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님을 추억하며
얼마 전 고향 집의 고양이가 세상을 떠났다.
스무 살부터 서울살이 한 터라 그 친구를 자주 보지는 못했다. 가끔 고향에 갈 때마다 처음 마주한 녀석은 대부분 자고 있었다. 따뜻한 햇볕이 드는 창가에 드러누워 새근새근 자는 모습. 조건 없는 만족으로 충만한 녀석에게 시샘이나 깨우러 다가가면, 한껏 찌푸린 얼굴로 나를 잔뜩 째려봤다.
“거 햇빛 가리지 말고 비키쇼.”
사람처럼 배를 드러내고 대자로 뻗어 자고 있을 때도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녀석과 놀고 싶어 배를 살살 긁으면 고개만 까닥 들어 째려봤다.
“거 선 넘지 마쇼. 뱃살은 상호 간의 예의인 걸 알면서.”
깨어있을 때도 친절은 없었다. 탁자 끝에 앉아 명상을 즐기고 있는 녀석의 이름을 부르면 무반응이었다. 오기로 여러 번 부르면 녀석은 그제야 귀만 까닥였다. 알면서 못 들은 체하는 게 얄미워 광기에 찬 이름 공격을 퍼부으면 조용히 자리를 떠나 버렸다.
쫓아가 안아서 얼굴 들이대기. 뚫리지 않는 벽을 부수기 위해 마지막 물리적 공격을 감행할 때면 녀석은 발톱도 이빨도 드러내지 않았다. 솜방망이 같은 발로 조용하고 지긋이 내 얼굴을 밀어낼 뿐이었다.
작전에 모두 실패하고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인사를 한다. 녀석은 그제야 다가와 정수리를 문질러 댄다. 마지막 찰나에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을 만들어내는데 선수였다.
일상에 복귀해 인간관계에 지칠 때면 그 친구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상대방에게 빛이 되는 순간을 가리지 말 것. 무례함의 선을 넘지 말 것. 내 공간을 침범하는 상대방에게 예민하게 굴지 않을 것. 누군가를 밀어내야 할 상황에서는 공격적이지 않게 지긋이 밀어낼 것. 딱 적당한 애정을 줄 것.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출근길. 버스 창가에 기대어 먼저 떠나간 나의 고양이 선생님을 추억한다.
“함께해서 행복했고 가르침을 주어서 고마워. 여기보다 햇살이 더 따사로운 하늘나라에서 행복한 꿈을 꾸며 편히 자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