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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아재 Apr 11. 2024

헤어질 결심

붕괴 : 무너지고 깨어짐

버려지다, 마침내




올해 결혼기념일 행사는 유기견 봉사활동이었다. 한 시간 정도 강아지와 산책하는 쉬운 일이었다. 가슴줄을 채우자 신난 친구들이 어서 나가려고 난리였다. 함께 나갈 사람을 기다렸을 녀석들을 보며 쉬운 일을 의미를 곱씹었다.

  스마트폰 지도를 켜고 있는데 녀석이 길을 앞장선다. 여기저기 냄새를 맡으며 익숙하다는 듯 치고 나간다. 줄을 당겨 통제하면서도 마음이 불편하다. 상처받은 경험이 있는 녀석이니까. 가엾지만 줄을 놓아 줄 수는 없다. 가여움이 정당성이 되지 않는 녹록하지 않은 세상이니까.

  아내와 함께 걷는 친구는 기관지가 좋지 않다. 꺽꺽 거위 소리를 내며 달리자 주변 사람들이 피한다. 언제부터 목이 안 좋았을까? 유기되기 전? 그 이후? 전 주인은 헤어질 결심을 언제 했을까?

  벤치에 잠깐 앉아 쉬었다. 한 녀석은 물을 마시고 한 친구는 간식을 먹는다. ‘앉아’에 반응하는 녀석의 모습이 장해 간식 하나를 더 준다. 눈을 반짝이며 앉아 있는 녀석을 보며 생각한다. 이 친구도 언제 적은, 누군가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았을 텐데. 이 친구는 과거의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을까?

  보호소에 있는 친구 중 한 녀석은 완전히 붕괴하였다. 한쪽 구석에 박혀 몸을 떨고 있다. 만지려고 하면 물어버리니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한다. 다른 녀석들은 사랑으로 붕괴가 붕괴하였다. 꼬리를 신나게 흔들며 사람에게 안긴다. 구석의 그 친구가 붕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올까?

  한 시간이 훌쩍 흐른다. 돌아가는 길도 녀석이 앞장선다. 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주말마다 오는 새로운 사람과 헤어질 시간을. 보호소에 도착하자 문을 열어달라고 폴짝폴짝 뛰어오른다. 녀석은 이미 끝낸 모양이다. 

  헤어질 결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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