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고, 지금은 그렇다
저녁노을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붉은빛과 보랏빛. 천연색으로 물드는 하늘이 있었고, 그 아래 도시의 검은 그림자 속에서 조명이 하나둘씩 켜졌다. 서울의 밤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항상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늘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회사에 갇혀 있거나, 바쁘게 움직이거나, 술에 취해 있거나. 어느 날 양화대교 한가운데 서서 저녁노을을 보며 한참 울었다. 서울의 가장 아름다운 색은 사라지고 낮과 밤만 남은 삶이 슬펐다.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 우연히 마주한 저녁노을 앞에서 회사 동기와 나눈 대화 중
고등학교는 산 중턱에 있었다. 석양 무렵이면 붉게 타들어 가는 자그만 도시와 산, 강, 들판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만큼은 시선을 창에서 떼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공간이 변해도 이 순간은 변하지 않겠지. 그땐 그랬다.
그 순간에 존재하는 사람은 계속 변했다. 어떤 날은 슬픔과 우울을 붉은 노을이 다 빨아들이는 것 같아 안도했고, 또 어떤 날은 이렇게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하루와 대조되는 초라한 나의 하루에 비참해했다. 그때까지는 그랬다.
“지금이야, 지금 나갔다 와야 해!”
- 산방산 아래 고깃집에서 소주잔 기울이다 석양을 보며 아내가 외친 말
저녁노을을 함께 볼 수 있는 삶의 동반자가 생겼다. 나보다 더 앞장서서 노을 앞에 다가선다. 보랏빛 하늘 아래서 눈물이 흐르면 함께 울어주는 사람. 낮과 밤 사이 아름다운 공간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 더 바랄 게 없다.
늘 저녁노을을 함께 바라볼 수 있기를. 붉은빛 하늘에 채워지는 환희도, 보랏빛 하늘에 채워지는 슬픔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아름답게 저무는 석양처럼 인생의 황혼도 함께 아름다울 수 있기를.
지금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