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관찰기
오랜만에 카페에서 노트북을 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앞자리의 아이가 떼쓰기 시작한다. 내 말이 맞아. 내 생각대로 해야 해. 무조건 내 말이 맞아. 아이가 흥분해서 자지러진다. 부모가 항복한다. OO이 말이 다 맞아. 그렇게 하자.
떼쓰는 아이 모습이 낯설지 않다. 자기 말만 옳다고 우기는 사람. 자기 생각이 틀렸다거나 옳지 않음을 절대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 어떤 상황이든 자기 논리를 관철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 그런 어른.
떼쓰는 아이와 받아주는 부모의 모습에서 사건의 전말을 본다. 아이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그 어른’은 ‘오냐오냐’의 산물이 아닐까? 우기고 떼쓰면 자기 생각이 옳게 되니까. 틀려 본 경험이 없는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흥분하고 떼를 쓴다.
떼쓰기가 통하지 않는 세계를 마주할 때면, 그 세계를 부정한다. 나는 절대 틀릴 수 없으니 세상이 잘못된 거야. 내 생각만 맞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다 틀린 거야. 내가 하는 건 로맨스지만 남이 하는 건 불륜이야.
그런 어른이 변할 수 있을까?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할 수 있을까? 자기부정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사람에게 극히 어려운 일이다. 어떤 좋은 책을 읽어도 좋은 강의를 들어도 좋은 말을 들어도 무의미하다. 받아들이기 위해서 먼저 비워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하니까.
앞 좌석 아이가 떠나고 노트북을 덮는다. 미래의 내 아이를 생각한다. 내 생각이 틀렸어. 듣고 보니 네 생각이 맞아. 이 간단한 말을 못 하는 아이가 되면 어떡하지? 그렇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덧붙이는 짧은 글]
“그분은 행복하겠죠?” 회사 동료가 묻는다.
분명 행복하겠지. 틀린 게 없는 세상을 살고 있으니까. 자신의 말과 행동은 다 옳으니까. 잘못된 세상이 있을 뿐 나는 옳으니까.
“엄청 행복할 거예요. 실은 가끔 부럽기도 해요. 저렇게 살면 얼마나 편할까?”