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생을 마감하기로 스스로 마음을 먹은 배경에는 실로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으나, 그중 가장 큰 것은 더 이상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이가 없을 거라는 고립감에 의해서일 것이다. 고통은 늘 혼자서도 견딜 수 있다 손 치더라도, 고통을 설명할 필요마저 사라졌다고 느낄 때 사람은 비로소 끝을 떠올린다.
나의 친애하는 S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깊은 사고와 실로 다양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오밀조밀 귀엽고 사랑스러운 얼굴은 또 어떻고. 때로는 본인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나이를 가진 사람들을 아우르며 어느 단체를 이끌어가기도 하는 당참과, S를 믿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당돌함 또한 지녔다.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말을 실감하게 하는 사람이다.
허나 한동안의 S는 퍽 고단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를 살아내는 일보다 하루를 꾸역꾸역 삼켜내는 일이 더 어려워진 얼굴로, 매일같이 죽음을 원한다는 말을 눈물에 섞어 흘린다. 울지 않으면 견딜 수 없고, 울고 나면 더 공허해지는 밤들을 지나고 있다. 그 마음 쓰임이 얼마나 깊어졌는지, 나는 감히 다 헤아릴 수조차 없다.
때로 S는 공신력 있는 이들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본인의 쓸모가 입증된다는 말을 내뱉는다. 마치 누군가의 도장이 찍히지 않으면 존재 자체가 유예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미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사람은 충분히 사랑받아야 할 이유를 지닌 존재다.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쓸모는 이미 넘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를 스스로 갉아먹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너무 오래도록 지난한 세월을 등에 업은 채 버텨냈고, 너무 많은 하루들을 떠안아온 탓일 것이다. 순수하게 약해질 차례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은 탓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S의 이야기를 듣는다. 대답을 찾지 못한 채로, 해결하지 못한 채로. 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S의 이야기가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고 누군가에게 닿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 하나로 아직은, 삶의 가장자리를 붙잡아주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