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by 해이

썩 괜찮은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나는 이런 마음을 가졌던 마지막 날이 언제였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할 만큼, 지난한 세월만을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손에 쥐고야 만 버킷리스트들은 끝내 내 불안을 자극하고 만다.


내가 꾸는 꿈은 대개 내 심리 상태를 잔인하리만치 정확하게 반영하거나, 앞으로의 거취를 암시하듯 나타난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닐지라도.


예를 들면 이렇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쫓겨 한없이 달아나다가, 끝내 커다랗고 시커먼 지네에게 발목을 물린다거나. 자꾸만 누군가를 피해 화장실로 숨어버린다거나. 내게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 무서워 이를 딱딱 부딪히면서도 양팔을 벌려 앞을 막아서는, 그런 따위의 꿈들이다.


이 꿈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늘 도망치거나 숨고, 끝내 무언가를 막아서고 있다는 점이다. 결코 정면으로 맞서 싸우지도, 완전히 등을 돌리지도 못하면서. 그 애매한 자세가 요즘의 나와 꼭 닮아있는 것만 같았다. 평온하다고 믿고 싶으면서도, 언제든 넘어질 수도 있을 거란 걸 알고 있는 상태랄까. 마치 잘 세우고 있는 도미노의 한 조각이 넘어질까 두려워 초조한 마음쯤? 괜찮은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그래서 나를 안심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불안하게 만들었다.


일주일 전쯤엔가,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걱정을 만들어서 사는 사람 같아."


그래.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내가 가장 잘 아는 법이다. 이건 걱정이라기보다는 지난 40년을 살아오며 내 몸에 축적된 데이터가 나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밀어낸 결계와 비슷하다. 일이 닥쳤을 때 덜 상처받기 위한 일종의 보호막인 셈이다.


혹자는 나를 보고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배가 부른 것 아니냐고. 글을 다시 쓰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내가 이뤄낸 결과들로만 본다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살아온 궤적은 아무도 모를 터. 겉으로 드러난 부분만으로는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하겠다. 나는 당신이 상상도 하지 못할 심연에 갇혀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노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꺼이 새로 살기로 다짐하며 이제 첫 발을 내디뎠노라고.


사실 나는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잠에 드는 것이 무서웠다. 꿈을 꾸고 나면 하루가 온통 거기에 매달려있는 것 같았다. 눈을 뜨자마자 그 내용에 대한 의미를 찾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해몽을 찾아보기도 했고, 주변인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그 안에 나쁜 징조가 숨어 있지는 않은지, 앞으로 닥칠 일의 예고는 아닌지. 그런 꿈들은 작년까지도 끈질기게 이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현실에서 하나씩 해내기 시작하자 꿈의 내용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도망치는 꿈과 행복해하고 있는 꿈이 번갈아 찾아오지만, 그 비율이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꿈에 지나치게 매달리지 않으려 한다. 꿈은 미래를 결정하지도, 나를 규정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려 하고 있다. 다만 그날의 나를 비추는 그림자 같은 것일 뿐. 나는 이제 내가 내딛는 발걸음을 믿어보려 한다.


불안은 아직 내 안을 헤집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불안을 이유로 나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다. 무서운 꿈을 꿨다고 해서 오늘의 내가 조마조마해할 필요는 없다는 것, 내가 이미 많은 것들을 이겨내 왔다는 사실을 몸은 충분히 알고 있다는 것을 조금은 신뢰해보려고 한다.


괜찮은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더 이상 불안의 이유가 아니라, 조심스럽게 손에 쥐어볼 만한 증거가 되기를 바라면서.

keyword
월, 화, 수,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