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제 글을 통해 그러한 인간의 모습을 보셨으면 좋겠어요.
더블윤 작가에게 SF는 기술의 언어이자 인간을 이해하는 감정의 실험실이다.
그는 감정 표현에 서툴지만, 그 대신 상상력으로 우주를 설계한다.
전투와 명령의 세계에서 길러진 냉정함은 소설 속 '생존감각'으로,
전쟁의 딜레마는 평화를 갈망하는 인간의 본능으로 번역된다.
그의 우주는 과학으로 빚어졌지만, 결국 인간의 낙관으로 완성된다.
그는 말한다. "인간은 폭력 속에서도 희망을 품는 존재다."
▶ 요약 한 문장:
차가운 우주 속에서도 인간의 온기를 증명하려는, 군인 작가의 시선.
▶ 느낌 한 줄:
그는 별을 통해 과학을 배우고, 인간을 통해 희망을 배운다.
→ 제게 감정은 잠시 스쳐가는 바람과 같아요. 그 실체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느껴지고,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자취를 감추는 존재이죠.
감정을 배제해야 하는 조직인 군대에 몸담고 있기 때문일지 모르지만, 감정이라는 것에 지나치게 사로잡히지 않으려 합니다. 그렇기에 글을 쓸때도, 읽을 때도, 그 캐릭터나 서사에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는 것 같아요.
물론 저도 감정이 매마른 이상한 사람은 아닙니다. 드라마 '도깨비'랑 '미스터 션샤인'보면서 펑펑 울었어요. ㅎㅎ
→ 저는 본질적으로 게으른 사람이에요. ㅎㅎ
하지만 모든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매일 게으름이 허용되지 않는 아침을 맞이하고 있죠.
군생활은 제게 성실함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매일 아침 구보를 통해 체력이 좋아지듯, 꾸준함은 능력 향상으로 돌아온다는 가장 큰 진리를 배운 셈이죠.
약간은 틀에 박힌 군대의 루틴 때문일까, 일상에서도 일정한 루틴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만약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기분이 언짢아 진다는 부작용이 있지만, 반복되는 루틴을 유지한다는 건 성실한 삶의 밑거름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제 경우는 웃기게도, 글쓰기를 하는 요일과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하루 일과를 쪼개고 쪼개 만들어낸 시간이죠. 이 시간을 지킬 수 있는 이유는 아마 군생활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제가 쓴 문장 중 가장 군인다운 문장을 꼽는다면 <솜털보다 가벼운 - 1부> 중 '전사(戰士)'라는 에피소드에 썼던 문장,
"지금의 나는 '전사'이다."를 꼽고 싶습니다.
이 문장은 어떤 역경이나 과제도 극복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담은 문장이기도 하고 동시에 다짐이기도 한 문장이에요.(조금은 민망한 문장이기도 하네요.)
가장 인간적인 문장을 골라보자면 <다시, 코스모스를 꿈꾸다>의 마지막 회차, '작가의 말'에서 썼던 문장을 인용하겠습니다.
"무수히 빛나는 각각의 항성들의 밝기는 다를지 몰라도, 나 또한 저 별처럼 빛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나의 옆에 있는 사람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심지어 내가 싫어하던 사람도 결국엔 저마다의 밝기를 지닌 채 이 우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조화와 공존을 보고, 나는 눈물을 지으며 "모두가 아름답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 문장 만큼 제 생각을 잘 표현한 문장이, 그리고 인류를 바라보는 제 시선을 표현한 문장이 없을 것 같아요.
그렇기에 가장 인간다운 문장으론 위의 문장을 꼽겠습니다.
→ SF속 과학에 대한 이야기는 어쩌면 차갑게 느껴지는 것이 현실이죠. 아마도 과학이라는 것이 감정이 배제된 이성과 논리의 학문이다보니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렇기에 과학과 인문의 결합, 철학을 담은 과학, 과학이 가진 철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에, 지구의 모든 생명체에게, 생명의 빛을 전달해주는 태양은 그 안에서 격렬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고 있죠. 하지만 인간은 이 원리를 무기로 만들어냈습니다.
이처럼 인문을 잃은 과학, 철학이 배제된 과학은 인간의 삶을 폭력과 파멸의 길로 인도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과학과 기술안에도 언제나 철학이 담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철학의 중심엔 당연히 '인류애'가 담겨야 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선, 개인적으로 우리들의 관심과 목소리가 과학의 길을 인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관심이 배제된 과학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이 담기지 않은채로 계속 나아가 버릴 테니까요.
→ 제 글속 우주는 말 그대로 '모든 것' 입니다. 현실의 반영이자, 이상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의 공간, 그리고 어쩌면 피난처가 될 수도 있겠죠.
이 우주를 저는 '코스모스'라 부르는 것을 선호합니다. 코스모스라는 그 말 자체로 이 현실은 질서와 조화의 무대가 되며,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이상향에 대한 염원이 표현되는 것 같거든요.
그에게 감정은 바람 같다.
군대가 이성의 질서라면, 글쓰기는 그 질서 안에 숨은 인간의 체온이다.
매일 같은 루틴 속에서 펜을 드는 일, 그것이 그의 전투이자 휴식이다.
"지금의 나는 전사이다."
그 한마디 말 속엔 군인의 자부심과 인간의 연민이 공존한다.
그가 쓴 우주는 냉정한 과학이 아니라, 인류애로 빛나는 코스모스다.
▶ 요약 한 문장:
질서 속에서 감정을 다스리고, 과학 속에서 사랑을 되찾는 사람.
▶ 느낌 한 줄:
그는 싸우지 않아도 전사이고, 차가운 우주 속에서도 인간이다.
→ 지금의 글쓰기는 저의 가장 큰 취미생활이자, 제가 가진 신념과 철학의 표현방식이에요. 그 신념이 바래지지 않도록 만드는 되새김질이며, 제 철학의 흔적을 남기는 손도장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이 취미 생활이 부디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군인으로서 개인적인 성취 욕심을 그다지 크지 않은것 같습니다. 지금의 현 상태에 만족하고 있고, 군생활에 나름의 보람과 긍지를 느끼고 있거든요. 다만 정말 군인으로서 원하는 것이 있느냐고 거듭 묻는다면, '세계평화'라고 답하겠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지한 답변입니다.
글을 쓰고 있지만 작가로서 성공하겠다는 욕심은 크게 없는 것 같습니다. 제 글을 읽고 반응해주시는 여러분이 있는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거든요.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있습니다. 제 글을 통해 많은 이들의 시선이 '코스모스'로 향하는 것입니다. 이는 문자 그대로 우주에 대한 꿈을 품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이기도 하고(우주개발 예산좀 늘려주세요...), 코스모스가 뜻하는 바인 질서와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염원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품기를 바라는 것이고도 해요.
→ 한없는 인류애와, 보잘것 없는 작은 행성을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있는 '사랑'과 '희망'입니다.
그보다 더 좋은 감정이 있을까 싶네요.
→ SF소설을 다시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긴해요. 비록 소설이라는 건 제게 높은 벽이 확실해 보이지만, 더욱 확장된 세계관 안에서 제 상상을 마음껏 펼쳐보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긴 하거든요.
하지만 역시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의 연재가 끝나면 과학과 인문에 관련된 글을 계속 써나갈 생각입니다. 이 우주엔 공유하고 싶은 과학과 그 안의 경이로움이 아직 많이 있거든요.
→ '더블윤'이라는 필명은, 사랑하는 제 두 아이의 이름이 담긴 필명입니다. 아직은 미성숙한 이 아이들을 우리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더 나은 꿈을 꾸며 살아가길 바래요.
그리고 제 아이들도 저와 같은 별을 보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저처럼 천체관측을 취미로 하는 것은 안될것 같고(아이들은 밤하늘 보는 것을 굉장히 지루해하고 싫어합니다.), 사람이라는 각자의 항성들을 바라보며, 그 항성들이 다양한 빛을 가지고 빛내고 있음을, 각자의 스펙트럼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것을 이해했으면 좋겠어요.
따라서 제 필명안에는 '별을 보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를 바래요. 저를 의미하는 문장도, 제가 남기고 싶은 문장도, 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떠올리는 문장도 이 한문장이면 족할것 같군요.
"별을 보는 사람."
그에게 글쓰기는 신념의 되새김이다.
하루의 질서를 버티게 하는 취미이자, 철학의 흔적을 남기는 손도장.
군인으로서 그는 여전히 평화를 꿈꾸고, 작가로서 그는 인류의 시선이 다시 코스모스로 향하길 바란다.
그가 세상에 남기고 싶은 "별을 보는 사람." 이라는 한 줄의 문장에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인류에게 건네는 조용한 기도가 담겨 있다.
▶ 요약 한 문장:
글은 그의 신념이고, ‘별을 보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방식이다.
▶ 느낌 한 줄:
그는 총 대신 펜을 들고, 지구 위에서 별을 본다.
→ 제가 인터뷰라는 것을 해본 기억이 있을까요? 곰곰히 생각해보니 직업 체험을 위한 어린이의 인터뷰 말고는 해본기억이 없네요. 그러니 인터뷰 자리를 만들어주신 것 자체로, 마봉드포레 작가님께 감사인사를 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마봉드포레 작가님은 제게 특별한 인연입니다. 제 글을 단순히 읽어주시는 것을 넘어, 존재로서 제 글을 완성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고있는 독자님이시거든요.
소설을 연재중이다 보니 소설을 집필 중이신 작가님들의 글을 따라가 보다가 우연히 마봉작가님의 글을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충격적이었어요. 문장은 유쾌하면서도 부드럽고,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살아 숨쉬고 있었거든요. 소설을 정말 잘 쓰시는 분이라는 것을 첫만남부터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마봉작가님의 글들을 놓치지 않고 들여다보았던건 제겐 큰 행운이었던것 같습니다.
결론은, 한없는 감사를 마봉드포레 작가님께 전합니다. ㅎㅎ
PS) 공동집필, 기회만 허락 된다면 기쁜마음으로 기대해보렵니다!
→ 저는 '한이람' 작가님을 추천하겠습니다.
→ 한이람작가님의 글들은 하나같이 교과서에 수록되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완벽한 문장의 구조를 갖고있어요. 제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어딘가에서 전문적인 글쓰기 코칭을 배우신것이 분명합니다.
문장들은 하나같이 명료하고 머릿속에서 새어나갈 틈이 없죠. 군대에서 보고서를 쓰신다면, 상급자들이 너무나 좋아할만한 스타일이라 할까요? 그런데 명확한 정보들을 담고있는 문장들에 감정이 서려있기 까지 합니다. 그러니 한이람 작가님의 글을 보고있자면 무언가를 배우고, 느끼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 그분을 소개하며 숨겨진 팬심을 조심스럽게 드러내봅니다. 여러분들도 인간의 문화가 스며들어 있는 그분의 글을 만나보았으면 좋겠어요.
그에게 연결은 '존경'으로 이어진 인연이었다.
진심을 읽어준 사람에게 감사로 답하고,
그 감사의 끝에서 또 다른 별빛을 찾아 나선다.
그래서 그의 다음 질문은,
인간의 온기를 노래하는 작가 한이람을 향한다.
그의 글은 언제나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선에서 시작된다.
그 시선은 도망이 아니라, 버티기 위한 믿음이다.
소년이던 그는 천체관측부의 막내로 무거운 망원경을 짊어지며 처음으로 별을 보았다.
그날의 차가운 공기와 떨리는 손끝이 훗날 그의 모든 문장 속에 하나의 우주로 남았다.
"나는 별을 보는 사람입니다."
그에게 글은 기록이자 기도다.
전쟁의 언어로 가득한 현실 속에서도 그는 끝내 별빛의 언어로 인간을 이야기한다.
총 대신 펜을 들고, 절망 대신 희망을 쏘아 올리며,
작은 별 하나로 세상의 어둠을 비추는 사람.
그의 우주는 그렇게, 오늘도 조용히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